‘3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 산다’고 했다. 무려 54일간 이어진 긴 장마로 물난리를 겪고 나니 득달같이 인두로 이마 지지는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 코로나로 사람도 산업도 만신창이가 된 데 이어 한계 수위를 넘은 댐이 무너져 산하를 초토화시켰다. 설상가상 방역 모범국인 대한민국에 코로나 역병(疫病)이 재확산되면서 온 나라가 아비규환이다.

특정 종교나 목회자를 비하하거나 매도할 의향은 없지만 전광훈 목사와 그의 추종자들의 처사는 아무리 선의로 봐도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진영 논리가 국가와 국민 생명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 광화문 대규모 집회가 몰고 온 후유증에 무수한 사람이 감염되고 겨우 회복 기미를 보인 내수 장사도 다시 젓 담아 버렸다. 대다수 선량한 국민들이 왜 그들로 인해 천형(天刑) 같은 역병의 피해를 당해야 하는지 부아가 치민다.

코로나 사태 1년은 더 간다

거두절미하고 지구촌 전체에 수천만 명이 감염되고 수십만 명이 이미 사망한 전대미문의 코로나19가 언제 소멸될지 알 수가 없다. 중세 유럽의 대재앙으로 수천만 명이 사망한 흑사병보다 무서운 이 역병의 기세가 수그러들기보다 갈수록 기승을 부린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공포를 경고해 온 MS 창업자 빌 게이츠는 코로나19가 내년 말쯤 종식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으로도 1년 반 가까이 코로나19와 같이 살아야 한다면 그 많은 인명 피해와 산업의 파멸을 어떻게 감당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수요와 공급이 멈추어 설 수밖에 없는 경제 산업적 피해는 상상만 해도 겁난다. 세계적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코로나19로 결단 난 미국의 크고 작은 오프라인 유통이 완전히 회복되기까지 2020년이 돼야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2021년 하반기부터 서서히 회복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2월 코로나19 발생 후 불과 6개월 만에 수많은 기업이 떡 쌀 담갔고 나머지 기업들도 하루하루 근근이 연명하는 상황을 감안할 때 살아남은 기업보다 간판 내린 기업 수가 많을 수도 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섬유패션 유통 업계만 해도 생존 자체가 가물가물한 기업이 부지기수다.

섬유패션 기업 중 비교적 규모가 있고 잘 나간다는 상장 기업의 2분기 경영실적을 봐도 참담한 수준이다. 영업이익 1위로 승승장구하던 휠라홀딩스의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보다 무려 65%나 감소해 영업이익 순위 3위로 떨어졌다. 세계 최대 아웃도어 메이커로서 지난 40년간 한 번도 전년보다 마이너스 성장을 체험하지 못한 영원무역의 방글라데시 공장도 올 2분기에 첫 적자를 냈다. 의류 벤더 ‘빅2’인 한세실업은 2분기에 4,531억 매출에 영업이익은 불과 14억 8,200만원으로 적자 전환이란 불명예를 안았다. 한세 매출은 작년 동기보다 6% 늘었지만 코로나19로 해외공장을 돌리기 위해 값싼 방호복을 생산했으나 사실상 밑지는 장사를 했다. 죽는 것보다 앓는 것이 낫다는 전략이었을 것이다.

반면 중견 의류 벤더인 국동은 2분기 매출은 46% 늘었고 영업이익은 무려 작년 동기보다 960%나 폭증해 대박을 터뜨렸다. 한세처럼 방호복 수출에 올인하면서도 가격 조건이 좋은 양질의 오더를 선별 수주한 것이다. 아무튼 수출 내수 패션기업 대다수가 코로나19 공황이 본격화된 2분기에 영업이익이 반 토막 났다.

문제는 지난 2분기 혹독한 대공황 속에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았지만 3분기 이후가 더 걱정이다. 섬유 수출 의존도가 70%를 웃도는 상황에서 여전히 인적 교류가 막힌 상황을 돌파할 비상구가 없다. 일부 온라인 거래는 활성화되겠지만 의존율이 높은 오프라인 거래선들이 계속 살얼음판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로 그동안 비상구 역할을 했던 방호복 수출도 끝물에 도달했다.

코로나 충격에 올 상반기에만 기라성 같은 미국 내 백화점과 스토아몰 21개사가 ‘챕터11’(법정관리)를 신청했고 하반기에도 계속 진행형이다. 코로나 역병이 하반기에는 진정될 것으로 가느다란 희망을 가졌지만 신기루에 불과했다. 실제 해외에 대규모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의류 벤더들의 하반기 오더는 씨가 말랐다. 극소수 의류 벤더를 제외하고는 미국 거래 바이어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은 곳이 드물 정도로 성한 곳은 별로 없다. 이들 벤더와 거래하는 원단밀과 원사업체 모두 피골이 상접한 상태다.

이미 기업 생명력을 위협하는 물이 목에 차 있는 처지에서 1년 이상을 이 상태로 더 간다고 했을 때 결과는 상상뿐 아니라 예상도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섬유패션 산업이 서 있는 주소가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너무 절박하다. 면방 산업부터 난파선에 쥐 빠져나가듯 앞다투어 베트남으로 탈출했으나 남은 국내 면방은 눈덩이 적자의 연속이다.

화섬도 코오롱 FM이 셧다운하고 롯데케미칼의 폴리에스테르사 생산도 사실상 포기한 지 오래다. TK케미칼과 성안합섬이 창업 이후 처음 심장부인 중합 공정의 불을 껐다가 재가동에 들어갔으나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다. 중국산의 무차별 밀어내기 수출로 안방 시장의 60%를 내준 상태에서 덤핑 공세는 계속되고 있다. 하는 수 없이 중국산 FDY에 대해 반덤핑 제소를 준비하고 있지만 시진핑 주석 방한을 염두에 둔 우리 정부의 대응이 녹록지 않을 것 같다.

대구산지의 가동률을 보면 이미 소멸로 가는 전조등이 켜졌다. 제직 업체 대다수가 금·토·일은 아예 가동은 안 하고 월·화·수·목·금만 주간에 50% 정도 가동하고 있다. 대구 섬유 산업을 떠받치는 대들보인 염색산업단지 입주기업 127개사 중 대부분 주 2~3일 주간 작업에 의존하고 있다. 사실상 휴업 상태다.

황금마차 아닌 영구차가 기다린다

그나마 경기북부는 마스크용과 레깅스용 원단을 짜는 양면 편직기 업체가 가동을 어느 정도 유지할 뿐 대다수 업체가 50% 내외의 가동률이다. 대부분 현장 기술자 출신으로 작지만 생명력이 강한 경기북부 편직 업체들도 코로나 대공황에는 버틸 재간이 없다. 포천을 중심으로 250개사의 회원을 갖고 있는 경기북부환편 조합원 중 코로나19 사태 이후 15개사가 완전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양의 대표적인 니트 산지를 자임하던 경기북부 니트 산지가 황금마차는커녕 영구차가 기다리고 있을 정도다. 타 업종도 예외가 아니지만 우리 섬유패션 산업의 현주소를 보면 그야말로 우습고 무섭다. 과연 한국 섬유 산업에 치유와 희망의 싹이 틀 수 있을지 생각할수록 시리고 먹먹하다.

하지만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비결은 도전 정신과 민첩성이다. 중국의 규모 경쟁을 극복하기 위한 차별화 전략이다. 업계의 뼈를 깎는 자구 노력과 매가리 없는 정부의 섬유패션 산업 정책, 무사안일의 단체가 환골탈태해야 한다. 신임 이상운 호가 출범한 섬산련이 중심이 돼 하루빨리 섬유 산업 비상대책위원회가 가동돼야 한다. 하로동선(夏爐冬扇) 식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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