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무균의 진공상태에서 자라지 않는다. 흔히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하지만 그보다 무서운 것은 시대정신이다. 1억 9000만 년 전 지구를 지배하던 공룡이 사라진 것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 궤멸에 가깝도록 폭망한 보수 야당도 예외가 아니다.

보수의 옷을 걸쳤지만 지켜야 할 보수의 가치를 모르는 얼치기 보수 정당의 자살골이다. 코로나19 역병으로 국민이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데 ‘정권심판’의 해묵은 레코드판만 돌렸다. 처음부터 박근혜 정권의 2인자인 황교안으로는 어렵다고 수없이 신호를 보냈지만 알아듣지 못한 심각한 난청에 난독이었다.

총선에서 압승한 집권 여당도 주구장창 환호성 지를 계제가 못 된다. 무엇보다 먹고사는 경제 문제가 옹기짐 지고 자갈밭에 굴러버린 상황이다. 기업은 절체절명 상황에서 줄초상 행렬이 끝간데 없이 이어지고 있다. 실업은 아베마균 번지듯 세포 분열이 기하급수적이다. 이 엄청난 국난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샴페인에 취해 비틀거리면 2년 후 대선에서 뒤집기 당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중국의 보복 소비 우리도 기대한다

본질 문제로 돌아가 ‘애비’하며 사람을 혼비백산시킨 무서운 코로나19 역병도 국내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있다.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지만 세계 1등 방역 선진국의 위상이 자랑스럽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생활 거리 두기로 수위가 낮아져 올무 같던 집콕 공포도 점차 해소되고 있다. 무엇보다 폭망한 내수 패션 경기가 기지개를 펴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 예증으로 중국의 보복 소비가 이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지난 1월부터 3개월간 코로나19 사태로 꽁꽁 얼어붙었던 중국 내수 경기가 폭풍 성장하고 있다.

광저우 에르메스 매장의 지난 11일 하루 판매액이 270만 달러, 한화로 32억 800만원에 달했다. 하루 매출로는 사상 최고다. 패션의류와 화장품 등 명품을 대상으로 보복 소비가 일어난 것이다.

우리 내수 패션 시장도 5월 초반부터 급상승할 것으로 보여진다. 코로나19 공포에서 해방되고 중앙 정부와 지방정부의 재난 지원금이 풀리면 소비로 직결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봄 장사를 망치고 사경을 헤메는 내수 패션 업계가 소비자의 보복 소비로 기사회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문제는 수출이다. 7대 3, 아니 8대 2로 수출 의존도가 절대적인 섬유의류 수출이 앞이 안 보인다. 유럽은 물론 미국의 코로나19 창궐이 계속 진행형이다. 유통매장 폐쇄가 장기화 돼 살 사람도 팔 사람도 없다. 온라인이 일부 흡수하고 있지만 소비의 근본 문제 해결에는 역부족이다.

소비 시장이 셔터를 내리면 공급망이 붕괴되는 것은 당연한 원리다. 세계의 섬유의류 생산 공장이 모두 멈춰 섰다. 해외에 대규모 생산라인을 구축하며 일취월장하던 의류 벤더들의 공장이 모두 섰다. 의류벤더 공장이 서니까 원단밀도 함께 세울 수밖에 없다. 수천 명, 수만 명 직원의 무노동 무임금도 쉽지 않다. 원단밀들도 속수무책이다.

국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섬유회사들도 연일 곡소리다. 대구 산지를 봐도 공장을 모조리 세웠다. 제직·편직 공장들이 4월 들어 일제히 세웠거나 부분 가동하고 있다. 직물 오더가 전멸 상태이다 보니 대구 섬유산업을 떠받치는 대들보 대구염색공단 입주기업도 숨넘어가는 처지다.

미국과 유럽만 막힌 게 아니라 대구의 주 시장 중 하나인 중동 시장까지 사실상 폐쇄됐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중동 각국 유통 매장이 폐쇄된 것이다. 가장 먼저 이란이 코로나19 역병에 아비규환을 겪더니 주춤한 사이 사우디, 쿠웨이트, 이집트가 코로나19 돌림병에 시장이 철시했다. 중동의 전통의상인 차도르용 포멀 블랙 시장까지 올스톱된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가장 큰 의류 벤더 시장인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의 떡 쌀 담그는 불길한 뉴스다. 113년 역사의 대형 백화점 체인인 니만마커스가 이미 65곳을 폐쇄하고 1만 4,000명을 무급휴직시켰다.

이번 주 안에 법원에 파산보호신청(법정관리)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여기에 162년 역사의 미국 최대 백화점 체인인 메이시스도 코로나19 사태로 12만 명을 무급휴직시키고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 118년 역사의 J·C 페니도 코로나19 여파로 미국 내 850개 점포의 문을 닫았고 8만 5,000명을 해고한 가운데 법정관리 신청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들 외에도 콜스, 갭, 심지어 노드스트롬까지 경영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로 미국의 기라성 같은 유통 기업의 경영 위기는 공급망의 핵심인 한국 의류 벤더들의 연쇄 위기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계약에 의해 생산 중이거나 생산 준비 중인 제품, 심지어 완성된 제품을 선적 취소시키고 선적된 제품도 결제를 안 하는 배 째라 행태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바이어가 천재지변이라며 결제를 기피하는 거래 질서 붕괴에 수많은 관련 업체가 감당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 몰렸다. 벤더가 돈을 못 받으면 원단밀과 부자재 업체에게 전가시키고 원단밀은 면방과 화섬 업체에 전가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누구의 잘못이나 실수로 빚어진 고통이 아니라 아주 고약한 천재지변으로 불거진 불가피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전대미문의 이 엄혹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다.

7대 기간산업 지원 40조, 섬유는 없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 아직 예단은 빠르지만 미국의 셧다운 된 유통 매장도 5월 중순부터 하나둘 문을 열 것으로 보여진다. 6월에는 더욱 활짝 열릴 것이다. 미국과 유럽 모두 올 S/S 장사는 포기했지만 F/W 장사는 폭풍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번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는 기업은 앞으로 대박날 것(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이란 진단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본다. 오뉴월 잘 넘겨야 할 것 같다.

다만 아쉽고 섭섭한 것은 정부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총 240조 원의 재정을 풀고 7대 기간산업에 40조를 투입하는 초유의 과감하고 혁명적인 지원책을 마련했다. 항공·해운·자동차·조선·기계·전력·통신 등 7대 기간산업에 40조를 지원키로 했다. 하지만 섬유는 빠졌다. 정부 지원 정책의 핵심은 일자리 유지다. 이같은 대전제에서 고용과 제조업체 수가 가장 많은 섬유를 제외시킨 이유를 당최 알 수 없다. 섬유산업이 붕괴되면 서민의 일자리는 송두리째 사라짐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섬유도 엄연한 국가 기간산업이다. 섬유산업에 조(兆) 단위 지원을 받기 위해 업계와 단체가 복지부동에서 깨어나야 한다. 울어야 젖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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