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대통령학 전문가들은 대통령 임기 5년 중 제대로 일할 시간은 3년 밖에 안된다고 강조한다. 초기 1년은 업무파악에 소진하고 후반 1년은 레임덕에 걸려 영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이건 연예인이건 인기는 거품이고 삐끗하면 한순간에 시들해진다. 취임 두 달을 맞는 문 대통령의 인기는 여전히 하늘을 찌르지만 요즘 저잣거리의 시각은 벌써 불안성 가연심리가 번지고 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꽃인 기업들의 볼멘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통령 자신이 친노동이자 친기업이라고 강조하지만 기업현장의 분위기는 지나친 친노동쪽으로 간주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난고난 연명하고 있는 대다수 중소기업이나 영세 자영업자들은 성급한 최저임금 1만원 시대에 피가 마른다. 현재의 최저임금 기준 55%가 오르면 중소 제조업체들을 불구덩이 속으로 몰아넣는 결과로 간주하고 있다.

블랙홀 아마존에 추풍낙엽 오프라인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언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원자력 발전 중단의 성급함이다. 한나라의 산업정책 백년대계를 좌우할 에너지 정책을 어느 날 갑자기 칼로 무 자르듯 결정한 데 따른 불안감이다. 벌써 2조 8000억원이 투입돼 공정 30%가량 진행된 신고리 5.6% 호기 공사를 중단하고 존폐 여부를 비전문가인 ‘시민배심원단’에 맡기겠다고 하자 국민들이 버럭 화를 내고 있다. 예로부터 “선무당 사람 잡고 반풍수 집안 망친다”고 했다. 비전문가들의 훈수로 한나라의 에너지 산업 정책이 결정되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다.
전력료는 산업 경쟁력의 생명줄이다. 전력 생산 비중의 30%인 원전덕에 일본보다 우리의 전력료가 싸지만 아직도 미국, 이집트, 심지어 베트남보다 비싸다. 섬유제조업을 비롯해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해외로 탈출하는 원인 중의 하나가 고임금과 함께 비싼 전기료 때문이다. 심지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임금 국가인 미국에 진출하는 것도 우리의 절반 수준인 전력료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본질문제로 돌아가 분초를 다투는 변곡점의 꼭대기에서 세계 섬유· 패션 지도가 바뀌었다. 섬유패션 유통시장이 기존의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속히 변한 것이다. 미국의 기라성 같은 섬유· 패션 리테일러들이 아마존이란 거대 온라인 공룡 앞에 속수무책으로 주저앉고 있다.
섬유패션 유통의 거대 블랙홀인 아마존이 유통시장의 천지개벽을 일으킨 데 이어 또 하나의 일을 냈다. 이른바 옷을 입어본 뒤 구매를 결정하는 신유통이다. 옷이나 구두, 액세서리, 가방 등을 공짜로 배송받아 입어보고 반품할 수 있게 하는 이른바 ‘프라임 워드 로브’ 서비스를 선보인다는 것이다.
사진과 설명만 보고 샀다가 막상 입어보면 디자인이나 컬러, 피팅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반품하는 온라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전략이다. 옷이나 가방, 액세서리 가리지 않고 최소 3개 또는 15개까지 직접 입어보고 구매하도록 공짜로 배송한다는 것이다. 반송 박스까지 보내 하나도 안 사고 반송 딱지만 박스에 붙여 집안에 내놓으면 아마존이 무료로 회수한다고 한다. 패션 유통에 또 하나의 혁명을 예고한 아마존의 이같은 무료 시착 서비스가 예고되자 유명 백화점과 패션업체 주가가 줄줄이 폭락했다. 굳이 오프라인에서 쇼핑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아마존의 의류패션유통의 최강자 부상은 필연적으로 기존 오프라인 강자들의 몰락을 빠르게 부추겼다. ‘리미티드’‘시어스’‘짐보리’ 등 기라성 같은 패션 유통 브랜드가 도산했거나 파산보호신청인 ‘챕터11’을 신청했다.
미국을 비롯 전 세계 유통을 주름잡던 대형 또는 중견 리테일러들의 몰락 또는 극심한 침체는 우리 의류수출벤더들에게 직격탄을 안겨주고 있다. 하나의 예증으로 미국의 유명 아동복 브랜드 짐보리에 공급하던 국내 중견 의류벤더들이 수백만 달러씩 물려 생사기로에 서 있다.
과거에는 신용장 베이스이어서 선적하면 네고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외상 거래가 대부분이다. 빨라야 60일, 최고 120일 후에 결제가 이루어진다. 타겟 같은 초대형 리테일러도 120데이 결제한다. 3개월 4개월씩 결제 기간이 소요된다면 계속되는 거래 규모를 감안할 때 엄청난 자금이 묶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짐보리 같은 사태가 터지면 웬만한 벤더들은 기업 포기해야 하는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더욱 의류수출벤더들도 어제가 옛날인 것처럼 기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바이어들은 한사코 ‘더 크게 더 크게’를 요구하며 공장의 대형화를 요구해왔다. 우리 벤더들이 무리수를 써가며 해외 공장에 수천 명, 수만 명 소싱공장을 만든 것도 바이어들의 오더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이어인들 아마존에 시장을 뺏기고 수요 감소로 인한 매출 축소에 뾰족한 수가 있을 수 없다. 오더량을 줄이고 가격 후려치기가 연중행사다. 지난 10년 이상 미국 바이어들 모두 단 한해도 가격을 깎지 않은 해가 없었다. 원부자재 가격과 협력공장 임가공료를 깎을 대로 깎아 더 이상 내릴 수 없는 요즘도 가격 내리라고 성화다. 원부자재 가격 때문에 더 이상 단가 인하가 어렵다고 하면 생산성을 더 늘리라고 채근한다. 
이 상황에서 더욱 한심한 것은 대형 벤더들이 해외 초대형 매머드 소싱공장을 놀릴 수 없어 제살깎기 저가 수주를 감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장을 세우는 것보다 가동하는 것이 덜 밑진다는 것이다. 대형 벤더들의 이같은 어거지 경영에 동반 골병드는 것은 중견 또는 중소벤더들이다. 가격을 맞출 수 없어 오더를 기피하다가는 그나마 공장 가동을 멈춰야 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수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같이 벤더들의 수출 환경이 악화되고 수출 단가가 계속 추락하면서 곡소리 나는 것은 원자재 공급업체다. 거래 벤더가 오더 작지를 들이대며 닥달하거나 하소연하면 가격을 맞출 수밖에 없다. 백방으로 원가를 낮춰도 채산이 안 나온다. 면사값이 폭락하고 화섬사값이 연쇄 반응을 일으킨 것도 이 때문이다. 니트나 화섬 직물업체들도 고정 거래선인 벤더를 외면할 수 없지만 한계 상황이 온 것이다.

품목전환 발등의 불 아직 천수답 경영

여기서 남아있는 국내 섬유업계의 고민이 따른다. 규모 경쟁을 통해 원가경쟁의 비교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중국과 경쟁에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자동화 설비로 무장한 중국은 생산성과 품질 우위는 물론 한국의 5분의 1에 지나지 않는 저임금의 강점을 살려 우리 업계를 협공하고 있다. 품질 좋고 가격이 싼 중국산 앞에 국내 섬유산업 경쟁력은 갈수록 작아질 수밖에 없다.
대안은 규모 경쟁이 안된다면 품질경쟁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차별화· 특화 전략밖에 다른 처방이 없다. 더구나 최저임금 시간당 1만원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처방은 품목전환을 위한 틈새 특화 전략밖에 없다. 그렇지만 차별화· 특화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을 안고 있다. 모든 수단 방법 지혜를 총동원해 품질, 가격 경쟁과 특화 전략에 전력투구할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남아있는 국내 섬유산업도 속절없이 침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계 섬유· 패션 지도가 바뀌었는데 여전히 천수답 경영으로 살아남겠다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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