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은 소리 없는 살인자다.’ 에릭 클라이넨버그 저서 ‘폭염사회’가 실감 나게 발등의 불로 다가왔다. 111년 만에 인두로 이마 지지는 폭염에 사람과 짐승, 물고기까지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쉰다. 열섬현상에 건물은 불가마로 달궈지고 26일이나 거듭된 열대야현상은 모든 생명체를 파김치로 만들었다.
살다 살다 폭염이 이토록 무서운 줄 처음 알았다. 하긴 2003년 유럽에서 7만여 명이, 2010년 러시아에서는 5만여 명이 폭염으로 사망했다. 95년 7월 중순 미국 시카고에서도 46도의 폭염으로 739명이 사망했다. 우리나라도 94년 폭염 때 전국에서 3000여 명의 초과 사망자가 발생했다.
올여름에도 뙤약볕에 밭일을 하다 사망한 희생자가 40여 명이고 온열 환자는 수천 명에 달한다.
자연을 파괴시킨 업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내년 이후에도 이같은 폭염이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소름 끼친 재앙이다. 홍수와 폭설뿐 아니라 폭염으로 인한 재난대책이 급선무다.

 

소리 없는 살인자 폭염 뒤에 혹한 오나

폭염이 사람만 잡는 것이 아니다. 섬유· 패션 경기에도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가뜩이나 내수패션 경기가 죽을 쑤고 있는 상황에서 폭염으로 인한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가두매장엔 사람이 안 오고 백화점과 대형쇼핑몰에 인파가 몰리지만 패션의류 매출은 꿈쩍 않고 있다. 평소 8월 중순이면 가을 상품 판매가 본격 기지개를 켠 것과 달리 올해는 진열조차 못 하고 있다. 안되려면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듯 폭염이 불황을 모질게 덧칠하고 있다.
그래도 말복(末伏)이 지나면서 지긋지긋한 열대야를 몰아냈다. 가쁜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기상청은 혹서(酷暑) 뒤엔 혹한(酷寒)이 뒤따른다고 했다. 기왕이면 지난해처럼 올겨울 초반부터 한파가 몰아쳐 옷 장사가 대박이 났으면 싶다.
말을 바꿔 12월 결산 섬유 패션 상장사의 2분기 실적이 공개됐다. 언제나 매한가지이지만 우등생 경영과 적자 경영기업의 희비가 엇갈린다. 돌아가는 통박으로 봐 국내외 경제 사정이 모질게 내려앉고 있어 걱정했지만 의외로 선전한 기업이 많았다. 모든 기업이 외형보다 내실 경영에 충실한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역시 초일류 기업은 “불황아 비켜라. 내가 간다”며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 쾌거를 이룩했다. 난공불락 실질적인 영업이익 1위인 영원무역은 2분기 실적에서 매출 증가보다 영업이익이 훨씬 높았다. 세계 최대 아웃도어 생산수출기업인 영원무역의 매출은 작년보다 1.8% 증가에 그쳤지만 영업이익은 15%나 증가했다. 오더는 물론 생산이 더욱 안정돼 사고가 없었고 더군다나 딜리버리에 쫓겨 비행기로 싣는 부담이 없었다는 증거다.
외형에서 국내 섬유 패션 상장기업 중 영업이익 1위인 휠라는 타이틀리스트의 아쿠쉬네트 실적이 효자 노릇을 해 매출 14%, 영업이익은 42%나 늘어나는 쾌조를 보였다. 타이틀리스트는 실적을 지분율로 계산하면 실질 이익 규모는 영원무역보다 다소 떨어지겠지만 폭풍 성장임을 부인할 수 없다.
대표적인 내수패션 기업인 LF도 어려운 내수 경기를 감안할 때 우등생 경영을 했다. 작년 동기보다 매출은 8% 증가한 데 비해 영업이익이 13%나 늘어난 것은 외형보다 내실에 충실한 증거다. 면방기업이자 패션기업인 동일방직의 실적호조로 크게 눈길을 끈다. 2분기 매출은 5.3% 증가한 데 비해 영업이익이 17%나 늘었다. 국내 면방설비를 대폭 축소하고 수입사 영업을 확대하면서 패션영업이 포개진 것으로 보여진다.
화섬업계의 간판 주자인 휴비스는 2분기 실적이 크게 점프해 어려운 화섬영업에서 놀라운 실적을 보였다. 폴리에스테르 장섬유보다 SF 최강자의 위치를 활용해 1분기보다 영업이익이 갑절이나 늘었고 작년 동기보다 114%나 급증 현상을 보였다.
여성 패션의 최강자인 한섬은 2분기 중 매출은 작년보다 소폭 감소한 데 반해 영업이익은 19.4%나 늘어나 패션경영의 거품을 뺀 것으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1분기보다 영업이익이 반 토막 난 것을 보면 내수패션 경기가 녹록지 않음을 반영하고 있다.
2분기 실적에서 더욱 눈길을 끈 것은 면방기업의 두각이다. 대표적인 면방기업인 일신방의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보다 43%나 늘었다. 1분기보다도 60%나 늘었다. 국제 원면값 상승을 계기로 면사값이 강세를 보인 반사이익으로 보인다. 2010년 이후 내리 7년간 곤두박질친 면방경기의 판도 변화다.
섬유패션상장사 중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올 1분기 무려 140억원의 영업적자를 낸 한세실업의 흑자전환이다. 2분기 한세실업의 영업이익 규모는 112억 4800만원으로 작년 동기에 비해서는 아직 14%가 떨어지지만 2분기의 흑자전환이 3분기 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다.
또 국제 원면가 상승을 계기로 면사값 연쇄파급 효과를 보고 있는 일신방과 경방· 동일방 등의 실적 호조에 비해 같은 면방사인 전방과 대한방은 적자 지속을 벗어나지 못해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반면 의류벤더인 윌비스의 2분기 실적이 작년 동기보다 영업이익에서 187%나 늘어나 주목을 끌고 있는 데 반해 1분기 중 85억 7100만원의 영업이익을 낸 패션기업 티비에이치글로벌은 2분기에 114억원의 영업적자를 내 급속한 실적 악화를 초래했다. 이와는 달리 올 1분기 9억 5000만원의 영업적자를 낸 태평양물산은 2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보다 76%나 늘어나 1분기 부진을 만회했다.

 

우량기업 외형보다 내실경영 적중

여기에 원료값 상승과 달리 수요업계의 극심한 경기침체로 원사값 반영을 못한 화섬업체의 폴리에스테르 장섬유 영업이 여전히 부진해 코오롱 FM 같은 전문기업의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같은 화섬 메이커이지만 TK케미칼은 폴리에스테르 장섬유와 칩 스판덱스 등으로 다각화된 데다 모기업의 건설 사업을 병행하면서 뚜렷한 실적 개선을 나타내고 있다. 웰크론은 승승장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영업이익과 순이익 모두 적자전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구의 대표적인 화섬 직물과 니트 직물업체인 성안 역시 이집트로 생산 거점을 이전하면서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나타났다.
어찌 됐건 12월 결산 섬유패션기업의 2분기 실적에서 나타나듯 불황이 아무리 심해도 끄떡없이 성장하는 곳과 그렇지 못한 기업이 극명하게 대조를 보인 것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해주고 있다. 신념을 갖고 고도성장기업은 벤치마킹하면 길은 열리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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