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했다. 싱그러운 초여름 날씨는 동남풍이 산들대지만 섬유업계는 북풍한설이 몰아치고 있다. 언제라고 좋은 세월이 있겠는가마는 요즘 경기 돌아가는 통박은 가히 대공황을 실감할 정도다. 지난 5월부터 칼로 무 자르듯 수출 오더가 거의 전멸상태다.
실제 우리 섬유산업의 버팀목인 직물 경기가 바닥 밑 지하실로 떨어져 산지가 아비규환이다. 니트 직물도, 화섬 우븐 직물도 목 타는 오더 가뭄에 설비를 줄줄이 세우고 있다. 여름철 마의 비수기가 연례행사이지만 5월부터 이토록 철저하게 오더가 끊긴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내수패션 경기는 세월호와 메르스, 탄핵사태 같은 악재로 젓 담은 지 오래다.
그래도 우븐이건 니트 직물이건 허리 부문인 미들 스트림은 시난고난하면서도 그런대로 유지해왔다. 괴이쩍게도 올해는 한참 바빠야 할 5월에 수출 오더가 동시다발로 끊어진 것이다. 득달같이 산지 가동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재고는 산더미처럼 늘어나고 있다. 제직이건 편직이건 설비 절반을 세운 업체가 부지기수다.

5월부터 신규 오더 전멸 토사곽란 상태

실제 대구 산지 某 중견 직물업체는 에어 제트 200대를 가동하다 5월부터 절반인 100대를 세워놓고 있다. 상당수가 이같은 오더 기근에 제직이나 편직 설비를 세워놓고 땅 꺼지는 한숨을 내쉬고 있다. 대구 경북뿐 아니라 양· 포· 동을 중심으로 한 경기 북부도 같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직물업계 혹심한 오더 가뭄은 업 스트림인 원사 메이커에도 그대로 파급된다. 화섬업체의 재고가 다시 늘어나고 적자구조에서 원사값을 내리는 고육지책을 보이고 있다. 면방업계 사정이라고 다르지 않다. 올해는 성수기는 없고 비수기만 이어지는 시장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안 보인다. 원면값은 오르는데 면사값은 추락해 고통스럽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 면방업계 사장단이 긴급회동을 갖고 대규모 감산을 결의하고 시행하고 있다. 재고 포화로 면사값이 폭락할 것을 걱정해 생산 조정에 들어간 것이다. 심지어 올여름 휴가 때 공장휴무를 전례 없이 일주일로 늘리는 문제가 본격 거론되고 있다. 예년의 3~4일보다 배 이상 전면가동 중단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사가공 업체도 상황은 심각하다. 극소수 차별화 특수사 생산업체를 제외하면 상반기에 가동률이 50%에 머물렀다. 이대로 가면 하반기에는 30% 가동을 예상하고 있다. 중국· 베트남산 DTY가 봇물 터진 듯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수입 DTY가 가격이 싼 데다 품질은 별로 흠잡을 수 없어 수요자들이 대거 몰리고 있는 것이다. 외할머니 떡도 싸고 맛있어야 사 먹는 시장 원리를 나무랄 수도 없다, 수출을 중심으로 섬유산업이 총체적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처해있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섬유 제조업이 목 졸림을 강요당한 것은 최저임금의 급상승이다. 산업현장에 돈보다 더 급한 것이 사람이듯 인력난과 고임금을 못 견뎌 기업을 포기하겠다는 기업인이 수두룩하다. 궁여지책으로 사용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알량한 제도 때문에 기업주는 1일 2교대에 연장 근무 수당과 복리후생비를 포함해 현재 월 340만원을 부담하고 있다. 현행 시간당 6470원을 기준해도 이 정도인데 시간당 1만원으로 오르면 간판 내리고 문 닫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저임금 심의위원들이 착시를 일으키고 있으나 기본급이 오르면 수당과 퇴직금이 함께 따라 오르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 같은 오류를 바로잡는 것 또한 시급한 과제다. 결국 문을 닫거나 해외로 탈출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날로 추락하는 경쟁력에 제도마저 기업 편이 아닌 상황을 개선하고 시정하려는 노력이 안 보인다. 글로벌 경영환경이 날로 악화돼 기업들이 불구덩이 속으로 쑤셔 들어가고 있어도 타개 전략과 해법이 강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냉엄한 각자도생 구도에서 자기 살 길은 기업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스마트 공장으로 전환하고 차별화· 특화 전략을 강화하는 등 사즉생(死則生) 노력은 기업 스스로의 몫이다.
그러나 개별기업이 해결하기 어려운 현안은 단체들이 앞장서 노력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크고 작은 섬유패션단체가 중앙과 지방을 포함해 190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 중 몇 개나 제대로 된 단체기능을 하고 있는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유명무실한 단체가 너무 많고 이름만 걸어놓고 희생과 봉사란 기본소명을 외면한 단체장이 수두룩하다.
단체의 목적인 친목과 단결 못지않게 기획조사 업무를 수행해 업계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나침판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여기에 기업이 겪고 있는 애로 상황을 파악해 정부를 설득하고 안 되면 각을 세워서라도 업계의 권익과 발전을 위해 총대를 메야 한다.
먼저 단체장부터 해당 업종의 수장으로서 투철한 소명의식이 있어야 한다. 봉사하기 위해 맡았다면 철저하게 봉사해야 한다. 단체장은 명예가 아닌 업계를 위한 심부름하는 머슴의 자세로 일관해야 한다. 그래서 단체장 자격은 우선 자기 기업이 잘돼야 하고 기업 규모도 누가 봐도 인정할 정도의 적정규모는 돼야한다. 자기 기업이 어려우면 봉사하고 싶어도 마음뿐이다. 또 회원사들의 신뢰도 기대할 수 없다.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능력이 부치는 단체장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장· 차관, 청장들과 수시로 소통하고 할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지도자가 필요하다. 제구실을 못한 단체는 통폐합돼야 하고 무능한 단체장은 교체해야 한다. 자기 돈 쓰고 열심히 봉사하고도 좋은 소리 못 듣는 것이 단체장인데 이름만 걸고 말로만 떠드는 무능한 단체장들은 스스로 용퇴해야 한다.

유명무실한 단체· 무능한 단체장 용퇴해야

내친김에 토사곽란 상태인 섬유산업의 위기 타개와 지속 성장 기반 구축을 위해 긴급동의를 제안한다. 섬유 패션산업에 닥친 발등의 불을 끄는 것은 물론 중· 장기 발전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능력과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업종별 지도자로 구성된 가칭 ‘섬유· 패션산업비상대책위원회’나 ‘구조고도화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경영일선에서 뛰고 있는 덕망 있고 유능한 지도자로 구성된 특별위원회가 모든 현안을 수집하고 정리해 정부를 설득하는 창구일원화가 필요하다. 특별위원회는 섬유산업연합회에 두고 각 업종별 대표가 참여해 해당 업계의 현안을 수집하고 제시하여 풀어가는 그런 기구가 필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인상 과정에서 고령자 취업자가 많은 섬유업종의 임금 차 등 적용 방안 등을 만들어 정부를 설득하는 작업도 특별위원회의 역할이 될 수 있다. 인력난 해소를 위한 외국인 근로자 쿼터 확대 문제로 일회성 건의로 끝낼게 아니라 전담분과위원회가 끈질기게 정부 건의에 나서는 것도 한 방안이다.
각 업종별 현안을 특별위원회가 수집해 창구를 일원화하고 경총이나 중소기업중앙회 등과 협력하고 관철하는 다각적인 노력을 펼칠 필요가 있다. 처절하게 망가지고 있는 국내 섬유산업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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