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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산지 연쇄 부도 ‘특급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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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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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살이 아니다. 진짜 기업하기 어렵고 팍팍하다. 지금은 20년 전 외환 위기보다 더한 산업 위기다. 타 산업에 비해 우등생이라는 섬유패션산업이 악전고투할 정도면 다른 업종 중소기업은 오죽하겠는가.
수출 비중이 80%에 달하는 섬유산업의 대외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세계 1위 섬유대국인 중국의 규모 경쟁에 이은 품질 경쟁력은 더욱 빠르게 진화되고 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이어 인도의 경쟁력 또한 겁나는 수준이다. 가만히 놔둬도 ‘훅’ 불면 날아갈 정도로 허약해진 것이 우리의 섬유 산업 현주소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우리의 내부 환경은 갈수록 견디기 어렵게 비틀고 쥐어짜는 형태로 가고 있다. 이미 중소기업이 임금 부담과 인력난으로 고립무원의 한계 상황에 몰려있는데도 엎친 데 겹친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 내년에 최저임금이 16.4%가 뛰어 시급 7530원이 되면 간판 내리고 문 닫을 기업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고용인원이 가장 많은 면방업계가 올해 생산직 근로자 평균임금이 연 3646만원 수준인데 내년에는 4104만원으로 급상승하게 된다.

중견기업 대남 부도 끝 아닌 시작 경계

전통적인 박리다매 산업인 섬유산업 근로자에게 월 400만원을 지급하고 살아남을 기업이 있겠는지 상상을 넘어 예상해야 하는 것이다. 내년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면방 사업장의 70%가 적용 대상이 된다. 그래서 면방마다 “못해먹겠다”고 반발하며 공장폐쇄 아니면 베트남 이전으로 자구책에 몰두하고 있다. 오죽하면 최저임금 인상에 앞장섰던 어수봉 최저임금위원장이 “최저임금 범위에 정기상여금, 교통비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겠는가.
중소기업이 기업할 수 없는 상황을 덧칠하는 또 다른 무서운 요소는 근로시간 단축이다. 현행 68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면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배로 늘어나는 연장근무수당을 감수해야 한다. 외국인 근로자 천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의 허울 좋은 위상 아래 기업은 줄초상 돌림병을 각오해야 한다.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일자리를 나누자는데 누가 반대하겠는가마는 절박한 기업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나마 천만다행으로 전기료 변수가 될 큰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가 가능해져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처음부터 긁어 부스럼 격인 찬반공론화 조사는 부질없는 일이었다.
웬만하면 어둡고 비관적인 면보다 밝고 희망적인 내용을 전개하고 싶은 필자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어 속이 상한다. 돌아가는 통박이 3~4년내 국내 섬유산업이 뿌리째 흔들릴 요소가 많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섬유산업의 허리 부문인 직물산업이 어떻게든 버티어주면 현상유지라도 기대하지만 갈수록 이미 공동화된 봉제산업을 닮아가고 있다. 직물산업이 쇠퇴해지면서 전후방 산업이 동반 추락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설비 축소와 감산에 감산을 거듭한 면방은 생산을 줄여 재고는 없지만 여전히 누적적자에 신음하고 있다. 2010년 이후 장기불황에 시달려 온 면방업체는 올해도 면방자체로 흑자 낼 기업이 없다. 가랑비에 옷 젖고 낙수 물에 바위가 뚫리듯 적자가 지속되면 기업 포기는 자명하다. 세상이 변해 변곡점의 꼭대기에서 ‘갑’이 된 의류벤더들이 값 싼 인도산 사용을 늘리고 있어 속수무책이다.
대표적인 업스트림인 화섬도 모질게 지속된 불황국면에 만성적자에 신음하고 있다. 중국과의 규모 경쟁뿐 아니라 품질 경쟁에서도 밀린 지 오래다. 베트남산 화섬사도 중국산보다 경쟁력이 앞선 품목이 많아 국내 반입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중국과 사실상 가격연동상태인 국내화섬업계는 중국이 내수가격을 올려도 한국에서는 올리지 못한다.
한마디로 국내산업이 사실상 고갈된 봉제 산업은 차치하고라도 시난고난 버텨 온 직물산업까지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 그동안 ‘죽네 죽네’하면서도 어렵게 버티어 오던 기업이 떡쌀 담그기 시작했다. 실제 며칠 전 대구섬유업계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주)대남이 기업경영을 포기했다.
영천에 번듯한 워터젯트룸 90대 규모 공장을 보유하고 폴리에스테르직물 중견업체로 이름을 날린 업체다. 업계에 알려진 것은 금융권 부채 90억원에 원사 대금과 임가공료 등이 10억 가까이 돼 도합 100억원 규모의 부채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대남의 백용진 사장은 인품이 좋고 탄탄한 기업인답게 지역 섬유업계에서는 중진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불황에 장사 없다”고 기업 포기라는 마지막 선택을 하고 말았다. 대남의 부도는 단순히 수백 개 기업 중 한 개 회사의 도산으로 치부할 수 없는 위험한 분위기로 치닫고 있다. 끝이 아닌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난 4~5년간 계속된 대구 경북 직물업계의 불황 국면은 제2, 제3의 대남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추석 위기는 그런대로 넘겼지만 연말 또는 새해 설 자금 성수기가 뇌관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구 경북과 양대 섬유산지인 경기 수도권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벌써 직물 트레이딩업체가 편직, 염색료 부채를 잔뜩 안고 도산한 후유증이 확산되고 있다. 니트직물 경기 침체로 연관 염색, 프린트업계들이 일감이 없어 한숨짓고 있다. 반월염색공단 소재 某 날염 전문업체의 법정관리 신청설이 나도는 등 불안성 가연심리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이같이 부도· 도산업체 확산 가능성이 커지면서 업계의 불신 사조도 더욱 커지고 있다. “어느 것이 흰 까마귀이고 검은 까마귀인지 분간이 안 된다.”며 경계의 눈길이 번지고 있다. 화섬메이커와 중소· 가연업체들은 거래 선의 자금 흐름을 밀착 감시하고 있다. 여신을 조이기 위해 담보를 더욱 세게 챙기고 외상 거래를 대폭 축소하고 있다. “자칫 호박씨 까서 한입에 털어 넣는 실수”를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수출· 내수 동반 불황 각자도생해야

세계적인 공급과잉 속에 화섬 직물과 니트 직물 시장 환경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국산 잠재권축사가 대량 수출돼 이를 이용한 화섬 직물이 터키시장에서 크게 각광받고 있다. 중국이 ITY 니트 직물까지 생산해 우리의 독무대를 위협하고 있다.
내수패션 경기는 여전히 엄동설한이다. 패션 브랜드마다 자사 물류창고에 재고가 가득 차 있어 신규 원단 수요가 줄고 있다. 그 좋던 아웃도어 시장도 크게 위축되고 브랜드 상당수가 아웃도어 원단을 기능성보다 가성비에 치중해 베트남산 싸구려로 대체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래왔지만 화섬· 교직물이나 니트직물 모두 특수사 중심의 차별화 전략으로 위기를 돌파할 수밖에 없다. 각자도생의 냉혹한 시장 환경에서 살아남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런 한편 답답하고 안타까운 것은 이런 절박하고 처절한 상황인데도 이렇다 할 처방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정부의 섬유패션산업정책은 발이 가려운데 신발 위를 긁는 수준에 불과하다. 업계에 토사곽란이 났는데 죽건 살건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물론 쌍팔년도 식으로 정부가 기업을 살리고 죽이던 시절은 지났다. 그렇지만 정책이 희망을 주고 지원책이 강구되면 희망을 갖고 다시 뛰는 용기라도 기대할 텐데 어루만지는 노력이 없다.
산업정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신고리 원전 5·6호기 재개가 결정된 이상 대체에너지 개발이라는 이상론을 접고 전국 1만 91개 섬유패션업체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꺼져가는 산업 불씨를 살리는 데 총력을 경주해야 한다. 섬유패션산업뿐 아니라 많은 중소업종이 더 이상 방치하면 줄초상은 불을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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