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시계가 숨 가쁘게 돌아가는 역사의 순간이다. 초박빙 살얼음판을 걷는 위태로운 상황에서 될 듯 말듯하던 북미협상이 받아놓은 밥상이다. 전 세계 시선이 집중된 세기의 협상에서 능청스러운 두 괴짜(?) 영수가 어떤 선택을 할지 걱정과 기대가 교차된다. 노련한 장사꾼 트럼프가 동양의 히틀러와 평양의 덩샤오핑으로 갈리는 김정은을 어떻게 요리할지 고도의 수 싸움이 볼 만하다.
영리한 여우는 굴을 여러 개 파는 법이다. 잔인한 김정은이 발가벗고 화끈하게 비핵화의 후속 조치를 선택하면 누렇게 부황 든 인민들이 이팝(쌀밥)과 고기국을 먹는 것은 시간문제다. 만약 중국의 간교한 훈수에 잔재주를 부린다면 북한을 불구덩이 속으로 쑤셔 넣을 자충수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김정은의 순간의 선택이 한국처럼 잘 사는 나라가 될지, 아니면 지도에서 사라질지 백척간두 벼랑길에 서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마지막 한 모금 남은 물통의 물을 모래에 쏟아버린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를 학수고대해본다.

 

경영난 비관 ‘세인트’ 李 사장 자살 충격

본질 문제로 돌아가 세계 경제의 10년 호황이 꺾이고 있다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미국과 일본, 중국은 제조업 경기가 펄펄 끊은 데 반해 한국만 식어가던 상황에서 자칫 설상가상이 되지 않을까 불길한 예감이 든다. 지금 이 순간도 중소 제조업 현장에는 “못 살겠다”는 비명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다. 달콤한 자료만 쑥 빼서 보고 했겠지만 최저임금 인상에 국민 90%가 만족한다는 조사 통계는 턱도 없는 소리다.
물론 외국인 근로자만 살찌우는 최저임금 인상 책임을 문재인 정부에만 돌릴 수는 없다. 지난해 대선 때 여야 후보 누구도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인상에 찬성하지 않는 후보가 없었다. 고용을 책임지는 기업이 죽건 말건 근로자 입맛에 맞는 공약 대포를 쏘아댄 후폭풍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단순 기본급만 기준한 모순과 함정이 몰고 온 필연적인 부작용을 감췄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16.4% 올린 7530원으로 인상되면서 기본급만 기준해도 기업들은 15조의 추가 부담을 안았다. 여기에 연장 수당과 퇴직금, 4대 보험을 포함하면 실제 26% 인상 효과다. 또 올해 최저임금 7530원을 기준해도 연장근무 수당 50%, 야간근무수당 100%를 3교대로 나누면 기업은 이미 1만 1000원 이상의 최저임금을 부담하고 있다. 또다시 최저임금 심의위원회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같은 수준으로 올리면 기업의 최저임금 부담은 1만 5000원 가까이 올라가게 된다.  
이대로 가면 간판 내리고 문 닫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정치권이나 정부에 있는 탁상행정의 백년서생들은 이같은 기업의 피 말린 상황을 모른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세계 경제가 호황을 유지하는 상황에서도 반도체를 제외한 대다수 산업이 악전고투하고 있는 판국에 해외 경기마저 꺾이면 이 또한 충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산업부와 고용노동부를 비롯한 경제 사회부처 공무원들이 기업현장에 한 번쯤 파견근무를 해봐야 한다. 어디서부터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커녕 ‘기업할 수 없는 나라’가 됐는지 현장에서 체험해봐야 한다. 흔히 쓰는 말로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다.
얘기는 다르지만 때마침 아주 불길하고 애석한 사건이 발생해 가뜩이나 우울한 섬유업계에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23년 동안 승승장구한 것으로 알려진 니트직물 전문업체인 세인트상사의 이승용 사장이 경영난을 비관하며 지난 31일 새벽 자살한 사건이다. 이 회사는 레이온을 포함한 차별화 원단을 전문으로 대형 의류벤더와 해외 바이어들 사이에 폭넓은 인지도를 갖고 있었다.
잘 나가긴 했지만 니트 직물로는 성에 안 찬 듯 150억원을 들여 베트남에 3000명 종업원 규모의 봉제공장을 투자한 것이 화근이었다. 안산에 염색공장도 인수했고 내수 패션도 진출했다는 소문도 있다.
연간 매출이 줄잡아 600~700억대에 이른 것으로 알려진 이 회사는 비전문분야인 베트남 봉제공장 투자가 결정적인 패착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른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사판(絲販)업체를 비롯한 원부자재업체와 임가공료 대금을 못 주고 부채 규모가 수백억원에 달하게 되자 심한 압박감에 시달렸다는 전언이다. 결국 52세의 젊은 나이에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거래하던 편직· 염색가공· 검사소 의류벤더들이 돈을 못 받고 원단 공급이 안 돼 발을 동동 구르는 혼란상을 빚고 있다.
기업을 하다 보면 잘못돼 부도도 나고 파산할 수 있지만 자살로 모든 것을 끝내겠다는 발상은 어리석은 일이다. 법정관리나 여러 재기 방법이 있을 텐데 자살로 정리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선택이다. 어찌 됐건 20년 전에 부인과 헤어진 후 딸 하나를 키우며 사업에 전념해온 한 기업인의 자살 소식에 마음이 착잡하다. 세인트상사 이 사장뿐 아니라 위기에 봉착한 수많은 기업들도 자살 충동을 느낄 수 있지만 극단적인 선택만은 안 된다.
솔직히 요즘 섬유뿐 아니라 많은 중소기업들의 똥은 개도 안 먹을 정도로 쓰다고 한다. 날이면 날마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경쟁력이 떨어지면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중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보다 5~10배나 비싼 임금을 주고 비싼 전력료까지 가세하다 보니 앞뒤가 막막한지 오래다. 지금 산업현장은 고임금보다 더 무서운 인력난에 아비규환이다. 사람이 없어 공장 가동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돈보다 더 급한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대구 산지의 중견 직물 기업 사장은 “투자를 하고 싶어도 사람이 없어 못 한다”는 푸념 아닌 하소연을 했다. 불황에도 비교적 잘 나간다는 이 회사의 참모들은 새 기종으로 개체하고 증설하자고 성화지만 4~5년이면 50~60대 인력마저 고갈될 것이 뻔한 상태에서 투자할 수 있느냐고 항변한다. 최저임금인상으로 외국인 근로자가 휴일, 연장수당을 합쳐 월 380만원을 받지만 이마저 제대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본은 80만원, 두바이에는 네팔· 파키스탄 근로자를 월 40만원 조건에도 외국인 희망자가 넘치는데 우리는 알량한 외국 고용허가제에 묶여 맘대로 구할 수가 없다.

 

인력고갈 뻔한 데 뭘 믿고 투자하나

기업현장에서 나도는 소문은 베트남 근로자가 한국에 오기 위해 브로커에 2000만원이란 거액을 주고 온다는 설이 파다하다. 그것도 희망자가 넘쳐 1년 가까이 기다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공장을 세울 수 없어 배짱 내민 불법 체류자를 사용하다 보니 기업인들이 도매금으로 전과자 신세가 되고 있다. 내국인은 떡 쪄 놓고 빌어도 오지 않는 현실에서 최저임금 적용하고 4대 보험 들어주는 외국인 근로자마저 구인난을 겪어야 하는 기막힌 현실이다.
아직 중소기업에게는 몇 년 시간이 있지만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임금인상과 인력 부족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대로 가면 진짜 게도 구럭도 다 놓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나 정당의 인기는 거품과 다를 바 없다. 무엇보다 먹고살기 팍팍하면 득달같이 등 돌리는 것이 민심이다. 6.13 지방선거에서 압승한다고 기울어진 노동정책을 고집한다면 위험천만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민심은 조변석개(朝變夕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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