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대동소이 비율이겠지만 10년 전인 2016년 기준 우리나라 농업생산은 총 22조원 규모였다. 이 중 16조원을 정부 예산으로 농업을 지원했다. 요즘도 우리나라 최대 참외 산지 성주군에서는 박스비의 40%를 군 예산에서 지원한다. 올해 4000여 참외 농가에서 5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성주가 전국 최고 농민소득을 자랑하고 있다.
섬유산업은 농업보다 훨씬 비중 큰 산업이다. 제조업체 수는 1인 이상 4만 8000개가 넘어 전체 제조업의 11.7%다. 10인 이상 기업체는 5836개로 전체 10인 이상 제조업의 8.5%에 달한다.
생산액은 10인 이상 기준 42조원으로 전체 제조업 생산의 2.9%다. 1인 이상 기준 매출액으로 따지면 62조원에 달해 전체 제조업의 3.7%에 달한다. (2015년 기준)
농업보다 생산액이 배나 많은 섬유산업에는 이런저런 항목을 모두 합쳐 정부 지원 예산이 연간 1000억 내외다. 농업에 파격 지원을 하는 것이 배가 아파서가 아니라 전 산업의 젖줄 역할을 하다 어려워진 섬유산업을 위해 지원을 대폭 늘렸어야 했다.

정부 각료 삼성전자 베트남공장을 가보라

솔직히 지금 우리섬유산업이 백척간두 벼랑 끝에 몰려 있다. 갈수록 취약해진 경쟁력으로 수출 경기가 대공황 상태다. 생산현장에 사람은 오지 않고 임금은 뛰고 온갖 악재가 덮쳐 불면 ‘훅’ 날아갈 처지다. 설상가상 최저임금은 급등하고 노동시간 단축예고에 전력료까지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기업마다 뒤주가 텅텅 비었다.
신임 산업부 장관은 “해외로 나가거나 공장 문 닫지 말고 국내서 재도약을 모색하자”고 강조하지만 입에 바른 얘기에 불과하다. 6000개 가까운 섬유 기업이 산 설고 물선 해외로 탈출한 이유를 모르는 아주 원론적인 얘기다. 막말로 기업이 지불능력만 있으면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려 내국인 근로자에 혜택이 가는 것은 기업들이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에서 유례없는 외국인 근로자에게까지 최저임금을 적용해 그들 좋은 일하는 한심한 제도가 문제다.
정부가 말인즉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강조하지만 기업할 수 있는 나라는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섬유 제조업뿐 아니라 중소 제조업들 모두 공장 정리하거나 해외로 나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실상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하나의 예증으로 세계 초일류기업 삼성전자의 베트남 하노이 박닌성 공장에는 2만 4000명의 베트남 직원이 일하고 있다. 지난 2008년 구미공장의 휴대전화 사업장을 확장하는 방안과 해외 공장 신설을 검토하다 베트남 진출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인구 9000만명에 달하는 베트남의 팔팔한 젊은 근로자 인건비는 월 353달러이다. 한국 공장의 3715달러보다 10분의 1도 안 된다. 삼성전자는 2012년 베트남에서 2만명의 직원을 채용한 데 반해 구미 공장 채용인원은 고작 175명에 불과했다. 구미공장 반경 200Km 이내의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고교졸업생을 모집하지만 공장 현장에는 손사래를 쳐 사람을 구할 수 없다.
뿐만 아니다. 베트남 정부는 자국 내 대규모 일자리를 제공한 삼성전자에 공장부지 34만 평(112만 4000㎡)을 공짜로 제공했다. 법인세는 4년간 전액 면제해줬고 이후 12년간 5%, 다음 34년간 10%만 내면 된다. 한국의 22%와 비교가 안 된다. 수입관세와 부가가치세는 면제이고 전기· 수도· 통신비는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베트남 여성 3만명 이상이 한국으로 시집온 사돈국가란 점에서 한국 진출기업에 베트남 정부와 근로자들이 매우 호의적이고 생산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베트남에서의 기업 활동과 한국을 비교할 때 참담한 패배의식을 떨칠 수가 없다. 정부와 정치권 인사들이 눈동냥, 귀동냥이라도 해서 이같은 실상을 알고 훈수를 해야 한다.
작년에 최저임금조정위원회가 올해 시급을 6470원으로 올릴 때 기업들이 부당함을 호소하자 고용노동부 공무원 왈 “최저임금도 못줄 형편이면 기업하지 말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년에는 16.4% 올려 7530원이 되면 기업의 지불 능력이 바닥나고 1만원이 되면 포기하는 기업이 대다수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최저임금 줄 형편 안되면 기업하지마라”는 탁상공론의 무책임한 공무원 사고 양태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그러나 섬유산업계도 이제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최저임금 타령이나 핑계로 허송한 시간이 없다.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살아갈 수단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선 곳간에 남아있는 가용자금을 총동원해 스마트공장으로 바꿔야 한다. 24시간 풀가동 공장부터 생산성과 품질의 차별화· 특화를 겨냥한 신설비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 최근 일부 선도적 사가공업체가 이 불황에도 과감히 진행하고 있는 차별화를 위한 특수설비와 기술 투자 전략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이같은 적극적인 설비 투자와 기술개발 선도업체는 최저임금 1만원 시대에도 끄떡없이 버틸 수 있다.
또 제직이나 편직· 염색공장들도 이미 닥친 현상이지만 3교대 근무를 탈바꿈해야 한다. 야간 연장수당을 절약하기 위해 주간 2교대로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 현재의 설비를 오히려 늘려서 생산량을 메꿔야 한다. 축소지향만이 능사가 아니다.
무엇보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 최저임금 1만원 시대에 맞는 품목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 우리 섬유산업의 허리 부문인 니트 직물과 화섬· 교직물 산업의 붕괴를 막기 위해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야드당 2~3달러 원단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이태리나 일본 수준의 6달러~10달러짜리 원단으로 전환해야 한다. 어차피 대형 의류벤더들이 대규모 해외 소싱으로 만든 피스당 5~6달러짜리 의류를 우리 원단으로 채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관건인 니트용 화섬소재와 혼방 교직물 소재를 독특한 기능성과 감성 소재로 바꿔 비싼 값에 파는 전략이 필요하다. 쉽지는 않지만 우선 먼저 중국은 물론 대만을 넘은 신소재 중· 고가 원단 개발이 해답이다. 남의 것 카피가 아닌 자기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시장이 호응하고 돈을 벌 수 있다. 냉엄한 각자도생 시대에 과거의 관성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섬유단체장들 강 건너 불구경 안된다

또 하나 이 비상 상황에 섬유 단체들의 책임과 역할이 새삼 강조되고 있다. 섬유산업이 백척간두 절벽에 서 있으면 섬유단체장이 들고일어나 대책회의를 하고 업계가 할 일, 정부가 할 일을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중앙과 지방 전국에 산재한 190개 가까운 단체와 연구소가 들고 일어나 지혜를 모아야 함에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산지의 관련 단체들이 현장의 애로와 목소리를 모아 줄기차게 섬유산업연합회를 통해 정부와 정치권에 건의해야 한다. 최저임금이 오른 대신 산업용 전기료라도 내려서 벌충하는 적극적인 노력과 세몰이가 필요하다.
섬유단체장들이 십시일반 성의를 모아 정치인 후원회도 가입해 창구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맨입으로 얘기하면 들은 척도 안한 것이 정치권의 속성이다. 섬유· 패션 단체장들이 섬산련에 모여 비상사태의 섬유산업을 살리는데 모든 지혜와 역량을 모을 때다. 울어야 젖 준다. 섬유· 패션업계도 이제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죽은 나무는 물을 줘도 못산다. 살아있을 때 물을 주고 거름을 주는 사즉생(死則生) 각오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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