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높으면 계곡이 깊다. 정상에 오르면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다. 어패가 있지만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삼성전자의 지난 4분기 어닝쇼크를 보고 새삼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만년 호황을 기대했던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10조 8000억 원으로 전분기보다 무려 38.5%나 쪼그라들었다. 한마디로 반도체 착시가 한계에 왔다.
방정맞은 기우이지만 삼성전자의 어닝쇼크가 이대로 계속되면 대한민국 경제가 동반 거덜 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 영원불멸로 여겼던 로마제국과 잉카제국도 폭망 했다. 세계 제일이던 노키아와 IBM도 고꾸라졌다.
대한민국 수출 5분의 1, 코스피 시가총액 21%, 일자리 18만 개, 법인세 7%인 삼성전자의 제2· 제3 노키아 신세를 막아야 한다. 대안은 노조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기업하기 좋은 나라다. 허구한 날 기업을 비틀고 쥐어짜는 정책으로는 경제도 일자리도 모두 날아갈 수밖에 없다. 정부가 립 서비스가 아닌 행동으로 기업하기 좋은나라는 고사하고 기업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한다.

 

개성공단 기업 파산의 불길서 견디었다.

하나의 예증으로 때마침 세계 최장 426일간 이어진 파인텍 노동자의 굴뚝 농성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민주노총과 언론은 이들을 투사 또는 영웅시하며 승리의 관을 쓴 개선장군처럼 클로즈업시키고 있다. 이들의 뿌리는 대구경북 섬유업체 중 대표적인 강성노조로 불리던 한국 합섬 노조다. 잘 나가던 한국합섬은 이들 강성 민주노총소속 노조의 강경투쟁을 견디지 못해 12년 전 떡쌀 담그고 말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창업주 박동식 회장과 장남 박노철 사장은 2007년 마지막 파산을 선언했고 2010년 7월 현수막 전문기업 스타플렉스가 법원의 공매 절차를 거쳐 인수했다.
상호를 스타케미칼로 바꾸고 정상경영에 나섰지만 또다시 노사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눈덩이 적자를 못 이겨 공장을 매각했다. 대다수 희망 퇴직했지만 이를 거부한 20여 명이 해고됐고 바로 이들이 주축이 돼 해고자 복직 투쟁위원회를 구성하고 긴 투쟁에 들어갔다. 결국 세계 최장 굴뚝 농성이란 오명을 남기고 극적으로 타결됐지만 구미 공단 한국합섬이 있던 그 자리는 건물도 설비도 온데 간데 없고 맨땅에 먼지만 흩날리고 있다. 한국합섬뿐 아니라 청운의 꿈을 안고 원사 메이커가 된 금강화섬, 대하합섬도 강성노조와의 노사갈등으로 간판 내리고 문 닫는 비운을 겪고 말았다. 투쟁하면 쟁취하는 노조 공화국에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구두선이자 헛된 미망일 수밖에 없다.
화제를 바꿔 새해 들어 남북협력을 겨냥한 한반도의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조건 없는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 발언에 이어 2차 북미협상이 2월 말 3월 초로 예상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교류협력을 신년 기자회견에서 더욱 강렬하고 적극적으로 개진했다. 아직 가물가물하지만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시설 점검을 위해 16일 방북신청까지 해놓고 있다.
성급한 예단이지만 돌아가는 통박으로 봐 올 상반기 중 가시적인 현상이 손에 잡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사자인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고 학수고대하는 모습이 지난 3년과는 다르다. 물론 남북이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유엔의 제재가 풀리지 않는 한 옴짝달싹할 수 없다.
그럼에도 변수 많은 남북관계에서 전체는 아니어도 부분적인 변화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2차 북미협상을 계기로 미국과 유엔의 제재가 대폭 또는 부분적으로 해제될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6번째 방북신청이 정부에 의해 무산되고 이번 7번째 방북신청이 실현될지 의문이지만 이와 무관하게 재가동은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 이번 개성공단 기업인의 방북 목적이 시설점검이지만 이미 암암리에 알려진 바로는 시설관리 보전은 잘돼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력 송신에서부터 상· 하수도· 공장 누수· 파손 부문이 이미 거의 손질을 마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미 2차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가장 먼저 정상화 카드는 개성공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2차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해서 개성공단이 당장 재가동되기까지는 다소 진통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개성공단 기업인 중 상당수가 지난 3년간 영업을 못 한데 따른 자금 사정이 피골이 상접한 상태다. 대다수가 파산 위기에서 곤죽이 되다시피 휘청거리고 있다.
정부가 보험금을 지불했지만 이는 재가동 즉시 상환조건이다. 기업의 생명줄인 영업권을 송두리째 잃었으나 고정자산 보험금과 원부자재 및 완제품의 유동자산 피해보상 외에는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이에 따라 재가동시 우선 보험금 변제에 이어 마지막 철수 당시 미지급된 한 달 치 100억원 규모의 북측 근로자 임금부터 지불해야한다. 공장 재가동에 따른 원부자재 확보와 이탈한 거래선 확보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같은 문제는 남북경협이란 큰 꼭지 앞에 정부와 업계가 머리를 맞대며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국내에서 찾기 어려운 풍부한 인력과 저임금, 무관세· 물류 시간과 비용 절감의 장점을 활용하면 정상화는 시간문제다.

 

섬유· 패션 스트림 함께 가는 큰 그림

여기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다소 성급한 감이 있다 해도 개성공단의 확대방안이다. 기존 시범단지 100만 평 내 겨우 절반도 채우지 못한 125개사의 재가동 차원이 아니라 섬유 전용공단 조성을 위한 청사진을 미리 준비하는 일이다. 남북경협이 본격 활성화되면 개성공단의 섬유 전용공단조성은 필연적인 논리이자 현실적인 대안이다. 머뭇거리는 순간 간사한 중국에게 기선을 빼앗기면 게도 구럭도 다 놓치게 된다.
이같은 대전제에서 우리 내부가 은밀하게 개성 섬유 전용공단 조성을 위한 준비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이미 개성공단 입주기업 중 일부 인사가 거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물밑에서 작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은 가물가물해도 언젠가는 섬유 전용공단 조성이 현실화되는 것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과거 개성공단이 잘 돌아갈 때는 대구와 경기 북부 소재 산업이 활성화됐지만 중단 이후 직격탄을 맞았다. 이제는 종전 봉제위주에서 편직· 제직· 염색가공· 가연은 물론 면방· 화섬까지 광범위하게 진출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실현되면 붕괴되는 국내 섬유 패션산업이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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