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亂世)다. 온 나라가 바람 잘 날 없이 시끄럽고 지랄 맞게 난리법석이다. 세월호, 메르스, 개성공단 폐쇄, 신공항 파동에 이어 사드문제까지 불거졌다. 국가 안위가 걸려 있는 중대 시설도 내 고장엔 안 된다는 님비현상이 기승을 부려 또 다시 각혈하며 편을 가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신앙으로 믿고 따르던 친박· 진박 진실한 사람들의 이중적 행태는 더욱 조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벌써 권력의 엄혹한 시절이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국익을 위하고 더구나 국가 안위와 관련된 중대사에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군민을 설득하러 간 총리에게 물병과 계란세례를 하는 것은 아주 잘못한 처사다. 비타협과 배척의 투쟁이 아니라 통찰과 절제의 미학을 새겨야 한다.
그러나 절차적 과정이 무시되고 소홀한 것 역시 지탄 받아 마땅하다. 지난 2월 10일 군사작전 하던 전격 단행된 개성공단 폐쇄조치도 하루 이틀 먼저 했거나 나중에 했더라면 후유증이 훨씬 작았을 것이다. 설 연휴를 앞두고 2-3일 전에 귀띔만 해줬어도 개성공단 기업들이 수천억에 달하는 원부자재나 완제품의 유동자산 손실을 줄일 수 있었다. 불과 일주일 전 주무장관이 “폐쇄는 없다”고 장담해 이를 믿던 입주기업들이 뒤통수를 맞고 망연자실 한 것이다.

니트자카드업계 대표 큰일했다

이번 사드문제도 위중한 국가적 중대사이자 국가 안위와 직결돼있어 사전에 국민 설득과정이 있었다면 민심이 이처럼 부글부글 끓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당당하게 사드배치를 공론에 부쳐 불가피성을 설득하고 오해를 불식했다면 후폭풍을 방지할 수 있었다. 외교· 안보· 경제· 정치 전 분야에 중차대한 현안을 “먼저 지르고 보자”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제발 파리채로 파리 잡듯, 아니면 솥뚜껑으로 자라 잡는 식의 내지르기식 행태는 바뀌어야 한다.
본질 문제로 돌아가 글로벌 경기침체와 경쟁력 상실로 갈수록 시난고난한 국내 섬유산업에 아주 특별한 쾌거가 등장했다. 경기북부 니트업계에 미국 바이어로부터 무려 17만 톤이라는 대량 오더가 터져 해당 생산 공장들이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말이 쉬워 17만 톤이지 8톤 트럭으로 21000대 물량은 근래에 볼 수 없는 상상을 초월한 규모다. 이 같은 대량 오더는 좀처럼 뜨지 않지만 설사 뜬다 해도 그것은 중국 몫이지 한국에는 해당되지 않은 오더이었다.
이 같은 대량오더를 수주한 선구자는 포천에서 니트자카드 편직을 아주 알차게 경영하고 있는 S사의 김 모 회장이다. 그의 해외 마케팅 능력이 뛰어난 것은 물론 그동안 국내에서 좀처럼 시도되지 않던 동업계의 컨소시엄을 통한 협업체제로 성공적으로 오더를 수행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 소재 통신판매회사로서 오프라인을 겸하고 있는 미국 유통 바이어로부터 대량 오더를 수주한 김 회장은 여름 비수기를 대비해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춰 오퍼했다는 전언이다. 도저히 채산이 어려운 낮은 가격을 제시해 중국과 가격 경쟁으로 맞짱을 떠 수주에 성공했다.
사실 오래전부터 미국이나 유럽 바이어들은 한국산 원단은 비싸다는 것이 정설로 돼있어 가격 경쟁력에 관한한 한국산은 뒷전이었다. 이 같은 실상을 꿰뚫고 있는 김 회장의 기지가 발휘돼 중국산과 야드 당 10센트 이내의 간극을 좁혔다.
바이어들은 싼 맛에 중국산을 선호하지만 품질과 딜리버리에서 항상 불만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는 중국산과 가격차이가 적고 품질· 사후관리 좋은 한국에 오더를 몰아준 것이다. 해당 아이템은 중국이 꼼꼼하게 만들기에는 버겁기도 하고 실제 경기북부 전체에도 설비가 150대 남짓에 불가한 품목이다.
김 회장은 오더를 수주한 후 경기북부 니트자카드 편직업체 중 규모와 신뢰가 있는 회사 대표를 긴급 소집했다. 자카드 니트직물의 규격과 중량을 통일하기 위한 회의를 통해 게이지를 맞추고 바늘길이까지 통일하는 10개사 130대 규모의 컨소시엄을 구축했다고 한다.
경기북부와 반월염색공단의 이름 있는 염색 및 프린트 공장 대표들도 컨소시엄에 합류시켰다. 원가를 낮추고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김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한 치의 오차 없이 생산 선적에 매진하고 있다.
여기서 오더를 수주한 김 회장은 물론 협업에 참여한 생산업체 모두가 의외의 소득에 환호했다. 처음 오더 수주 때는 원가 산출시 채산 맞추기가 빠듯해 비수기용으로 시작했지만 날이 갈수록 채산이 좋아져 돈이 벌린다는 것이다.
처음 생산할 때보다 똑같은 규격의 똑같은 중량 제품을 양산하다 보니 생산성이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 원가가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하루에 1천 야드 생산할 때와 2000야드, 3000야드 생산 시 나오는 원가는 천양지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체험은 기라성 같은 대형 의류수출벤더들이 피스 당 3불 내외의 저가 제품인데도 단일 오더 당 100만장, 1000만장 생산에 따른 생산성을 앞세워 연간 10수억 달러 이상을 수출하고 박리다매로 1000억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것과 같은 양상이다. 다품종 소롯트가 단가는 높지만 실속이 적고 소품종 대량생산에 돈이 보인다는 섬유산업의 특성을 터득한 것이다.
규모경쟁의 이점은 해당 업체뿐 아니다. 화섬사 메이커들도 비수기와 성수기 가릴 것 없이 천문학적 원사 수요처에 연쇄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원사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춰 이들 니트자카드 업계의 협업체제에 동참했다는 전언이다.
아무튼 현명한 특정 기업인의 순발력과 탁월한 마케팅력으로 근래에 보기 드문 대량오더 폭탄이 터진 것은 오더 가뭄에 지친 국내 섬유업계에 한줄기 소나기임을 부인할 수 없다. 연말까지 해당 생산업체들은 오더 걱정 없이 보유 설비를 풀가동하며 짭짤하게 돈을 버는 행운을 맞고 있다.
더욱이 이번 경기북부의 니트자카드 직물의 성공적인 오더 수주 전략과 수행은 일과성 호재로 끝날 일이 아니다. 국내 섬유수출업계가 모두 벤치마킹하며 확대 전개해야 할 중대한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표류하는 섬유수출 길을 밝혔다

중언부언하지만 70억 이상의 방대한 세계 인구를 겨냥해 섬유 오더는 넘친다. 문제는 우리가 가격경쟁력을 맞출 수 없어 오더 기근이 생기고 산업이 축소지향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바이어들 역시 한국산은 비싸다는 인식이 짙게 깔려있다. 경영 일선에서 느끼는 예로는 “중국산과 같은 값에 해줄게” 해도 바이어들이 믿지 않고 대량 오더는 중국으로 돌리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고정관념과 한계를 이번 경기북부 니트업계가 과감하게 타파하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대량 오더를 수행하기 위해 동업계가 협업체계를 보다 깊이 연구하고 수행하면 원가절감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들쥐 떼 근성으로 집단으로 경쟁하는 폐해를 막으면서 창구 기능을 할 수 있는 S섬유 같은 기업이 이 같은 업계의 컨소시엄 전략을 바탕으로 대량오더를 지속 수행하길 기대한다. 지도에 없던 이번 쾌거가 한국 섬유수출 산업에 새로운 모멘텀을 제시한데 대해 다시 한번 찬사와 갈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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