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실수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돌에 두 번 넘어지는 것은 실수가 아니다. 무지는 아니지만 무신경, 무감각의 병폐다. 그것이 기업이라면 흥망성쇠와 직결된다.
죽은 나무는 물을 줘도 못 살듯이 기업이 떡쌀 담그면 그걸로 끝장이다. 그래서 개혁과 쇄신이 필요하다. 벼랑 끝에 몰린 섬유산업도 혁명적인 개혁과 쇄신이 필요하지만 전략 빈곤과 기량 부족은 여전하다. 분초를 다투며 변화무쌍한 글로벌시대에 변화를 거부한 천수답경영으로 안주를 바란다면 ‘태양보고 서쪽에서 떠달라는 것’과 다름없다.
거두절미하고 국내 섬유 스트림이 집토끼를 다 놓치면서 산토끼 잡느라 모진 고생을 다 하고 있다. 물론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해외시장에 전력투구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와 병행해서 눈을 뜨면 안방시장도 만만치 않은 규모인데 이를 다 놓치고 있는 것이다.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것 못지않게 찾아보면 안방 시장에도 금맥이 있기 때문이다.

 

섬유산업 집토끼 놓치고 산토끼 쫓는다

금년 2월 평창 동계 올림픽에 맞춰 내수패션 시장에 이른바 롱패딩 열풍이 불었다. 원래 운동선수들이 벤치에서 입는다고 해서 일명 ‘벤치다운’으로 불리는 롱패딩은 지난해 여세를 몰아 올겨울 시즌에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오리털과 구스다운(거위털 충전재) 롱패딩이 올겨울 시즌에는 작년보다 오히려 배 이상 판매될 것으로 보여진다.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와 스포츠 브랜드들도 이같은 롱패딩 열풍을 타고 대부분 작년보다 판매물량을 대폭 늘리고 있다. 유명 브랜드마다 작게는 10만~20만 피스에서 60만 피스 이상을 확보하고 가을 초부터 쌀쌀한 날씨 덕에 불티나게 팔리면서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롱패딩이 겨울 패션의 중심으로 등장한 것이다.
피스당 최저 몇십만원에서 최고 100만원대에 육박한 롱패딩은 국내 유명 스포츠 및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올겨울 시즌에 전체적으로 300만 피스 가까운 물량을 확보하고 조기판매에 총력전을 전개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시장 규모다.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대규모 시장에서 국산 소재는 전체의 10% 내외의 이삭만 줍고 있다. 겉감과 안감을 합치면 2000만 야드 이상의 원단을 중국과 대만산이 사실상 싹쓸이한 것이다. 롱패딩뿐 아니라 일반· 숏패딩까지 합치면 3000만 야드 이상의 겉감과 안감이 소요되는데 결국 알맹이는 중· 대만이 차지하고 국내 소재업계는 쭉정이만 줍는 격이다.
이 많은 롱· 숏패딩 의류의 봉제 역시 국내생산은 극소수다. 국내 봉제 산업이 이미 공동화(空洞化)된 지 오래여서 불가피한 현상이다. 반면 원단은 대구 산지에서 얼마든지 생산이 가능한 품목이다. 제직· 염색· 코팅  이 모든 것이 대구 산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황금시장을 중· 대만에 뺏기고 있는 것은 바로 가격 차 때문이다. 국산 원단 가격이 중· 대만산에 비해 최소 10~20%의 격차를 보이고 있어 패션 브랜드들이 외면하고 있다. 세계가 울타리가 사라진 글로벌 시대에 치열한 경쟁을 통해 더 싸고 더 좋은 제품을 찾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과거처럼 애국에 호소하며 국산품을 장려하던 쌍팔년도 시대가 아니다.
롱패딩은 겉감용 소재로만 피스당 3.5야드가 소요된다. 대부분 경사용은 30-72 DTY를, 위사용은 30데니어 고신축사를 사용하거나 경사용으로 50-72 DTY에 위사용 40-26 고신축사를 사용한다. 원사는 물론 사가공 제직· 염색· 후가공 모두 국내에서 생산된 이 원단을 국내에서 50%만 공급해도 국내 산업의 가동률이 획기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수천만 야드 원단을 만들기 위해 원사 소요량과 사가공· 제직· 염색· 코팅 공정의 연관 산업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다면 과연 국산 원단의 가격경쟁력을 맞출 수 있는 대안은 없는 것인가. 필자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대량의 물량을 생산하는 데는 그만큼 생산성에서 각 스트림이 기대 이상의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 이같은 대전제에서 원사 메이커와 사가공· 제직· 염색· 코팅 업체가 단계별로 가격을 조금씩만 양보하면 전체적으로 10%의 가격 인하는 쉽게 달성할 수 있다.
제조업은 바로 가동률이 원가다. 같은 스펙의 원단을 주야로 풀가동했을 때 생기는 시너지효과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여기에 중국과 대만산은 원단 자체에서 최소 8%의 관세를 부담한다. 물론 완제품은 FTA 체결 국가에서 들여오는 경우 달라질 수 있지만 수입부대비용도 만만치 않다.
2년 전 경기 북부 니트 업체가 중국과 경쟁해 저가로 받아온 니트 자카드 원단을 동 업계가 협업해 주야로 가동했더니 처음 적자구조가 엄청난 이익을 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문제는 이같은 가능성을 뻔히 알면서도 이를 추진할 구심체가 없다는 점이다. 각 스트림별 대표가 참여하고 관련 단체장이 참여해 구심체를 만들어 대안을 제시하고 추진해야 한다. 이 구심체가 나서서 각 스포츠· 아웃도어 브랜드를 찾아다니며 수요조사를 하고 “중국· 대만산과 품질 가격을 맞출 테니 한국업체에 오더를 달라”고 설득해야 한다. 가격과 품질 차이가 없는데 굳이 외국산을 선호할 패션 브랜드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는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대구 PID 당시 필자가 전면에 나서 대구에서 관련 업계 합동회의를 가졌을 때 이미 거론된 내용이다. 당시 모두가 가능성을 확인하고 적극 동참하기로 다짐까지 했다. 그럼에도 아무런 진정이 없고 도로 아미타불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말로만 합의하고 후속 대책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산 원단 사용 대구 침장업계 배워야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다. 황금시장을 중국, 대만에 다 넘겨주고 오더가 없어 직기를 대거 세우고 염색 공장이 주 4일 가동하는 참혹한 현상을 하소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관련 업체와 단체장이 전면에 나서 구심체를 만들어야 한다. 필요하면 대구시장과 경상북도지사도 합류시켜 대안을 갖고 패션기업을 설득해야 한다. 함께 멀리 가기 위한 동반성장을 모색해야 한다.
대구에서도 비슷한 성공사례가 있다. 대구 서문 시장 화재로 침장상가가 모조리 불탄 후 대구시가 구심체가 돼 관련 단체를 설득한 끝에 침장용 국산 원단 사용을 실현시켰다. 대구 경북 침장업체들이 90% 의존하던 중국산 침장원단을 국산으로 대체하는 용단을 내렸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롱패딩 원단만 국산으로 대체하면 국내 관련 산업에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지금이라도 직시하고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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