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경쟁력 상실로 중증 기저질환을 앓고 있던 섬유산업에 전례 없는 복합 위기상황이 덮쳤다. 시난고난 거친 한숨을 토해내고 있는 우리 섬유산업에 코로나19 대공황이 숨통을 조이고 있는 것이다.

경천동지할 코로나19 사태가 오기 전에도 변곡점의 꼭대기에서 둔감한 기업들은 지체 없이 몰락의 길을 걸었다. 눈을 밖으로 돌려 2010년경 본격화된 글로벌 경제의 대전환 속에 제너럴모터스(GM), 제너럴 일렉트릭(GE), 코닥, 노키아, 제록스 등 전설적인 기업들이 갑자기 폭망했다. 그 사이 아마존과 구글, 테슬라, 넷플릭스, 페이스북 등 신생 기업들이 단숨에 선도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분초를 다투는 변화의 시대에 과거에 안주한 기업을 딛고 순발력을 발휘한 기업들이 고도성장을 만끽하는 불연속적인 변화가 진행된 것이다. 더구나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 수요와 공급망을 붕괴시킨 후 앞으로 빛의 속도만큼 변화의 속도는 빨라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이후에 전개될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기업은 조난당하고 낙오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연극이 끝났으면 무대에서 내려와야

우리 섬유산업은 7 대 3 비율로 수출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인구 5,000만 명의 좁은 내수 시장에 안주할 수 없는 구조다. 그러나 수출 주도 개방 경제의 한계는 외부로부터의 작은 압박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이미 고임금과 인력난으로 한계 상황에 봉착해 하산(下山)의 급경사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코로나19 충격에 그로기 상태에 몰렸다. 그럼에도 변화에 재빨리 적응한 기업들은 코로나19를 이용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성공한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하나의 예증으로 세계 최대 아웃도어 생산 수출 기업인 영원무역은 10여 년 전에 세계 자전거 5대 브랜드의 하나인 스위스 ‘스콧’을 인수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유럽에서 불티나게 팔려 5월 한 달에만 스콧 자전거 매출이 1억 달러에 달했다. 미국의 의류 매장 폐쇄와 내수 판매 부진에서 오는 손실을 다각 경영으로 채우고도 남았다.

국내 최대 의류 벤더인 세아상역은 코로나19로 거래 바이어의 무차별 오더 캔슬과 수출 대전 결제 거부로 고통을 겪는 사이 마스크 수출로 대박을 거두고 있다. 미국 정부에 이미 순면 마스크와 CVC 원단 소재의 방호복으로 2억 달러를 수출했다. 의류 수출 차질로 불거진 손실을 충분히 만회했다. 니트 원단 단일 공장 생산 능력이 세계 1위인 정우비나는 차별화 원단을 개발해 코로나 사태에도 오더가 몰려 작년 상반기보다 30% 가까운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9월 말까지 니트 원단 오더가 풀캐퍼로 차 있다.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듯이 코로나19로 초토화된 시장에서 이같이 금맥을 캐는 기업들이 많다. 어떤 악재에도 역발상을 발휘하면 금맥이 보인 것이다.

얘기는 다르지만 말을 바꿔 어려울 때일수록 기능과 역할이 강조되는 것이 섬유패션 단체의 책임론이다. 업계가 어려우면 시장의 변화의 트렌드, 나아갈 전략을 조사 분석하여 회원사에서 보급하는 그런 역할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중앙과 지방에 섬유 단체와 연구소가 60여 곳에 달한다. 하지만 제구실을 하는 곳은 다섯 손가락도 안 된다.

섬유 단체의 총본산이자 종가인 한국섬유산업연합회부터 문제다. 위기의 섬유산업이 어디로 가야 한다는 대전제를 제시하면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재도약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45명의 방대한 인원을 가진 섬산련 사무국이 “이거다”하고 내놓은 처방을 본 일이 없다. 사무국을 책임지고 있는 상근책임자가 진두지휘하며 국내외 정보와 전략을 제시하고 지원책을 강구해야 하지만 말짱 허당이다.

연봉 2억 원 내외의 고임금을 받고 있는 상근 책임자는 모든 업무를 업계 입장에서 소통하며 정보 공유와 실효성 있는 육성 대안을 마련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산하 단체와 협력하며 지원하는 맏형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딱 부러진 처방은커녕 산하 단체와 숟가락 싸움에 앞장서는 듯한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무리 낙하산 인사로 내려왔다 해도 업계 편에서 온 몸을 던지기는커녕 산업부 눈치에 민감한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현 정동창 상근부회장의 임기는 지난 6월 4일로 끝났다. 그럼에도 후임 인선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을 빼지 않고 있다. 배우는 연극이 끝났으면 무대에서 내려올 줄 알아야 한다.

섬산련 사무국의 개혁 못지않게 대구섬유 업계도 과감히 변신해야 한다. 무엇보다 능력이 부족한 단체장이나 지도자들이 물러나야 한다. 솔직히 대구 단체장이나 지도자들은 몸보다 마음이 노쇠해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자질이 부족하고 절실히 요구되는 정무 감각이 크게 떨어져 천수답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과거 대구 업계 원로들은 상공부 시절부터 현 산업자원부까지 주무 부처를 잡고 흔들었다. 섬유를 홀대하면 득달같이 올라와 장차관에게 압력을 가했다. 대구경북 섬유산업의 파워가 만만치 않았다. 원로들이지만 치밀한 전략을 세워 주무 부처를 설득하고 안 되면 권력의 힘을 빌려 밀어붙였다. 그 혜택이 고스란히 대구 섬유산업 육성 정책에 반영됐다.

업계 지도자들의 탁월한 지도력과 봉사 정신이 강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월이 변했고 권력 구조가 이동됐지만 자질과 능력에서 현저히 떨어진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대구 섬유 업계 수장(首長)이 산업부 국장 만나기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위상이 말이 아니다. 이같이 추락한 대구 섬유 업계 위상은 섬유산업연합회에서도 반영돼 얼마 전 차기 회장 선출을 위한 5인 추대위원에 마저 대구 대표가 빠졌다.

섬유 대구 단체장 물갈이 급하다

현 대구 단체장 중 김이진 염색공단 이사장 같은 역동적이고 헌신적인 일부 인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가 능력이 달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50대 이하 대구 섬유 업계 기업인들은 현 섬유 단체장이나 원로 지도자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 단체, 저 단체를 막론하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일 정도로 이사를 맡고 있다.

어쩌다 젊고 역동적인 인사가 바른말을 하면 “젊은 친구가 버릇이 없다 ”는 식으로 싹둑 잘라 버린다고 하여 젊은 기업인의 말발이 서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다. 이의열 대경섬산련 회장을 비롯 십수년간 대구 단체를 이끌어온 인사들은 이제 그만 2선으로 물러나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후임자가 마땅치 않다는 이유는 핑계다. 맡겨주면 더 잘할 수 있다. 후임자 선택 범위를 제한해 놓으니까 찾기 어려운 것이다. 벼랑 끝에 몰린

대구 섬유산업의 구원투수를 젊고 역동적인 인사가 맡아야 한다. 변화에 둔감하고 자기 기업만 챙기는 소극적인 인사는 물러나야 한다. 망망대해 편주 신세인 지역 섬유산업을 위해 능력과 열정, 정무 감각을 갖추고 희생과 봉사할 수 있는 지도자로 하루빨리 바꿔 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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