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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섬유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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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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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운명을 가르치지 않는다. 이미 역사가 된 섬유산업 60년을 되돌아보면서 급속히 망가지는 섬유산업을 운명으로 체념하기는 너무 아쉽다.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는 불가항력 못지않게 우리 업계와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이 모양 이 꼴을 자초했다. 일찍이 산업혁명의 선구자 영국에 이어 일본이 걸어온 궤적이 섬유산업 미래를 암시했지만 역사의 교훈을 외면한 것이다.

오동잎 떨어지면 가을인 줄 알듯이 어느새 섬유의 날 제정 서른세 돌을 맞았다. 지난 87년 11월 11일 우리나라 수출산업 중 단일 업종 최초로 대망의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의 쾌거를 이룬지 벌써 강산이 세 번 이상 지났다. 그 사이 섬유산업은 처절하게 망가져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난파선에 쥐 빠져 나가듯 6,000개 가까운 섬유 기업이 해외로 탈출한 자리는 사실상 쭉정이만 남았다.

빙하기 기업들 피가 마른다

최악의 부끄러운 날로 기록될 올해 섬유의 날을 맞는 섬유패션기업인의 가슴은 화석으로 변했다.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축제의 한마당은커녕 깊은 상념을 안고 자탄의 한숨이 절로 난다. 수치는 거짓말을 허용하지 않는다. 섬유 수출은 지난 2,000년 188억 달러를 정점으로 급속히 하산(下山)의 길을 재촉했다. 불과 18년만인 지난해 섬유 수출은 141억 달러에 머물렀다. 올해는 더욱 쪼그라들어 130억 달러에 그칠 전망이다. 갈수록 줄면 줄었지 늘어날 가능성이 없다. 성을 쌓는 데는 10년이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란 사실을 뼛속 깊이 새기게 한다.

그나마 돌아가는 통박을 보면 어제가 오늘보다 나았으나 내일은 더욱 암울한 비상등이 기다리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미·중 무역전쟁이 몰고 온 중국의 저가 공세와 최저임금 등 안팎 사방에서 숨통을 조여 오는 외풍에 그로기 상태에 내몰리고 있다.

줄초상 위기에서 피 말리는 고통을 호소하는 산업 현장의 신음소리는 조종(吊鍾)을 알리는 서곡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미 갈 때까지 간 국내 섬유산업이 더 이상 망가지지 말아야 함에도 공멸을 향한 지뢰밭이 도처에 널려있다.

자본주의 꽃인 기업은 사실상 자포자기 상태이고 정부 정책은 표류하고 시장은 한국산을 외면하는 앞뒤 막막한 상황이다. 망망대해 편주 신세인 주식회사 한국 섬유산업이 폭풍 속에 내몰린 상황이다.

중증의 섬유 스트림을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면 그 심각성을 국외자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섬유산업의 뿌리인 면방산업부터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면서 호스피스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국내 설비는 베트남 등지로 대거 이전 시켜 겨우 국내에 남아 있는 설비는 58만추에 불과하다. 이마저 재고가 쌓여 창고를 가득 메우고 있다. 올 들어서만도 큰 업체는 월 30억 원 작게는 10억씩 적자를 보는 구조다. 중국의 4,000만추, 인도의 3,000만추, 베트남의 1,000만추와 규모 경쟁은커녕 품질경쟁도 내세울 것이 없다.

화섬 역시 기진맥진하기는 매한가지다. 6개 화섬메이커의 폴리에스테르사 생산 능력은 6만 톤이지만 감산에 감산을 거듭해 실제 생산은 3만 5,000톤 수준이다. 반면 중국산을 중심으로 월 2만 5,000톤 이상이 국내에 반입돼 국내 전체 수요의 60%를 잠식하고 있다. 가격 경쟁에서 중국산과 비교해 계란으로 바위 치기 구조 때문이다. 미·중 무역전쟁 이후 중국산 화섬사 덤핑이 기승을 부리면서 안방 시장을 송두리째 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섬유 수출을 이만큼이라도 받치고 있는 것은 허리 부문인 직물 산업이다. 니트 직물과 화섬우븐 직물이 대구와 경기도에서 버티고 있어 섬유 수출을 견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고립무원의 한계 상황에 처해 있다. 한국의 독무대이던 치폰(시폰)을 중국에 뺏긴 후 중국산 치폰 생지가 무차별 반입되고 있다. 대구 산지 제직보다 수입이 30%나 싸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한국의 주종 품목인 ITY 싱글스판 직물도 중국이 야금야금 파고들고 있다.

우리나라 화섬·교직물과 니트 직물을 받치고 있는 대구비산염색공단 운명도 낙관할 수가 없다. 대구 직물 생산이 줄어들면서 중국산 생지 가공  의존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비산염색공단이 무너지면 대구 섬유산업은 끝장이다. 자기만 살겠다는 이기주의가 국내 관련 산업을 망치고 결국 스스로도 자멸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우리 업계의 자업자득을 언제까지 방치하고 한탄만 할 수는 없다. 국내 섬유산업이 공멸한 후에는 화섬·면방·직물·염색뿐 아니라 의류 벤더·패션 기업 모두가 극단적인 궁지에 몰리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섬유산업의 심장 박동이 뛰고 있을 때 명의를 총동원해 집도해야 한다.

고단위 처방의 최우선 과제는 차별화를 위한 투자다. 자동화 설비를 늘려 임금부담을 줄이면서 생산성과 품질로 승부해야 한다. 머리 두 개 달림 사람일지라도 중국과 똑같은 제품으로 경쟁하는 것은 자살 행위다. 이번 섬유의 날에 모범 기업인으로 정부 포상을 받는 수상자 모두는 중국과 경쟁하지 않고 일본과 이태리 품질을 해외 시장에서 평가받는 기업들이다. 이들은 외형 신장뿐 아니라 이익률에서도 알찬 내실을 과시하고 있다. 불황을 모르는 기업은 어디가 달라도  다른 면이 있다. 화섬·면방에서부터 니트·화섬직물 모든 분야에서 중국이 못하는 차별화로 승부해야 한다.

실종된 섬유 정책 복원돼야

더불어 강조하는 것은 상생이다. 대구나 경기도 섬유 산지에서 불황에도 성장하는 기업은 거의 대부분 국산 소재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산 소재가 다소 값이 비싸도 국내 원사를 사용하면서 품질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값싼 중국산 원사나 생지를 들여와 들쥐 떼처럼 값싸게 휘뚜루마뚜루 퍼내는 기업치고 오래가는 기업이 없다. 얼은 발에 오줌 누기로 잠깐은 버티지만 길게 보면 바이어 잃고 외톨이가 되는 것은 불문가지다.

또 하나 사즉생(死卽生) 각오의 업계 자구 노력과 더불어 시급한 것은 정부나 단체의 기능 회복이다. 사실 지난 몇 년간 주무 부처의 섬유산업정책은 역대 정권 중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섬유산업 현장에 줄초상 돌림병이 창궐해도 죽건 살건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산업부가 업계의 기대에 부응해 제대로 된 정책과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 자동차 부품 산업이 어려우면 수천억씩 지원하면서 섬유산업은 국물도 없는 이유를 당최 알 수가 없다. 하로동선(夏爐冬扇)식은 안 된다.

단체나 연구소도 무사안일에서 환골탈태해야 한다. 있으나 마나 한 단체나 연구소는 이제 간판 내려야 한다. 산업이 속수무책으로 붕괴 되는데 단체가 왜 필요하겠는가. 능력 없는 단체장들 스스로 내려놓아야 한다. 내년 섬유의 날에는 꿈과 희망이 가득 찬 밝은 모습으로 맞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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