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교훈을 못 얻은 게 역사의 교훈이다. 멀지도 않은 박근혜 정부의 애매모호한 창조경제의 실패를 뻔히 알면서 소득주도성장이란 생체실험의 우를 범했다. 소득도 없고 성장도 없는 혼란과 실패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을해년 새해를 맞았다. 선무당 사람 잡고 반풍수 집안 망하듯 급격한 최저임금인상의 부작용을 잡지 못하고 결국 기업 목 조르는 최저임금 시행령 개선이 미봉책으로 끝났다.
함량 미달의 과거 정권의 실정을 교훈 삼아 태평성세를 기대했던 기업인들의 가슴은 화석으로 변했다. 친노동 반기업 정서가 몰고 온 파고는 예상보다 깊고 넓어 생물처럼 움직이는 경제가 시름시름 앓고 있다. 대다수 산업이 빨간불이 켜진 데 이어 유일하게 승승장구하던 반도체마저 정점에서 하강하고 있다. 나라 경제를 먹여 살리는 삼성전자의 지난 4분기 영업이익이 14조원대로 감소했다. 3분기 17조 7000억원에서 급랭하고 있다. 새해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될 불길한 조짐이다. 삼성이 잘못되면 나라 경제가 거덜 나는 것은 불문가지인데도 삼성을 못 잡아서 안달인 이유를 당최 알 수 없다.

 

해외투자 기업 웃고 국내산업 곡소리

자본주의 꽃은 기업임을 삼척동자도 아는 팩트다. 포플리즘에 휘둘려 기업을 짓누르고 친노동 복지로 퍼준 나라치고 성한 곳이 없다.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 브라질이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지난 78년 개혁 개방의 위대한 노정을 시작한 공산국가 중국은 친기업 자본주의 경제에 올인해 마침내 ‘G2’에 등극했다.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은 잘못된 반기업 정서가 몰고 온 폐해로 자칫 자본주의 미숙아로 전락하게 됐다.
거두절미하고 기해년 새해 원단을 맞은 기업들은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놓고 심한 공포에 쌓여 있다. 글로벌 경제 동향이나 국내 환경 모두 10종 허들도 모자라 온갖 해저드가 널려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섬유패션 경기는 어느 때 보다 엄혹한 한파가 예상되고 있다. 이미 고립무원의 한계상황에 봉착한 국내 섬유산업은 파산의 불길이 언제 어디서 발화할지 숨을 죽이고 있다. 
업계는 거의 자포자기에 빠져있고 수많은 관련 단체나 연구소는 제구실을 못 한 채 잠자고 있다. 여기에 믿었던 정부의 산업정책은 실종돼 벼랑 끝을 헤매고 있다. 우선 설비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중국보다 줄잡아 5배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보다 10배나 비싼 인건비를 감당하면서 구닥다리 설비로 대응한 것 자체가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지난해에 이어 새해까지 최저임금이 30% 가까이 뛰어 기업의 체감지수는 100% 인상이나 다름없다. 요술이나 축지법을 쓰지 않고는 도저히 경쟁할 수 없는 구조다.
물론 최저임금인상이 결정적인 독소는 아니었다. 과거 정부 때부터 후발 국가의 임금 격차는 이미 현 수준에 도달했었고 투자 기피의 병리 현상은 오랜 기간 중증으로 악화됐다. 정부의 최저임금인상은 어려운 중소기업들이 울고 싶을 때 뺨 때린 격에 불과하다.
어찌 됐건 섬유산업 각 스트림마다 곡소리가 요란하게 번지고 있다. 해외에 대규모 소싱공장을 보유하고 글로벌 경영에 성공한 의류벤더나 해외에 둥지를 튼 니트 직물들만 새해에 매출 목표를 의욕적으로 잡고 있다. 반면 국내에 있는 섬유 패션기업들은 새해 목표를 하나같이 축소지향 일변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대구 산지는 자포자기 분위기가 만연돼 기업 포기 분위기가 돌림병처럼 창궐하고 있다. 정치적인 정서까지 한몫해 정부의 친노동 정책에 항의하면서 “기업 문 닫겠다”는 오기가 고조되고 있다. 대구 섬유산업의 버팀목인 비산염색공단 입주기업들도 일감이 없어 참혹하다. 어느 중견염색업체 사장은 일감은 없고 사람을 내보낼 수 없어 요즘 하루에 평균 330만원, 한 달에 1억씩 적자를 본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비산염색공단이 문 닫거나 휴폐업이 속출하면 대구 섬유산업은 그걸로 끝장이다. 그만큼 비산염색공단의 스팀료와 폐수처리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지역 직물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경기 북부 산지도 초상집 분위기는 매한가지다. 현재 경기 북부 니트직물 산지에 매물로 나온 공장이 줄잡아 1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곳 역시 자포자기 분위기가 팽배하다. 섬유산업의 허리 부문인 직물 염색산업이 태풍 속 편주(片舟) 처지가 된다는 것은 화섬과 면방을 비롯한 업스트림까지 공멸을 재촉하는 길이다.
면방은 이미 난파선에 쥐 빠져나가듯 국내 설비의 해외 이전이 가속화돼 올해 국내설비는 50만 추대의 초라한 성적표가 기다리고 있다. 중국의 규모 경쟁과 베트남의 공세 속에 근근이 버티어 온 화섬산업의 위기는 한계 수위를 넘고 있다. 실수요자인 국내 직물공장 중 규모가 있는 곳은 웬만하면 해외로 나갔고 남은 기업들도 문 닫거나 축소지향 일변도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좁아진 국내시장에 첨단설비로 무장한 규모 경쟁의 중국산이 가격으로 흔들고 있어 시장을 대거 잠식당하고 있다.
한마디로 각자도생의 냉엄한 시장에서 국내 각 스트림이 집단 도산의 돌림병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이대로 가면 5년은커녕 3년 내에 소멸을 향해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앞뒤 막막한 상황이다.

 

위기극복 소방수 단체장이 안 보인다

그러나 고래 심줄보다 강하다는 우리 섬유산업이 이대로 공멸할 수는 없다. 쉽지는 않지만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현재 상황이 더 이상 붕괴되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된다. 물론 처방은 기업 운명은 기업 스스로 결정하듯 기업이 투자해야 한다. 중국이 아무리 설쳐도 그들이 못 미치는 시장은 널려있다. 중국이 하는 제품은 무덤이다.
틈새시장을 향해 차별화로 승부하면 길은 있다. 그 대전제는 어려울수록 첨단설비와 기술 개발투자다. 지금도 투자하는 기업들은 불황을 모른다. 죽네 죽네 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죽겠다고 하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또 하나 시급한 것은 실종된 정부의 산업정책을 부활시키기 위해 단체가 나서야 한다. 그 많은 섬유패션단체가 잠에서 깨어나 제구실을 해야 한다. 산업이 막다른 골목에 몰릴수록 중장기전략을 갖고 대비해야 한다. 지금은 토사관락을 앓고 있는 섬유패션산업에 중장기 전략은커녕 코앞 단기 전략도 없다. 새해벽두부터 섬산련이 중심이 돼 단체장들이 소명 의식을 갖고 처방을 마련하고 대책기구를 가동해야 한다. 산업의 운명이 단체장· 지도자의 손에 상당부문 달려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은 산업비상사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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