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맞은 코로나19 경제 위기가 끝 간 데 없이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 모든 산업을 파산의 불구덩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우리가 속한 섬유패션 산업 역시 처절하게 망가지고 있다. 대구 산지 직물, 염색 업체 80%가 휴업 또는 조업 단축 상태다. 설과 추석 연휴도 없이 풀가동하던 가연 업체도 이달 들어 공장 불을 껐다. 경기 북부 3,000여 개 편직 업체도 문을 닫거나 주 2~3일 주간만 가동 상태다. 반월, 시화, 경기 북부 염색 업체도 대구 염색공단처럼 정상 가동 업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더욱 억장이 무너지고 충격적인 것은 섬유 산업의 대들보이자 섬유 대기업인 화섬메이커까지 감산을 넘어 공장을 세운 비극적인 사태가 발생했다. 성안합섬에 이어 TK케미칼까지 화섬사 생산을 일정 기간 전면 중단했거나 다음 주부터 중단한다.

60년 화섬 역사 처음 겪는 참사

효성도 사실상 가동률이 30% 내외이고 휴비스, 대한화섬 등 타 화섬 메이커도 강도 높은 감산에 돌입한지 오래다. 국내 폴리에스테르사 생산 능력이 월 6만 톤을 상회하지만 금년초까지 3만 7,000톤을 유지한데 이어 코로나19 사태로 2만 톤으로 줄였고 이달에는 겨우 1만 톤 규모에 머물 전망이다. 1957년 이 땅에 한국 나일론이 출범한 이후 화섬 공장이 동시다발로 선 것은 처음 겪는 참사다.

‘불황에 장사 없다’고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채산은 물론 수요 자체가 없어 버틸 재간이 없는 것이다. 대구와 경기 북부 산지 직물·편직 업체들이 코로나19 사태로 공급망이 붕괴되면서 원사 구매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중국 화섬 업계는 수출은 막혀도 광활한 내수 시장이 있어 화섬 가동을 이어가지만 한국은 수출·내수 모두 멈추어 선 것이다. 경기 북부 편직 업체들이 원단 마스크를 개발해 수요가 조금은 있다고 하지만 이것으로는 조족지혈이다.

시장은 숫자로 말한다. 코로나19가 창궐한 3월에는 물려있던 오더를 수행하면서 섬유 수출이 전년 대비 9% 감소에 그쳤지만 4월 수출은 무려 35%나 급감했다. 5월은 더욱 암담하다. 6월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마의 여름 비수기에 진입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다는 대전제 아래서 9~10월이 돼야 서서히 회복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변수는 있다. 셧다운 상태인 미국의 유통 매장이 이달 하순부터 하나둘 문을 열 계획이다. 6월에는 더 많은 오프라인 매장이 문을 연다. 해외에 있는 한국계 대규모 봉제 공장과 원단밀들이 미국의 폴 윈터 시즌을 겨냥해 가동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득달같이 국내 섬유 산업에도 반응이 올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섬유산업도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하는 지혜와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전 세계가 인정하듯 한국은 코로나19 방역의 일등 모범국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면서 얻은 한국의 국격은 수직 상승했다. 세계 최고 진단 기술과 시스템, 시민의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사재기 없는 성숙한 시민의식에 세계가 찬사와 갈채를 보냈다. 방역 당국의 신속하고 투명한 대응과 함께 대구를 우한처럼 봉쇄하지 않으면서 슬기롭게 대처해 성공한 사례에 놀라움과 경의를 표했다.

지난 몇 달간 모진 고생 끝에 일궈낸 보건의료 선진국의 위상은 이제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의 브랜드 파워와 직결되게 됐다. 품질 신뢰와 신용이 국제 교역의 성공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한국산 제품의 승승장구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섬유제품도 ‘메이드 인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가 본격 도래하는 것은 부인 못 할 사실이다. 한국산뿐 아니라 해외 도처에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있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섬유 공장들도 함께 누릴 수 있는 호기가 기다리고 있다. 이번 코로나19의 모진 고통만 극복하면 섬유 기업의 대박이 보장된다는 것이 결코 가설이 아니다. 지금의 고통을 이겨내면서 철저히 준비할 필요가 있다. 위기는 기회를 불러온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요술은 없다. 수십 년 된 구닥다리 설비로 최신 설비로 무장한 규모 경쟁의 중국과 맞짱 뜰 수는 없다. 이 기회에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투자하고 기술 개발해 다가오는 천재일우의 호기를 대비해야 한다. 실패는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지혜로운 농부는 척박한 땅을 비옥한 땅으로 바꾸기 위해 객토(客土)를 했다. 풍부한 영양물질을 함유한 황토나 하천 충적토(沖積土)를 논에 뿌려 소출 증대를 도모했다. 섬유 산업도 농민이 객토하듯 갈아엎고 신설비로 개체하면서 차별화 신기술로 승부해야 한다. 중국과 똑같은 제품으로 승부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우리 섬유산업은 누가 뭐래도 국가 기간산업이다. 열흘만 살다가 버리는 누에고치가 아니다. 여섯 달만 살다가 떠나는 제비집도 아니다.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전통 산업이 고용을 유지하고 부가가치를 높인다.

무엇보다 섬유산업은 서민 일자리다. 크건 작건 전체 제조업의 9%에 달하는 4만 8,000개의 제조업이 살아있다. 28만 명의 생산직 근로자가 종사하고 있다. 섬유산업이 소멸되면 국가적 당면 과제인 고용 대란이 일어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같은 대전제에서 정부는 이 땅의 빈곤퇴치 주역이자 뿌리산업인 섬유산업을 중흥시키기 위해 파격적이고 혁명적인 지원책을 강화해야 한다. 그 기준은 농업과 동일시 해야 한다. 농어민을 지원하기 위해 전력료와 농약, 비료 등에 세금을 면제하고 농업용 보일러에 면세용 기름을 지원하듯 특단의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섬유 단체장 ‘벙어리 삼용’ 그만…

이를 관철하기 위해 업계가 분연히 일어서야 한다. 섬유패션 단체장이 전면에 나서 정부와 정치권을 설득하고 채근해야 한다. 정치권과도 긴밀히 소통하고 지원을 호소해야 한다. 물론 맨입으로는 안 된다. 합법적으로 후원회도 가입하고 상설 소통창구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섬유산업을 백안시한다고 뒤에서 구시렁거리기보다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쟁취하는 채널부터 만들어야 한다.

때마침 21대 국회 개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21대 국회에서는 위기에 몰린 섬유 산업이 기사회생 할 수 있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당초 50억 원에서 천신만고 끝에 400억 원 규모까지 늘려 놓았으나 무참히 일몰된 스트림간 기술개발 협력사업 예산도 부활시켜야 한다. 당면한 국방 섬유 국산화 전환도 새 국회에서는 관철해야 한다. 최소 조(兆) 단위 지원책을 받아내야 한다. 지금 우리 섬유패션 단체가 너무 무기력하다. 정무 감각도 없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다. 차돌같이 뭉쳐 코로나19 이후의 부활가(歌)를 위해 지금부터 철저히 준비하고 투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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