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지지도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국정 운영의 근원이자 동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막바지 지지도가 한 자리 숫자로 추락해 국정 운영의 동력을 완전 상실했다. 결과는 임기를 못 채우고 감옥으로 가는 비운을 당했다.
취임 3개월이 지난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는 아직도 70.3%의 견조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취임 초 85%에서 최근 급격히 떨어졌다. 높은 지지도를 믿고 밀어붙이다 암초를 만난 것 같다. 중소기업의 생사기로를 좌우하는 최저임금 대폭 상승과 성급한 탈원전 정책이 국민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힌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은 여전히 제왕적 자리다. 5100만명 식솔을 거느리고 연 400조 원의 곳간을 챙긴다. 장· 차관급 130여 명과 3000여 공복을 골라 임명하는 막강한 권력이다. 문 대통령의 지지도는 아직 비교적 고공행진을 유지하고 있지만 삐끗하는 순간 하루아침에 낙상할 수 있다. 지금 경제· 안보· 외교 전 분야에서 불안성 가연심리가 팽배한 엄중한 시기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치권의 밀월도 끝났다. 힘에 부친 복지정책과 증세정책도 언론의 비판과 감시가 취임 초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한꺼번에 속결하려는 조급성은 자칫 역풍을 맞아 한방에 추락할 수 있다. 묘목을 빨리 자라게 한다고 싹을 위로 잡아당기는 발묘조장(拔苗助長)은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기업인들 조규옥 회장에 우국지사 칭호

본질문제로 돌아가 “허허 웃어도 빛이 천 냥”이라고 섬유산업이 처한 현주소가 참담하다. 최악의 불황에 사상 최대로 올린 내년도 최저임금 상승이 몰고 온 폭풍이 섬유 제조업을 송두리째 덮치고 있는 것이다. 내년도 최저임금 시급 7530원은 간당간당 버티어온 중소제조업에 치명타를 안겨주고 있다. 섬유 중소기업뿐 아니라 면방과 화섬을 비롯한 섬유 중견 대기업들도 생사기로에 내몰리고 있다.
오죽하면 80여 년 역사의 전방이 공장 폐쇄를 선언했겠는가. 최저임금 16.4% 인상은 한국에서 중소 제조업 하지 말라는 통고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전방의 조규옥 회장이 3개 공장 폐쇄란 폭탄선언을 하자 다음날 100년 기업 경방이 뒤따라 광주공장 베트남 이전을 선언했다. 똑같이 광주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전방과 경방이 동병상련의 고통을 공유했다. 전방, 경방뿐 아니라 일신방도 광주 소재 1공장 직원 일부 감원과 베트남 추가 진출을 노조에 정식 통보했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면방업체의 악에 받친 대응을 섬유 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쌍수를 들어 응원하고 있다. 시중에서는 정부에 미운털을 각오하고 공장 폐쇄와 인원 정리방침을 천명한 조규옥 전방 회장을 우국지사로 칭송하고 있다. 경총을 비롯한 사용자 측 단체와 기업들이 오금을 저리며 찍소리 못하는 것과 달리 현상을 제대로 밝히고 제 목소리를 낸 조 회장과 김준 경방 회장의 용기에 찬사와 갈채를 보내고 있다.
물론 정부 당국 입장에서는 이같은 면방업계의 선제적 반발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방과 경방이 국내 공장 폐쇄와 베트남 이전방침을 밝힌 직후 산업부와 노동부 당국자와 면방업계 대표 간에 긴급회의가 열렸다. 지난달 하순 강남의 모 호텔에서 열린 긴급회의에는 산업부 도경환 실장과 양병래 섬유세라믹 과장, 노동부 담당 과장이 직접 참석했다. 면방업계에서는 조규옥 전방 회장과 김준 방협회장을 비롯한 면방업계 대표 8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산업정책 주무 부처인 산업부와 노동정책의 주무과장이 최근 경제계의 이슈가 되고 있는 최저임금 파문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한 자리였다. 모임의 취지는 좋았지만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였다. 이미 내년 최저임금 인상의 기차는 떠났고 백지화할 수 있는 방안이 없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면방업계는 내년 최저임금 16.4%가 인상되면 전제 근로자 74%가 적용대상이 돼 누적적자에 신음하는 면방업계를 사지(死地)로 몰아넣는 격이라고 하소연했다.
또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감당할 수 없어 공장을 폐쇄하거나 해외로 이전할 방침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 비판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100년 기업 한국 떠나다”제하의 경방 공장 베트남 이전 방침이 언론에 보도되자 某여당 정치인이 “최저임금 핑계로 공장 이전 결정한 김준 회장 경영자격 없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경방이 지난해 매출 2593억원에 당기순익 294억원의 흑자경영을 누리면서 최저임금 인상분을 감당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전방의 사업구조를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면 이같은 비난이 잘못돼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2011년과 2013년을 제외하고 경방의 면방사업은 매년 수백억 원씩 적자를 냈다. 2006년에 뛰어든 타임스퀘어가 성공적으로 운영돼 섬유사업으로 발생한 손실을 커버하고 이익을 내고 있는 것이다. 경방은 이미 4년 전에 베트남에 진출해 7만 8000추 규모를 가동하고 있다. 광주공장도 베트남 공장으로 이전해 가동하기 위한 포석이다. 적자사업은 포기하거나 이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업의 최대목적은 이윤 추구다. 면방이 뒤늦게 어쩔 수 없이 막차를 탔을 뿐 90년 후반부터 해외로 탈출하기 시작한 섬유패션기업은 이미 6000개에 육박하고 있다. 지구촌에 울타리가 사라지고 고임금과 인력난을 못 이겨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중남미 등지로 진출했다. 국내에서 적자보고 도산위기에 몰리는 것보다 해외로 진출해 성장 동력을 찾은 것을 나무랄 수도 제재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섬유산업계가 언제까지 망연자실하며 자포자기해서는 안 된다. 고래 심줄보다 질긴 우리 섬유산업이 이대로 좌절하며 포기할 수는 없다. 이미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란 열차는 떠났다. 돌이킬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문제는 시간당 최저임금 7530원 시대에 살아남을 방도를 찾아야 한다. 쉽지는 않지만 사즉생(死則生) 각오로 자구책을 강구해야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람을 줄일 수밖에 없지만 현재의 인원이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자동화 설비를 늘리고 차별화· 특화 전략으로 돌파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 구조 고도화 계기로

물론 중국과 대만, 베트남이 못하는 특화 전략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소재에서부터 제직, 편직, 사가공, 염색 후가공까지 특단의 특화전략을 강구해야한다. 일본이 한국에 섬유산업을 추월당해 위기를 겪었지만 뼈를 깎는 자구노력으로 지금은 안정을 되찾고 있다. 한국이 팔고 있는 야드당 2~3달러짜리 원단을 포기하고 적어도 5~6달러 이상 고부가가치로 승부를 건 것이다.
우리 섬유업계는 그동안 수많은 위기를 기회로 극복한 경험이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차별화 특화를 앞당기는 전화위복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충분히 할 수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인 베이비 루스는 통산 홈런 740개를 치며 12번이나 홈런왕에 올랐다. 하지만 그가 1330번이나 삼진 아웃을 당했고 삼진왕도 5번이나 차지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가 당했던 수많은 삼진은 실패가 아니라 홈런을 향한 연습이었고 홈런으로 가는 과정이었다. 최저임금인상이 섬유산업 체질 강화의 과정이 됐으면 싶다. 살아남는 자가 승리자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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