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대한민국이다. 코로나 대공황 속에서도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이 8조 1,000억 원을 돌파했다. 하루 평균 1,000억 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냈다. 재난지원금과 고용안정 기금을 비롯 한강에 물 붓기로 나라 곳간이 거덜 나는 판국에서다.

삼성이 없으면 대한민국 경제는 벌써 고꾸라졌다. 그럼에도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사람들이 삼성을 못 잡아서 안달이다.

필자는 이재용 부회장과 일면식도 없다. 사돈에 팔촌도 안 된다. 그럼에도 지난달 26일,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수사 중단하고 기소 말라”는 결정에 환호했다. 이 부회장이 세계 경영을 하도록 자유롭게 풀어줘야 우리 경제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인세의 20% 이상을 부담하는 삼성전자만 잘 된다고 대한민국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뿐 아니라 섬유를 중심으로 중소기업이 함께 톱니바퀴를 이뤄 맞물려 돌아가야 성장 동력이 마련된다. 더구나 반도체, 자동차와 달리 섬유산업은 서민 일자리다. 섬유가 무너지면 그나마 남아있는 서민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정부부터 섬유산업을 파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국방섬유, 경찰복·소방복 시장 무궁무진

우리 섬유산업이 코로나19 사태로 옹기 짐 지고 가다 자갈밭에 넘어진 극한 상황이 된 데는 남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코로나19 이전에 이미 중증 기저질환을 앓으면서 체력이 쇠잔할 대로 약화됐기 때문이다. 핑계 없는 무덤 없듯이 인력난, 고임금의 고비용·저비용 구조라고 둘러 되지만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면 방향과 전략이 없었다. 업계 스스로 천수답 경영에 안주한 것은 물론 업계를 계도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할 단체도 제구실을 못 한 것이다.

하나의 예증으로 요즘 한창 불이 붙은 국방섬유 국산화 추진 방안만 제대로 시행되도 우리 섬유산업이 지금처럼 막다른 불구덩이 속으로 빨려들지 않았다. 미국 같은 선진국도 국방섬유만은 적어도 100% ‘메이드 인 USA’를 고집하듯 우리도 ‘메이드 인 코리아’만 제대로 이뤄졌다면 지금처럼 일감 부족으로 표류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간 6,000억 규모의 국방섬유 중 전투복 같은 전략 물자까지 중국산 원단에 의존하면서 황금 시장을 내줬기 때문이다.

국방섬유 연간 예산 6,000억 원을 국내서 생산 공급하고 이를 계기로 경찰복·소방복 공기업으로 확대하면 조(兆) 단위 시장이 형성된다.

화섬사, 면사, 제직, 편직, 염색가공, 봉제로 이어지는 스트림에 연간 1조 이상 시장이 형성되면 아무리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한국 섬유산업도

기본은 유지할 수 있다. 기본 가동 물량만 확보되면 순발력 강한 우리 섬유 업계는 수출이건 내수건 가동 물량 확보는 식은 죽 먹기다. 그동안 절실한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단체나 연구소의 무관심과 무능에서 빛을 못 봤다. TF 팀도 가동해 보고 회의도 수없이 열었지만 중구난방 백가쟁명식 의견만 분분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성기학 섬산련 회장이 “우리 군인이 입는 군복 원단을 국산에 의존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팔소매를 걷어 올렸다. 노희찬 회장을 비롯한 관련 면방, 화섬 업체 최고 경영진이 동참했다. 이른바 국방섬유 국산화 추진 10인 위원회가 발족했고 첫 회의를 지난 9일 서울 세종호텔에서 열었다. 이날 회의 분위기는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과거의 양상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국방섬유 국산화로 가는 가장 효율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관건인 모순된 현행 방위사업법부터 개정하는데 이들 영향력 강한 최고 경영자들이 전면에 나서기로 했다. 국회 국방위원들은 설득하는 방법도 강구했다. 물론 후원회도 가입하고 소통을 강화해 필요성과 당위성을 집중 설득하기로 했다. 과거에는 이런저런 핑계와 변명을 늘어났지만 이날은 전원 의지가 불탔다.

국방섬유의 군 전략물자를 중국산에 의존하는 것 자체가 해당 업종 섬유 기업인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일사불란하게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입법 과정에 나서기로 했다. 국회의원들도 지금껏 몰라서 그랬지 알고서는 유사시 어떤 상황이 벌어질 줄 모르고 중국산 원단에 의존하는 위험한 행태를 방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올해는 국방섬유 국산화에 마침표를 찍어 일감 확보와 자연발생적인 일자리 창출로 연계시켜야 한다.

이날 국방섬유 10인 추진위원회 회의 분위기는 과거와 달랐다. 10명의 위원이 16명 국방위원을 전담해 국익을 위하고 업계를 위하는 입법 작업에 한 사람의 이탈자도 없었다. 이 기세라면 연내 입법도 가시화될 것으로 기대됐다. 성기학 회장이 얼마 남지 않는 임기 중에 가시적 성과를 거두겠다고 다짐했으며 위원 전원이 동참을 약속했다.

그러면 십수 년 묵은 숙원이 왜 아직까지 진전을 보지 못하고 겉돌았는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단체장을 비롯한 업계 지도자들이 열의가 없었다. 일을 하기 위해 손도 베고 접시도 깰 수 있는 것인데도 형식적이고 소극적이었다. 목표를 설정했으면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공략 전략을 강구해야 함에도 매사 형식적이었다. 돈이 아깝고 시간이 아까워 형식 논리로 빙빙 돌아갔던 것이다.

중언부언하지만 단체나 연구소의 기능과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 단체장부터 소명의식을 갖고 헌신해야 한다. 자기 기업부터 잘할 줄 아는 지도자가 단체 봉사도 잘한다. 능력이 없으면서 현시욕으로 단체장에 욕심을 부리는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평시와 다르다. 전쟁 상태다.

단체장 소명의식 갖고 길을 밝혀야

섬유산업은 그야말로 빙하기에 휩싸여 꽁꽁 얼어붙었다. 돌아가는 통박은 코로나19 역병(疫病)이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기승을 부릴 태세다. WHO(세계보건기구)와 의학 권위자들의 검사 분석을 보면 당장 오는 9월에 미국과 중남미를 중심으로 감염이 수직 상승 할 것으로 예보했다. 3월 중순부터 시작해 상반기까지 4개월도 채 안 된 기간에 섬유 수요와 공급이 멈춰 섰다.

멈춰 선 수요와 공급망은 마의 여름 비수기 끝자락인 9월에 미국을 중심으로 더욱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 지금보다 고통의 강도가 더욱 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고비를 어떻게 넘길 것인지 지금부터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 1, 2분기는 연습 기간이었다. 3분기가 훨씬 혹독할 것에 대비해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야 승리자다. 답답하고 분통 터지는 것은 시장은 밖에 있는데 오도 가도 못할 처지다. 국방섬유 국산화를 시발로 국내 수요시장을 적극 창출하는 방안을 개발해야 한다. 수많은 단체와 연구소들이 길을 찾아 제시해야 한다.

상처 입은 조개가 진주를 만들 듯 지금의 고통이 재도약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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