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가 좋다. 올림픽이 있어 더욱 좋다. 살인적인 폭염에 일상이 파김치가 되지만 올림픽 덕에 더위를 잊는다. 우리 선수의 선전에 환호하고 고전하면 위로의 응원을 아낌없이 보낸다. 잠 못 이룬 올림픽 열기로 눈꺼풀이 무겁지만 기분은 엔돌핀이 넘친다.
역시 통합의 절정은 스포츠다. 이 순간 갈등도 미움도 사라지고 오직 대한민국으로 통한다. 각혈하며 삿대질 하던 ‘사드’ 논쟁도 많이 잠잠해졌다. 이 여세를 몰아 찬성· 반대론자 모두 역지사지로 이해하고 양보했으면 싶다. 통합은 부분의 합계보다 큰 것이다.
때마침 거듭되는 폭염 속에 가정용 전기료 누진제를 놓고 한국전력이 복날 개처럼 얻어맞고 있다. 누진제 조정을 야당이 제기한데 이어 스스로를 “근본 없는 놈”으로 자처하던 신임 여당 대표가 대통령에게 개선을 요청했다. 대통령이 득달같이 화답해 7~9월 요금에서 19%를 내린다니 서민들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물론 병아리 눈물 수준이다.

한전 작년 영업이익 11조 3467억원

문제는 가정용 전기료의 누진제 개선 문제가 제기되자마자 생뚱맞게 산업용 전기요금제 개선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당연히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의 개선이 필요하지만 그 방향이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는 개악으로 거론되고 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산업용 전기요금은 제조원가의 핵심요소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글로벌 경제 불황 속에 환율이 주저앉고 있는 상황에서 높은 산업용 요금은 제조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겨주고 있다.
5-6년 전까지는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이 비교적 싼 편이었다. 고임금과 인력난 속에 그나마 전력료가 싸 경쟁력에 큰 부조가 됐었다.
그러나 지난 3-4년 사이 산업용 전기요금이 연이어 인상돼 이제는 후발국보다 비싸졌다. 우리보다 훨씬 싸던 베트남보다도 비싸졌다. 중국도 제조업 경쟁력을 위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내리는 판에 우리는 거꾸로 올리는데 혈안이 돼 있다. 제조업 현장에서 산업용 전기료가 비싸다고 아우성을 쳐도 한전을 비롯한 정부는 들은 체도 안한다.
사실 이 같은 산업용 전기료의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건의는 지난 4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총대를 메고 근거자료를 들이대며 전력당국을 압박했다. 하필 그 시기에 전경련이 어버이 연합을 지원한 사건이 터지면서 산업용 전기료 인하 투쟁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구체적으로 산업용 전기료를 내려야 할 명분과 당위성은 명징하게 드러나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는 2005년 이후 10년간 산업용 전기요금을 무려 76% 이상 인상했다. 전기료 인상은 뿌리산업인 제조업 경쟁력에 치명타를 안겨주고 있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전기요금의 원가 비중은 열처리업이 35.6%, 주조 16%, 소성가공 14.5%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섬유업종에서도 면방 화섬뿐 아니라 사가공, 연사 업종은 전기료가 제조원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소 제조업 현장이 고사 위기에 몰리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가 비싼 전기요금으로 대두되고 있다. 최저 임금은 연중행사로 인상되고 고임금 인력난에 전기요금까지 경쟁국보다 비싸니 해볼 재간이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인건비가 5분의 1, 심할 경우 10분의 1 수준인 중국은 올 1월 1일부터 기업 원가절감을 지원하기 위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kw당 0.3위안 인하했다. 이로 인해 중국 기업들의 연간 원가부담 절감액이 680억 위안(한화 약 12조원)에 달한 것으로 분석됐다. 경쟁국들은 기업 원가절감을 위해 이 같이 일반 산업용 전기료를 파격적으로 내리고 있다. 우리나라 한전은 천문학적인 이익을 내면서 경제계의 요구에 귀 막고 있는 것이다.
공기업의 공공요금 부과원칙은 원가주의를 준수해야 한다. 한전은 발생 원가를 기준으로 요금을 산정해야함에도 원유· 석탄 등 원자재 가격 하락 분을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
작년 한해에도 원유· 석탄 등 연료비는 26.4%가 내렸다. 당연히 매출원가 및 판관비가 7.9% 감소했다는 것은 한전 스스로 인정하는 사실이다. 한전은 유가와 석탄 등 원자재 가격 하락 분으로 전기 생산비용인 이른바 계통한계가격(SMP : System Marginal Price)이 2014년보다 29%나 하락했고 과거 최고점 대비 최저점은 50%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한전은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 요구에 귀를 막고 이익 극대화를 위해 공기업의 공정보수 원칙마저 저버리고 있다. 지난해 한전의 매출액은 58조 9577억원으로 전년대비 2.6% 증가했다. 반면 영업이익은 11조 3467억원으로 전년보다 무려 96.1%나 급증했다. 공기업은 배당, 이자 지급과 최소한 사업 확장 등은 감안한 요금을 산정으로 전기료를 인하하는 등 소비자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와는 달리 높은 현금 배당을 통해 최대주주인 정부 이익 극대화에 우선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실제 작년 영업이익 11조 3467억원으로 산업은행에 6548억원, 정부에 4622억원의 현금 배당을 실시해 정부가 최대 수혜를 누린 것이다. 한전이라고 해서 적자 보라는 것은 아니지만 공기업이 지나치게 많은 이익을 누리는 것은 소비자인 기업의 등골을 빼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불합리한 전기요금 부과 체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투명성을 제고해야 할 것으로 촉구되고 있다. 변화된 전력수요와 예비율 등을 감안한 부과체계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산업용 전기의 경우 전력 예비율이나 판매량에 따라 전기요금 부과체계가 다르게 적용돼야 한다는 점이다. 전력 수요가 낮은 토요일의 평일 요금 적용도 잘못된 것이고, 봄· 가을과 유사한 6월과 11월의 피크요금 적용 등의 부과체계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무엇보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원가 회수율이 100%를 상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2012년 이후 용도별 원가 비공개로 산업용 전기요금이 가정용보다 낮고 이로 인한 특혜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확실히 짚고 넘어갈 것을 경제계는 요구하고 있다.

비싼 전기료 뿌리 산업 고사 위기

중언부언하지만 한전은 그동안 국제유가가 오르면 득달같이 전기료를 인상해왔다. 반면 국제 유가가 급락했는데도 요금 인하가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한전의 원가 회수율은 2011년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해왔고 2016년에는 100%를 상회할 것으로 한국 조세재정 연구원 등이 분석하고 있다. 산업용과 일반용의 원가 회수율은 더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책적으로 낮은 요금을 부과하고 있는 농사용과 교육용, 가로등용을 포함하고도 원가 회수율이 100%를 육박했다는 것은 산업용과 일반용의 원가 회수율이 100%를 초과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공기업의 공공요금 부과원칙에 따라 도시가스는 작년 말에 비해 올 들어 34.6%가 인하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한마디로 한전은 2013년 11월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이후 국제유가 하락 분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그대로 고수해 천문학적인 영업이익을 만끽하고 있다. 한전이 배터지게 이익을 많이 낸다는 것은 제조업 특히 어려운 중소제조업을 피골이 상접하게 만드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차제에 가정용 전기 뿐 아니라 어려운 중소제조업의 산업용 전기요금도 함께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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