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의 우상인 이상운 효성 부회장(69)이 명실공히 섬유패션 산업 수장(首長)인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에 선출됐다. 글로벌 경영의 1인자이자 세계 섬유대통령(ITMF·세계섬유생산자연맹 회장)인 성기학 회장으로부터 바통을 받아 오는 8월 19일부터 3년 임기가 시작된다.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한 후 76년 효성에 입사해 44년간 한 우물을 파온 탁월한 능력자인 이 회장에게 섬유패션인의 기대가 크다. 효성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면서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의 세계 1등 기업을 만든 주역이다. 탄소섬유에 1조원을 투자하는 과감한 투자에도 그의 주도면밀한 혜안이 크게 작용했다. 외환위기 당시 국내 대기업들이 우수수 워크아웃에 들어가 공중분해되는 와중에도 주력 산업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당시 효성도 자칫 대우와 고합, 동국무역, 갑을처럼 워크아웃설이 나돌았지만 이 부회장의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이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탄탄대로를 향했다는 평가다.

섬산련 회장 가는 길 꽃길만 아니다

이 회장은 지난 14일 섬산련 임시총회의 회장 선출 소감에서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포스트 코로나의 언택트 환경 변화에 섬산련이 적극 대처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하는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데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표현은 완곡하지만 망망대해 편주(片舟) 처지인 국내 섬유산업의 구원투수로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의지가 담겨져 있었다.

상황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이 회장이 섬유패션 업계 수장이라는 화려한 영예 못지않게 앞날이 꽃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험한 자갈밭이 도처에 깔려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기업 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과 섬유패션 업계를 대표하는 섬산련 회장으로서 산업 전 분야를 보는 시야는 또 다른 영역이자 생소한 분야다. 기업에서 체험하지 못한 무한 책임과 의무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더구나 지금은 만성적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서 코로나까지 겹쳐 화마가 난무하는 극한의 위험지대로 향하고 있는 것이 섬유산업의 현주소다. 각자도생의 엄혹한 상황이라 해도 절체절명의 구원투수 역할을 기대만큼 못했을 경우 무서운 질책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솔직히 섬산련 15대 회장으로 출범을 앞둔 이상운 회장은 기대 반 우려 반 속에 3년 임기의 대장정을 시작하게 된다. 그를 절대 지지하는 업계 인사가 있는가 하면 효성 부회장이 섬산련 회장이 되는 위상 문제를 놓고 의문 부호가 담긴 걱정의 소리도 크다. 우선 이 부회장은 성정상 일에 대한 욕심이 무서울 만치 강한 전문 경영인이다. 효성 그룹의 크고 작은 업무를 총괄하는 만기친람(萬機親覽) 스타일이다. 경영, 관리, 영업, 생산, 신기술, 신사업 전 분야를 직접 총괄하는 특성상 25시를 몰두하는 상황에서 과연 섬산련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또 ‘맹물에도 티가 섞이는 법’이다. 섬산련 회장은 이런저런 용처로 쓰는 돈이 만만치 않다. 성기학 회장도 지난 6년간 장학금 1억 6,000만 원에 행사 지원 제품 등 줄잡아 10억여 원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노희찬 회장도 합법적인 정치인 공식 후원금을 포함 뭉칫돈을 쓰며 섬유산업 지원을 요청했다. 효성의 전문경영인으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페일언하고 지금은 섬유패션 산업이 고립무원의 구조 속에 코로나 사태로 인한 대위국(大危局)이다. 한마디로 산업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몰려 있는 전쟁 상황이다. 전시에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평상시와 같은 안일한 사고와 대응으로는 살아남지 못한다. 이 같은 대전제에서 새로 출범한 이상운 회장에게 몇 가지 당부드리고자 한다.

가장 먼저 섬산련이 명실공히 섬유패션 업계와 단체의 구심점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마음이 흩어져 있는 섬유패션 단체를 규합해 종갓집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이어 지금은 전시 상황이기에 급박한 상황에 맞게 비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벼랑 끝에 몰린 국내 섬유산업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업계 자력으로는 힘이 부친다. 정부와 정치권을 붙들고 늘어져 조(兆) 단위 지원책을 끌어와야 한다.

이와 병행해 최근에 성기학 회장이 팔소매를 걷어 올리며 총력전을 전개하고 있는 국방섬유 국산화를 위해 21대 국회 초반에 관련 방위사업법의 입법화를 기필코 성취해야 한다. 해묵은 현안인 국방섬유 국산화는 위기의 국내 섬유 산업을 기사회생시키기 위한 필연적인 논리이자 현실적인 대안이다.

이와 함께 어떠한 희생이 있더라고 섬유산업의 구조 고도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필요하면 일본의 소재 개발 전략을 벤치마킹하고 한국판 유니클로를 만드는 방안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소외감을 느끼는 섬유패션 단체장들과 수시로 머리를 맞대며 지혜를 모으고 화합과 단결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 섬유패션 업계는 이상하리만치 원로 자문회의가 없다. 역대 섬산련 회장이나 원로들을 모시고 그분들의 노하우와 충고를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연간 150억원을 상회하는 섬유센터 임대료의 실탄을 조금 활용해 단체장과 상근책임자, 원로 등과 소통하는 그런 아량이 필요하다. 스트림간 동반성장을 위해 때로는 섬산련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아량을 베풀어야 하고 갈등 조정과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산하 단체와 밥그릇 싸움 하는 식의 속 좁은 행태는 버려야 한다. 섬유 산업이 소멸 또는 공멸 위기에 있는데 강남 한복판에 금싸라기 섬유센터만 존립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은 전시 비상 대책이 급하다

이 같은 다각적인 노력을 순차적으로 경주하면서 취임 일성으로 섬산련 사무국이 섬유패션 산업의 진정한 싱크탱크가 되도록 혁명적인 쇄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회장은 그야말로 비상근이라서 한계가 있다. 낙하산 인사로 내려오는 상근 부회장이 섬유 산업에 애정을 갖고 3년 재임 기간 전력투구하도록 철저히 채근해야 된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관리출신들은 적당히 세월만 때우다 임기 끝내고 떠나면 그만이라는 잘못된 사고에 휩싸이기 쉽다. 상근 책임자가 신념과 철학을 갖고 매진하지 않으면 45명에 달한 사무국 조직은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무능한 조직에 멈추기 십상이다. 취임 일성부터 사무국을 일하는 조직으로 탈바꿈시키는 노력이 급선무다.

물론 신임 이 회장은 성 회장처럼 탁월한 능력과 추진력, 역동성을 자타가 인정하고 있고 매사에 적당주의가 통하지 않는 불같은 추진력을 겸비해 섬산련 사무국 직원들이 된 시어머니를 맞을 것은 뻔하다. 이 회장의 능력과 철학, 신념에 찬 섬유 산업 중흥 전략을 기대해 본다. 45년 섬산련 역사상 오너가 아닌 기업의 부회장이 회장을 맡으면서 섬산련 위상을 걱정하는 인사들의 염려가 기우였음을 웅변으로 말해줄 것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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