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아프리카 케냐와 방글라데시, 우즈베키스탄의 먼 길을 다녀왔다. 7일간의 일정 중 4일은 케냐에서 나머지 3일은 시간을 쪼개 방글라데시와 우즈베키스탄을 거쳤다. 여행목적은 나이로비에서 열린 ITMF(국제섬유생산자연맹) 총회를 취재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가고 오는 길에 방글라데시와 우즈베키스탄을 볼 수 있는 아주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솔직히 필자의 이번 케냐 방문은 당초 예정에 없었던 벼락치기 결정이었다. 역사적으로 두 번째이지만 과거와 천양지차로 위상이 달라진 ITMF회장국의 체면을 생각해 많은 섬유 패션업계 중진들의 참가를 기대했었다. 안타깝게도 참가 신청 마감일인 7월 말이 지나도 섬유 단체장 중 누구도 선뜻 나선 이가 없었다.
섬산련으로 부터 이같은 사실을 확인한 노희찬 명예 회장이 의협심을 발휘해 “자신부터 참가하겠다”며 단체장들을 채근했다. 결국 이런 핑계 저런 이유로 빠지고 단체장 중 김준 방직협회장과 민은기 섬유수출입조합 이사장이 중요한 스케줄을 모두 제치고 동행했다. 필자도 실망감을 떨치지 못한 채 회장국의 체면을 생각해 무리해 참가를 결정했다.

 

성 회장 개인 아닌 한국 섬유산업 영예

다행히 섬산련 정동창 부회장과 관계자를 비롯 영원무역 본사 임직원과 영원무역 해외 법인장들이 대거 수행하면서 한국대표단이 30명 가까이 늘어나 신임 회장국의 체면을 살렸다. 그러나 세계 29개국 300명 가까운 기라성 같은 섬유 기업인과 단체장들이 참석한 이 총회에 다른 나라는 달랐다. 중국은 무려 80명의 대표단을 파견해 ITMF 대주주 행세를 했다. 대만도 30명 가까운 기업인과 ITMF 대표가 일찌감치 도착해 관광을 끝내고 회의에 참석하는 열의를 보였다. 각국 대표를 모두 진지한 자세로 세계 섬유산업 동향과 미래에 관한 관심을 갖고 분야별 주제 발표와 토론회 등 3일간의 빽빽한 공식 일정을 소화했다.
이같은 열띤 관심과 토론을 지켜보면서 부러움과 함께 심한 자괴심을 떨칠 수 없었다. 이미 글로벌 경영의 1인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성기학 신임 회장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와 환영의 물결 속에 정작 회장국 인사는 극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노희찬 회장의 솔선수범으로 김준 회장과 민은기 이사장이 동참했고 한양대학교 정성훈 학장과 김유겸 FITI 시험연구원 본부장이 합류해 모양새는 갖췄지만 어딘지 썰렁한 것은 사실이었다. 공식 회원인 섬산련 사무국과 영원무역 해외 법인장들이 없었다면 신임 회장국 체면이 깎일 뻔했다.
전국에는 60여 개 섬유 패션단체와 연구소, 시험연구원이 있다. 각기 기라성 같은 중진들이 단체장을 맡아 활약하고 있다. 단체장은 업계를 대표하는 봉사자다. 때로는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손해를 감수하면서 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다. 대의명분이 있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몸과 시간, 그리고 소정의 경제적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각자 만부득이한 사정이 없을 리 없다. 불가피한 회사 업무와 선약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소속 단체와 직접 관련이 없어도 섬유 관련 국제 행사에는 동참하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단체장은 우선 자신의 기업이 탄탄해야 하고 희생과 봉사를 덕망으로 믿고 처신해야 한다.
성기학 회장의 ITMF 회장 취임은 성 회장 개인의 영광과 함께 한국 섬유패션산업의 영예다. 비롯 쇠락의 징검다리를 건넌지 오래인 한국 섬유산업이지만 국제적 위상이 크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 성 회장 자신도 분초를 다투는 격무 속에서 ITMF 회장 취임을 계기로 더욱 적극적이고 다각적으로 섬유산업 중흥정책에 전력투구할 뜻을 밝히고 있다.
10월 또는 11월 중에 섬유패션업계 지도자들을 창녕 고택(古宅)으로 초청해 “ITMF 회장 취임 소감을 밝히고 어려움에 봉착한 국내섬유패션산업 중흥을 위해 지혜를 모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ITMF는 글로벌 경영의 대가로 전 세계 섬유인이 공인하는 성 회장이 운전석에 앉으면서 명실공히 세계 섬유 분야 간판 기구로 더욱 도약할 것으로 보여진다. 기존 면방 위주에서 화섬과 의류, 화섬 직물에 이르기까지 섬유 전 스트림을 아울러 확대할 계획을 밝히고 있다. 통계와 정보교류를 더욱 활성화해 섬유 패션기업이 경영에 참고가 되도록 할 방침이다. 더불어 한국 섬유패션산업의 기사회생에도 어느 정도 기여할 것으로 보여진다.
성 회장의 ITMF 회장 취임을 계기로 우리 섬유패션업계가 심기일전해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성 회장은 나이로비에서도 분명히 말했다. “섬유 산업은 영원한 성장 산업이다”고 강조했다.
실제 ITMF가 발표한 조사 통계에서 상위 10대 섬유국의 생산량은 계속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타깝게도 한국만 생산량이 줄었다.
어려울수록 업계가 화합과 단결을 통해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섬유산업연합회가 제구실을 못 한다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 참여하면서  섬산련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 최근 들어 섬산련의 국내외 행사와 회의에 단체장의 참여도가 매우 저조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해 한· 대만 때도 단체장 참여도가 극히 부진했다.
사마천의 사기에 중구삭금(衆口?金)이라는 말이 있다. 여러 사람이 한 목소리를 내면 쇠도 녹인다는 뜻이다. 어려운 산업 환경에서 모래알이 돼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싫건 좋건 섬산련이 섬유 단체의 종가임을 부인할 수 없다.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결집해 함께 해결해야 한다. 지금은 엄혹한 산업 환경이다. 제도와 정책에서 섬유패션업계가 정부 측에 많은 것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

 

섬산련이 구심체 ‘중구삭금’ 돌파해야

이같은 대전제에서 우리 섬유 패션업계가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지금까지 위기란 말만 하고 정작 극복대책은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 풍부한 인력과 저임금의 장점을 갖고 있는 중국, 베트남,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가 첨단 자동화 설비로 무장했다. 반면 우리 현실은 30년, 40년 된 구닥다리 설비로 안주하고 있다. 경쟁국은 최신 미사일로 무장했는데 우리는 소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런 천수답 경영으로는 회생이 불가능하다.
하나의 예증으로 일본에서 전자시계가 나오자 세계 시계 시장을 지배해 온 스위스 업계가 처음 코웃음을 쳤다. “저게 시계냐”고 방심하다 스위스 시계산업이 송두리째 박살 나기 시작했다. 그 후 스위스 시계 업계가 포기하지 않고 노력을 경주해 차별화· 고급화로 재무장했다. 스위스 시계 산업이 재도약했다. 일본의 전자시계와 차원이 다른 고급화 전략으로 다시 일어선 것이다.
우리 섬유 패션산업도 이같은 전략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규모 경쟁으로는 안되지만 차별화· 고급화로 무장한 틈새시장은 얼마든지 있다. 다만 삽질하지 않고 물이 고일 수 없고 대패질 않고 매끈한 나무를 기대할 수 없듯 사즉생(死則生) 각오 아래 마부위침(磨斧爲針) 정신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나이로비 延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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