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된 섬유패션 수요 · 공급망 조기 회복 ‘낙관불허’

글로벌 정보 寶庫 · 섬유패션 나침판
本地 창간 27주년 열독률 난공불락 1위

국격 높은 ‘메이드 인 코리아’ 오더 늘지만 수용 태세 안돼
구조 고도화 발등의 불, 업계 · 정부 · 단체 방책이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발발 이후 전 세계 섬유의류 산업이 멈춰 섰다. 수요와 공급망이 붕괴되면서 전대미문의 대공황에 빠졌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수백만 명의 감염자와 수십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대재앙이 현재도 진행형이다. 코로나 방역 일등 모범국인 한국도 아직 산발적으로 집단 감염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국내 정상의 섬유패션지인 국제섬유신문이 6월 2일로 창간 27주년을 맞는다. 오늘 이 순간 환희와 갈채 속에 맞아야 할 창간 기념일이 가장 어둡고 무거운 것은 도처에 곡소리가 그치지 않는 업계의 고통과 맥락을 같이한다.

외람되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섬유패션의 진정한 동반자이자 길잡이인 국제섬유신문이 반세기 이상 결코 짧지 않은 기간에 업계의 등대 역할에 충실해 왔음을 감히 자부한다. 다양한 글로벌 정보의 보고(寶庫)인 국제섬유신문은 유사 동종 매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차별화를 지향하며 전문지의 새 지평을 열었다. 결과는 홍수를 이루는 섬유패션전문지 중 열독률 1위라는 난공불락의 금자탑을 쌓았다.

국제섬유신문의 오늘이 있기까지 성원해주신 식견 높은 애독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저희는 여기서 자만하지 않고 더욱 혼신으로 정진해 ‘주식회사 대한민국 섬유패션 산업’의 수호신 역할과 책임을 다할 것을 정중히 약속드린다.

그런 한편 섬유패션 산업이 처해있는 현실을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며 참담함과 무력감을 떨칠 수 없다. 우리 섬유산업은 오래전부터 쇠락의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하산(下山)의 길을 걸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화마가 난무하는 극한의 위험지대로 급속히 향하고 있다. 섬유 산업 구조는 우리나라 경제 구조와 똑같이 수출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수출 주도 개방 경제의 한계는 외부로부터 작은 압박에도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약점을 안고 있다. 5,000만 명에 불과한 좁은 내수 시장에 안주할 수 없어 전체 생산의 70% 이상을 수출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공급망이 붕괴되고 수요가 정지된데 따라 화염에 휩싸인 채 끝 모를 잔혹사를 겪고 있다.

급기야 각 스트림별 어느 하나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골병이 들었다. 섬유패션 전 스트림이 백척간두 벼랑길에 몰려 비명을 지르고 있다. 장강의 뒷물에 앞물이 밀려나듯 세계의 공장 중국에 밟히고 동남아 국가에 치여 가쁜 숨을 쉬며 움츠려 왔다. 급기야 코로나19가 덮쳐 강한 압박으로 목 졸림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미 ‘투자 엑소더스’니 ‘투자 망명’이니 하며 6,000개 가까운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나가야 산다’는 흐름 속에 탈출 행렬이 그치지 않았으나 이젠 나간 기업도 상당수 생명력이 가물가물한 처지다.

안에서 깨진 쪽박 밖에서도 새지만 안쪽 사정은 더욱 심각해 빙하기에 접어들었다. 그래도 재벌급 대기업이 영위하는 화섬산업은 버틸 줄 알았지만 이 산업마저 앞뒤가 막막한 처지다. 2년 전 한국 섬유산업사의 역사이자 상징이었던 코오롱 FM이 간판을 내릴 때 제2, 제3의 코오롱 FM을 걱정한 것이 기우가 아닌 현실로 다가왔다. KP캠택(옛고합)이 일반 폴리에스테르사 생산을 거의 동시에 접었고 급기야 TK케미칼과 성안합섬이 중합 라인을 껐다. 화섬메이커가 불황에 못 이겨 중합을 끈 것은 역사상 처음이며 절망적인 신호탄이다. 휴비스, 효성, 대한화섬 등도 중합은 끄지 않았지만 강도 높은 감산으로 연명하고 있다. 실제 월 6만 톤 이상의 생산 능력이 5월에는 1만 톤으로 줄었다. 갈 데까지 간 것이다.

10년 불황에 시달리는 면방은 대다수 기업이 해외로 탈출하고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겨우 50만추로 줄어든 설비마저 감산에 감산을 거듭하고 있다. 대구 화섬 직물 산지의 직기도 줄줄이 세워놓고 있다. 대구 섬유 산업을 지키고 있는 버팀목인 염색산업단지 입주기업 127개사 중 정상 가동 업체가 10%도 안 된다. 경기 북부 니트 산지라고 예외가 아니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원단 마스크 수요가 늘어나 양·포·동(양주·포천·동두천) 일부 편직 업체와 사염 업체가 겨우 가동을 유지할 뿐이다. 20년 전에 불어닥친 국내 봉제 산업 공론화(空論化) 악재가 전 스트림으로 확산되는 참담한 상황이다.

이같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우리 섬유산업 역시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엄혹한 시점이다. 한순간만 방심해도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위기의 순간이다.

이같은 대전제에서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 코로나19 방역 일등국으로 국격이 높아졌지만 과거 방식의 천수답 경영으로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선 시장 수요가 현저히 감소될 전망이다. 불 꺼진 미국의 유통매장이 5월 하순부터 시작해 이달 중 거의 문을 연다고 해도 폴(fall) 아이템부터 시작되는 오더량은 지난해의 70%에 머물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연중 최대 대목인 홀리데이 오더도 작년보다 훨씬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공급망 자체가 변화되고 있다. 자국 생산이 늘어나고 이를 위해 리쇼어링 추세가 뚜렷하지만 우리에겐 요원한 얘기다. 중국·베트남보다 10배나 비싼 고임금에 인력 수급마저 원활치 못한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서 가격 경쟁력을 돌파할 재간이 없다. 코로나19로 방호복 오더가 몇억 장 단위로 대형화됐지만 방호복 원단까지 중국이 사실상 싹쓸이하고 있다. 바이어는 원단이건 봉제이건 ‘메이드 인 코리아’를 요구하지만 가격 경쟁력이 없고 줄줄이 세워진 직기마저 단납기에 맞출 캐퍼가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주식회사 한국 섬유산업’은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이후에 더욱 강도 높은 구조 고도화가 요구되고 있다. 첨단 자동화 설비 투자를 확대하고 기술을 차별화해 차고 넘치는 틈새시장을 석권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천수답 경영 형태로는 게도 구럭도 다 놓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우선 정부가 외통수에 몰린 전통 뿌리산업인 섬유산업을 살리기 위해 파격적이고 혁명적인 육성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업계와 단체는 21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정치권과 정부를 설득하는 전방위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물론 섬유산업 중흥을 위해 정부의 지원책이 절실하지만 이것이 필요조건은 될지라도 충분조건은 아니다. 기업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고 각자도생의 냉엄한 현실을 스스로 타개해야 한다. 이와 함께 단체의 기능과 역할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 유명무실한 단체나 연구소는 통폐합하고 이름만 걸고 있는 무능한 단체장들이 시급히 물러나야 한다.

섬유스트림 주체와 정부, 단체가 하나의 톱니바퀴를 이뤄 맞물려 돌아가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일본 도레이는 9개 연구소 연구 인력이 4,000명에 달하고 연간 8,000억 원의 비용을 투자한다. 30년간 적자를 감수하고 탄소섬유 연구개발에 매진해 세계 항공 산업과 자동차 산업의 경박단소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유니클로의 소재 공급원으로 도레이 클러스터로 직물, 염색 산업과 동반 성장하고 있다.

우리 정부와 단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능력과 실력이 없으면 이웃 일본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할 줄 알아야 한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을 최초로 개발한 것이 아니나 응용기술을 활용해 세계 일등기업이 된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를 대비해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구조 고도화를 위해 업계와 정부 단체가 환골탈태해야 한다.

둥지 없는 새는 알을 못 낳는다. 국내 섬유산업의 생태계가 붕괴되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이를 위해 국제섬유신문이 전면에 설 것을 엄숙히 다짐한다. 변함없는 채찍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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