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주가가 160만원을 돌파하던 지난주 한세실업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글로벌 의류벤더인 한세실업의 고공행진 주가가 내려앉은 그 시점에 홍콩의 대형 의류벤더 센지오 주가도 동시에 추락했다.
증권가 에널리스트 분석에서 미국의 의류소매 경기가 예상보다 부진한 것으로 파악된 것이다. 한세의 상반기 경영실적은 작년 동기대비 매출은 0.96%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7.92% 줄었다. 순이익은 1% 줄어 작년과 거의 같은 수준이어서 글로벌 경기침체를 감안하면 비교적 선방했다.
한세뿐 아니라 대형· 중견 가릴 것 없이 승승장구 하던 의류벤더들이 올 들어 아주 힘들게 고전하고 있다. 물론 세계 초일류 아웃도어 기업인 영원무역은 올해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작년 상반기보다 40%와 5.53%가 늘었다. 예외적인 현상이다. 글로벌 벤더들이 극소수를 제외하고 상당수가 올 들어 해외에 건설한 대규모 소싱공장 가동물량을 못 채워 헉헉 거리고 있다.

충격, 메이시스 백화점 매장 100개 폐쇄

수출 의존율이 절대적인 미국의 유통업체들이 매출감소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오죽하면 미국의 대표적인 유명 백화점 체인인 메이시스가 내년 초에 100개 매장을 폐쇄하기로 했겠는가. 전체 728개 매장의 14%에 달하는 매장을 문 닫은데 대해 미국이 화들짝 놀라고 있다.
메이시스뿐 아니다. 세게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도 올해 259개 매장을 폐쇄하고 있다. 종합 소매체인 K마트도 68개 매장의 문을 닫고 있다. 이들뿐 아니라 타겟, GAP을 포함한 유수의 유통 대기업이 축소지향에 나서고 있다.
경기침체에 영향 받아 미국 국민의 70%가 백화점이 아닌 아울렛 매장에서 구매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이와 함께 온라인 쇼핑으로 급속히 전환되면서 아마존 닷컴의 폭발적인 신장으로 오프라인 밥그릇을 뺏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94년 펀드매니저로 일하던 제프베저스는 회사를 그만두고 가족들로부터 모은 30만 달러(3억 4천만원)로 아마존을 창업했다. 97년 5월 주당 18달러에 상장해 1년 만에 주가를 100달러 이상으로 끌어 올렸다. 지난해 이미 아마존의 시가 총액은 2570억 달러(약 312조원)에 달해 월마트를 밀어내고 미국 유통업계 1위에 등극했다.
월마트가 자극받아 우리 돈 3조원을 주고 젯트닷컴을 인수해 아마존보다 싼 가격으로 맞짱을 예고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온라인을 통한 유통혁명이 일어나 오프라인 매장의 패퇴를 가속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초고속 성장을 만끽해온 의류벤더들이 올 들어 더욱 고통을 받는 것은 미국 주도의 TPP(환태평양 자유무역협정) 노다지를 겨냥해 베트남에 대규모 투자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세아· 한세· 한솔 등 빅3부터 각 사마다 250억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수백개 라인의 신· 증설을 단행한 것이다. 이들 벤더들의 투자열기에 덩달아 원부자재 업체들도 욕심껏 투자했다. 여기에는 미국 바이어들의 투자 압력이 병행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등장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팽배해지면서 TPP 발효에 제동이 걸렸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까지 TPP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실적으로 오바마 대통령 재임기간에 미국 상· 하원 통과는 물 건너 간 셈이다. TPP 발효가 요원해진 것이다.
요즘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각국 의류벤더 공장마다 오더 가뭄으로 크게 고전하고 있다고 한다. 공급과잉으로 벤더 자체공장 오더가 안 차다보니 협력 하청업체들도 일감이 없어 한숨 쉬는 공장이 많다는 전언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변곡점의 꼭대기를 달리고 있는 세계 유통혁명은 필연적으로 싸고 좋은 제품의 선호도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싸고 좋은 제품을 단시간 배송으로 소비자에게 공급하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벤더들마다 원부자재 구매에서부터 더 싸게 생산할 수 있는 소싱처를 찾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베트남과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에 집중돼 있는 소싱기지를 남미 아이티나 아프리카 지역 구석구석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최근 성기학 섬산련 회장 주도로 진출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여진 에티오피아도 유망 진출지역으로 급부상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6.25 참전국이란 끈끈한 인연과 함께 인구 1억에 월 평균 임금 40달러 내외, 세계에서 가장 싼 전력 요금이 손짓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더 좋고 더 싼 제품을 공급해야 하는 당면 문제에서 우리 섬유산업이 설 땅은 갈수록 급속히 좁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산현장에 돈보다 더 급한 것이 사람인 처지에서 매년 오른 최저임금으로 치솟는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중언부언 하지만 내국인이 오지 않아 외국인 근로자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연장근무, 휴일 특근 2교대에 월 300만원의 임금을 부담하는 기업 처지에서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나가야 산다”는 유행어가 섬유업계에 확산되지만 국내 남아있는 기업이 살길이 가물가물 해지고 있다. 틈새시장을 노린 차별화 전략을 위해서는 첨단 자동화 설비가 이뤄져야 하지만 갈수록 팍팍해진 환경으로 신규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 최근 업계 증진이 자체 염색공장에 대한 자동화 투자를 위해 해외공장을 조사해 본 결과 “한숨이 나오드라”고 실토했다.
해외에 진출한 공장의 자동화율이 오히려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기 때문이다. 인력 많고 한국보다 5분의 1, 10분의 1 임금구조에서 자동화율까지 앞서있다면 우리의 경쟁력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섬유대국으로 부상한 베트남도 정부에서 섬유산업 투자에 파격적인 금융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설픈 서비스· 금융업 우선 정책으로 제조업에 대한 지원을 싹둑 잘라버린 오류를 범했다. 섬유 설비투자를 위해 금융권에 손을 내밀면 4순위 이하로 밀려 하늘의 별따기다.

온라인 전성시대 가격 폭락 겁난다

중국은 물론 미국도 오바마 정부 아래 제조업 육성정책으로 크게 활기를 띠고 있다. 해외로 나간 기업들의 미국 회귀가 급증하고 심지어 중국 기업이 미국에 방직공장을 투자해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오프라인· 온라인 불문하고 유통업체들은 상상을 초월한 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 추세적인 동향이다. 바이어들의 집요한 가격후려치기 ‘갑’질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진행형이며 미래에도 거듭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런 추세에 한국의 섬유산업, 즉 소재이건 제품이건 부자재이건 맞춰나갈 수 있겠는가? 수출경쟁력이 붕괴된 섬유산업 절반이 좁은 내수시장으로 버틸 재간이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온라인 전성시대에 가격경쟁이 더욱 떨어진 국산 섬유류의 생존전략이 걱정이다. 결국 틈새시장을 겨냥한 특화전략밖에 없다.
그러나 특화전략은 말로 되는 요술이 아니다.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 투자를 지원하는 정부정책이 선행돼야 하고 업계 스스로 자구노력을 강구해야 한다. 다시 한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저작권자 © 국제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