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박근혜 대통령의 ‘쥐덫’ 논리를 놓고 말꼬리가 무성하다. 미국의 울워스라는 쥐덫 회사가 “한번 걸린 쥐는 절대 놓치지 않으면서 예쁜 모양의 플라스틱 쥐덫으로 만들어 발전시켰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디자인이나 위생측면에서 뛰어난 제품의 이 쥐덫은 한번 쓰고 버리기는 아깝고 다시 쓰기엔 징그럽다 하여 결국 실패한 제품이다. ‘ 더 나은 쥐덫은 더 좋은 제품’을 의미하는 관용어로 쓰이지만 소비자가 외면한 울워스의 실패 때문에 본질을 왜곡했다는 비판이 나돈 것이다.
말에 꼬투리를 잡으려면 한이 없다. 박 대통령의 ‘쥐덫’ 논리는 치열한 세계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무겁고 흉한 기존 쥐덫보다 차별화된 신제품의 창의적인 발상을 강조한 당연한 논리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한해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척박한 땅을 비옥한 땅으로 바꾸기 위해 객토(客土)를 했다. 농작물에 영양을 뺏겨 박토가 된 땅에 풍부한 영양을 함유한 황토나 하천 충적토(沖積土)를 논에 뿌려 소출증대를 도모한 것이다.

척박한 섬유산업 토양 客土 해야

객토는 농사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모든 산업에 새로운 설비와 창의적인 기술도 객토해 차별화된 신제품을 개발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2분기 영업이익 8조 1000억 원을 넘긴 홈런도 신기술 객토를 통해 신기술 차별화를 접목한 신제품이 적중했기 때문이다.
지구촌에 울타리가 사라진 글로벌 경쟁시대에 창의적인 발상을 토대로 한 싸고 좋은 쥐덫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기존 제품으로 적당히 안주하려는 천수답경영으로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필자는 지난해 1월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영 컨설턴트 오마에 겐이치 일본 비즈니스 브레이크스루대 학장의 충고를 인용한 바 있다. “한국은 앞으로 중국과 동남아에서 만드는 제품의 5배· 10배 이상 가격에 팔릴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살아남을 곳이 없다”는 돌직구였다.
백번 천 번 옳은 지적이다. 청년 실업자가 100만 명에 달해도 제조업 현장에 사람이 오지 않는 절망 상태에서 인건비는 중국 내륙보다 아직도 10배나 비싸다. 독일 같은 선진국도 최저임금 조정을 2년에 한번 하는데 우리는 매년 최저임금을 올린다. 시급 6030원인 현재 상황에서도 전과자 오명을 뒤집어쓰며 채용한 외국인 근로자에게 240만원을 지급하는 상황이다. 휴일 연장근무, 토요일 휴일근무에 4대 보험, 기숙사, 식대 포함하면 24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만약 노조 주장처럼 시급 1만원으로 올라가면 중소· 영세 제조업 현장은 300만원이 넘는 인건비에 간판 내리고 문 닫을 수밖에 없다.
중언부언하지만 제조업 현장에서 월 200만 원 이상 받는 근로 조건에는 사람이 안가지만 월 70-80만원 하는 아파트 경비원은 박이 터질 정도다. 그것도 모자라 곳곳에 CCTV 설치하면서 일자리가 크게 줄었다 하여 노년층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최저임금제 적용 대상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아닌 영세 중소기업에만 해당된다. 그나마 중소기업에 남아 있던 일자리마저 앗아가는 정부나 정치권의 현장감 없는 사고가 이 땅의 중소기업 무덤을 자초한 것이다.
수렁에 빠져들어 삶은 개구리 신세가 된 우리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조업부터 살리고 봐야 한다. 독일과 일본 경제가 소가 밟아도 끄떡없는 배경은 탄탄한 제조업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나 금융업으로만 성장하기에는 우리의 여건이 너무나 열악하다. 미국도 제조업을 육성하고 다시 살아나는데 우리가 제조업을 외면하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는 위험한 처사다.
오마에 겐이치 학장의 돌직구성 충고는 섬유패션산업의 갈 길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고임금, 인력난과 각종 고비용 저효율 체제의 우리산업이 살길은 경쟁국과의 차별화 전략이다. 중국이나 대만· 동남아 국가가 못 만드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대안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중국과 똑같은 제품으로 가격경쟁을 벌이는 한심한 상황이다.
화섬산업부터 획기적인 혁신은 간데없고 현상유지에 급급하고 있다. POY와 DTY 품질과 가격 경쟁력이 중국에 비해 밀려도 돌파할 기술도, 투자도 없다. 특화 전략을 앞세우기보다 중국 가격에 맞춰 팔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산업의 고도화에서 중국에 떨어지고 인건비는 10배 가까이 비싼 우리 체질을 감안한 전략이 없다. 갈수록 품질에서 뒤처지고 가격에서 채이는 것이 우리 화섬산업의 현주소다.
동네 북 신세가 된 면방산업도 마찬가지다. 사람 귀하고 임금 높은 우리 구조에서 어떻게 하든 중국이나 인도보다 비싼 제품을 만드는 것이 지상목표다. 그럼에도 우리 면방산업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인건비가 중국과 인도보다 5-10배 비싸다면 특화 제품으로 인건비를 커버해야 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이다. 현실은 중국과 인도, 베트남에서 양산되는 코마사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이 우리 면방업계 실상이다. 코마사 가격을 품질 떨어진 인도산보다 낮게 파는 어리석은 장사의 종착역은 불을 보듯 뻔하다.
소재에서의 차별화가 안 되니 제직과 편직원단의 차별화는 한계가 있다. 대구 산지가 우수수 무너진 것 역시 스스로의 변신과 자구력 못지  않게 소재 개발이 뒷받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제는 이미 오래전에 설정돼 있다. 오마에 겐이치 학장의 충고 이전에 중국과 동남아산보다 5-10배 비싼 제품을 만드는 전략이 발등의 불이었다. 그럼에도 90년대 말부터 급격히 쇠락의 징검다리를 건너기 시작한 우리 섬유산업 정책은 무엇 하나 신통한 것이 없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안에서 움켜쥐고 있을 수 없어 너도 나도 해외로 탈출해 6000개 가까운 회사가 해외로 떠났다. 고임금, 인력난에 못 견뎌 갈 수 밖에 없었고 해외에 크고 작은 소싱기지를 확보한 기업은 성공률이 높았다.
그러나 산토끼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남아있는 집토끼도 살려야 한다. 국내 산업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목표· 방향 없는 육성정책 다시 짜야

그러나 지난 십수년간 과연 우리 섬유패션산업을 살리고 지속 발전시키기 위한 정부 정책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었는가 반문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방향도 목표도 애매한 채 육성정책은 보여주기 식 겉도는 정책이었다. 전략 빈곤과 기량 부족으로 실효성이 없었다. 수많은 단체가 있지만 정착 해당 업종의 미래를 예측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곳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업계 스스로 각자도생하는데 사즉생(死則生) 노력을 경주하지 못한 자업자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보다 5배는 못 받아도 2배는 받아야 생존할 수 있는 전략은 과감한 투자와 기술개발· 시장개척 인재양성밖에 없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마부위침(磨斧爲針)의 각오와 전략이 급선무다. 실패는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는 것임을 명심해야한다. 정부, 업계, 단체, 연구소가 모든 지혜를 모아 판을 다시 짜야한다. 더 이상 미적거릴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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