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걸핏하면 미국과 맞짱을 뜨겠다고 웃통을 벗은 것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캐치프레이즈인 흑묘백묘(黑猫白猫)론 덕이다. 1970년대 말 색깔과 무관하게 검은 고양이건 흰고양이건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철학이다. 자본주의건 공산주의건 중국 인민이 잘살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때부터 외자 유치에 사생결단해 오늘의 G2가 됐다.

90년대 말 필자가 섬유 업계 투자 조사단을 이끌고 동북 3성을 방문할 때였다. 우리 일행에게 당 최고 간부들이 투자 설명을 할 때 그야말로 입에 들어 있는 사탕까지 내줄 정도로 친절과 아부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외국 기업이 중국에 투자해 공장이 완공되는 순간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중국 땅에 공장을 세웠으면 이미 중국 소유라는 것이다. 그때부터 공장 운영을 자신들이 좌지우지하기 일쑤였다. 비유가 적당한지 모르지만 지난 6월 16일 개성공단 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킨 북한의 처사는 미련스럽기 이를 데 없는 자폭행위다. 170억원을 들여 완공한 초현대식 건물이 개성에 지어졌으면 사실상 북한 소유와 다를 바 없다. 남의 칼도 내 칼집에 들어오면 내 칼이 되는 평범한 원리를 망각하고 소중한 재산을 패대기친 것이다. 그리고 금방 유화 정책으로 나온 머저리·땡깡 정권의 심보를 당최 알 수 없다.

현시점 최선의 카드는 이영관 회장

다시 우리 얘기로 돌아가 때 이른 무더위 속에 우리나라 섬유패션 업계수장(首長)인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 선출을 둘러싸고 업계의 관심이 뜨겁다. 현 성기학 회장의 연임 임기가 오는 8월 18일(6개월 연장)로 만료되면서 후임 선출을 위한 물밑 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열린 이사회에서 ITMF(세계섬유생산자연맹) 회장을 겸하고 있는 성 회장이 국가적 행사인 ITMF 서울 총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임기를 6개월 연장 시킨 바 있다. 성 회장의 2개월 연장 요청에 이사회가 화답해 6개월로 늘려 내년 2월 말까지로 만장일치 연장시켰다. 이를 기준하면 임기가 아직 8개월이나 남은 상태다. 물론 성 회장이 연장된 임기를 다 채울지 여부는 변수가 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후임 회장 선출권을 갖고 있는 5인 추대위원회의 1차 회의를 서둘러 지난 22일 가졌고 2차 회의를 7월 초에 소집해 후임 선출을 조기에 마칠 계획인 것만은 분명하다.

후임 회장 선출이 급진전되면서 예기치 않은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5인 위원회가 오랜 관례인 면방·화섬·의류·패션·직물 업종의 순환 선임 원칙에 따라 이번에는 화섬 업종으로 후임 회장 선출을 못 박았다. 경세호·노희찬 회장의 면방이 연속 2회, 박성철, 성기학 회장의 2회를 감안하면 화섬 차례를 넘겼다는 지적 때문이다.

여기에 돌출변수가 생겼다. 단체 운영의 능력과 역량 글로벌 마인드를 겸비한 유력 후보인 민은기 섬유수출입협회장이 강력한 권유에도 “연부역강한 분을 추대하자”며 한사코 고사해 민 회장 카드를 접었다. 또 대정부, 대국회를 비롯한 로비력과 인지도, 열정이 뛰어나 가장 유력 인사로 거명되온 최병오 회장까지 업종별 순환 원칙에 막혀 회장 추대가 어렵게 됐다. 여기에 5인 위원회가 6년 전 회장 선출 과정에서 과열 상태를 보인 3명의 후보는 이번에는 제외시키자는 암묵적인 합의까지 있었다. 위기의 섬유산업을 회생시키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에 폭넓은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최병오 회장이 아깝게 기회를 잃은 것이다.

이 같은 원칙에 따라 화섬 업계에서 후보를 찾되 인격과 덕망, 전문성, 능력, 지도력을 겸비한 인사로 압축되면서 이영관 도레이첨단소재 대표이사회장이 이심전심으로 급부상했다. 물론 자천보다 타천으로 거론된 김웅기 세아상역 회장, 이신재 한솔섬유 회장, 이상운 효성 부회장 등 몇 사람도 거론됐지만 실현성은 희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영관 회장 카드가 급부상하면서 성 회장 뒤를 이를 후임에 이 회장이 유력시되고 있다.

이 회장은 섬유패션 업계에서 탁월한 경영 능력과 지도력, 전문성, 친화력과 더불어 투철한 애국심의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다. 홍익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경영학 석사, 홍익대 경영학 박사인 그는 지난 73년 삼성그룹 제일합섬에 입사 후 47년간 한 우물을 파온 경영의 대가로 평가받고 있다. 새한 전무, 새한 대표이사 부사장, 도레이새한 대표이사 사장, 일본 도레이 한국 대표, 도레이첨단소재, 도레이케미칼 대표이사회장, 일본 도레이 집행위원, 한국 도레이과학진흥재단 이사장의 중책을 수행하고 있다.

도레이 첨단소재의 한국 내 직원 3천 700명을 고용하는 최대 섬유화학기업을 이끌면서 연간 매출 3조원 규모, 이익 3,000억원에 달하는 초우량 기업으로 발전시킨 주역이다. 연간 이익 규모 3,000억 중 500억 정도만 일본 도레이에 배당하고 2,500억원을 한국에서 재투자 또는 사용하고 있다.

2011년 일본 도레이 본사에서 중국에 대규모 탄소섬유 공장을 투자하기로 한 것을 몸으로 막아 구미에 국내 최대 탄소 공장을 유치한 애국자다. 탄소섬유를 원료로 국내 중소섬유 업계의 자동차 부품, 드론 부품, 풍력 발전 자재의 광범위한 수요 창출을 주도하게 된다. 이 회장의 이같은 경영 능력과 도레이의 한국 투자 유치에 따라 일본 도레이 故 마에다 가츠노스케 회장과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사장, 닛카쿠 아키히로 사장 등 3명의 도레이 본사 회장(당시 사장)이 한국 투자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가 금탑산업훈장을 수여할 정도였다. 외국 기업인에게 정부가 그것도 같은 회사 경영자 3명에게 차례로 금탑산업훈장을 수여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구조 고도화 전략 한 수 배우자

더구나 이영관 회장이 섬산련 회장이 되면 음으로 양으로 한국 섬유 업계에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탄소섬유의 중소기업 응용에 따른 산업용 섬유 발전과 4차 산업혁명에 획기적인 기여가 예상된다. 비행기 날개는 물론 동체까지 만드는 일본 도레이의 탄소섬유 기술 습득은 물론 유니클로의 소재 공급 전략과 유니클로 경영 전략 수집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세기 섬유화학산업에 진력해온 이영관 회장의 차기 섬산련 회장 선출은 벼랑 끝에 몰린 국내 섬유산업의 구조 고도화를 위해서도 필연적인 논리이자 혁신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 도레이가 100% 투자한 기업의 최고 경영자가 섬유산업 수장이 되는 것을 다소 부담으로 여기는 시각이 있으나 이것은 글로벌 시대에 뒤떨어진 옹졸한 시각이다. 도레이 회장이 일본 경제의 막강한 핵심축인 경단련 회장을 맡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꼬인 한일관계를 민간 차원에서 소통할 수 있는 전기가 될 수도 있다.

투자는 일본 도레이가 했지만 회사는 한국에 있고 한국에서 모든 경영활동이 전개되며 고도성장의 과실을 3700명 직원과 한국 경제에 제공하기 때문이다. 비판은 자유이지만 불필요한 잡음으로 한국 섬유산업 성장판을 열 수 있는 호기를 허송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5인 추대위원들의 현명한 선택과 용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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