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패션협회 원대연 회장

회비수급률 최고, 회원사와 상생
현장 제일주의 알짜협회 이끌어
K패션 글로벌 진출 지원 꾸준히
CEO 의지·철학있어야 中서 성공
책임감있는 후임 마땅찮아 고민

“인간의 생각이 창발하는 순간은 낯선 상황과 조우하게 될 때다.”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처럼 친숙하고 일상화된 환경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지만, 동시에 변화의 의지와 창발하는 아이디어를 무디게 만들기도 한다.
이 잠언을 개인에서 사회로 확대한다면, 협회는 ‘낯선 상황’과는 거리가 먼 조직 중 하나다. ‘도전’과 ‘혁신’보다는 ‘안정’과 ‘유지’를 오히려 미덕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한국패션협회는 이 같은 협회의 고정된 쳇바퀴를 단호히 거부해 왔다. 회원사의 참여를 앞서 독려하는가 하면, 업계의 숙원사업을 진행해 적극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등 끊임없이 스스로를 경쟁의 광장에 세우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변화의 바람은 원대연 회장으로부터 시작됐다. 그가 재임한 12년 새 한국패션협회는 7명 식구가 23명으로 늘었고, 어엿한 자가 사무실까지 마련했다. 이천패션물류단지 초대형 프로젝트 성공으로 협회역량도 대내외적으로 인정받았다.
패션산업을 앞서 이끄는 리더인 동시에 제일모직(현 삼성물산)을 일류기업으로 이끌었던 빼어난 기업인인 그에게 최근 불황의 암운이 짖게 드리운 패션업계에 대한 조언을 듣고 돌파구를 모색하고자 역삼동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원유진 기자


최근 패션산업의 업황이 좋지 않습니다. 패션기업들을 회원사로 둔 협회도 예외는 아닐 듯 싶은데요.
“업계가 기침을 하면, 협회는 감기가 걸리죠.(웃음) 당연히 협회도 경기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도 우리 협회만큼 회비 수급률이 높은 곳도 없습니다. 2007년에는 회비 수급률이 90%를 넘었으니까요. 섬유·패션 관련 단체 중 우리 협회의 회원사가 가장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회비를 이 정도로 걷는다는 건 전 산업계로 확대해도 아주 예외적인 경우죠. 최근 내수패션 경기가 경직되면서 67~8% 수준까지 내려갔지만, 협회 임직원 모두 기존 회원사를 직접 방문하며 참여를 독려하는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회장님의 ‘현장 제일주의’ 철칙이 협회의 변화를 이끈 것 아니겠습니까.
“기업식 손익 마인드를 갖고 있는 협회는 거의 없습니다. 피동적이고 방어적인 태도가 대부분이죠. 그래서 부임하자마자 협회 조직을 개인 사업부제로 전환하고, 직원들에게 ‘단 1원이라도 이익을 창출하라! 우리의 고객은 회원사다. 패러다임을 바꾸라’는 주문을 했습니다. 현장을 발로 뛰면서 회원사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이 원하는 숙원사업을 협회에서 앞장서 해결해야 합니다. 이천물류단지 사업이 그 대표적인 예죠. 협회에서 찾아가 부탁만 하고 회비 독촉만 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이익이 되면 자연스럽게 회원사들도 협회를 신뢰하고 협회를 중심으로 결집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 협회에 힘이 생기는 겁니다. 그렇게 직원도 늘리고, 복지도 확대하고, 사무실도 꾸린 겁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협회와 회원사간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 가야죠.”

 

협회는 패션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사업도 꾸준히 펼치고 있습니다. 성과가 궁금합니다.
“그 동안 미국과 중국, 두 나라를 대상으로 글로벌 사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중국에 더 집중을 하고 있죠. 상하이·북경 등 1선 도시는 물론이고, 지난해에는 항저우·심양 등 2선 도시에서도 교류회를 가졌습니다. 특히 항저우는 중국 IT산업의 메카로 넷이즈그룹과 MOU를 통해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 비즈니스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고, 이후 온라인쇼핑 대기업 징동닷컴과도 MOU를 체결해 한국관을 운영 중입니다. 올해도 중국 기업과 우리 기업을 매치시키는 교류의 장을 꾸준히 제공할 겁니다. 대기업은 독자적으로 가능하지만, 독자적인 접근이 어려운 중견·중소기업들엔 소중한 기회입니다.”

 

원 회장님께선 한국패션의 중국진출 1세대십니다.
“중국은 시장 규모가 우리 내수보다 몇 백배 크잖습니까. 인구도 13억명이 넘죠. 그래서 1994년에 중국을 ‘제 2의 내수시장’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제일모직의 브랜드 세 개 정도는 모든 중국인들이 인정하는 최고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10년 계획을 갖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갤럭시’ ‘라피도’ ‘엠비오’ 등 국내에서 탄탄히 자리잡은 브랜드를 현지에 진출시켜 전개해 가능성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2003년 사장직에서 물러난 후 하나 둘씩 철수하면서 흐지부지 되고 말았습니다. CEO의 강력한 의지와 철학이 없이는 힘이 듭니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이랜드, MCM 정도를 제외하곤 중국에서 확실하게 자리잡은 기업이 없다는 건 패션업계가 고민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중국 시장에서 부진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결국 중국 최고의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CEO(오너)의 강력한 의지와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장기적인 비전과 계획을 갖고 발로 현장을 누비며 중국 사람도 알고, 중국 문화도 알고, 중국 산업도 알아 가면서 뿌리를 내려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부족합니다. 우리 글로벌 사업만 봐도 뉴욕, 상해, 북경에서 행사를 하면 브랜드 6~7개 정도를 선정해서 가는데 CEO들이 참석을 거의 안 합니다. 준비한 콘텐츠도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앉아서 되기를 바라서는 절대 세계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하시는 브랜드가 있을 텐데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한섬과 우영미입니다. 한섬은 브랜드 가치 위주의 전략에 충실합니다. 세일하지 않죠. 상황과 타협하지 않는 고집이 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파리에 매장을 꾸준히 운영합니다. 당장은 적자를 봐도 장기적인 스탠스에서 보면 굉장히 큰 효과가 있을 겁니다. 우영미 디자이너도 마찬가지죠. 어렵지만 경영의 철학을 고집하면서 파리 마레지구에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힘들어도 지탱할 수 있는 여력이 있으면 멀리 내다보고 인내하면서 사업을 키워야 합니다. 비록 초기 성과가 보잘 것 없더라도 말이죠.”

 

내수 불황도 심각합니다. 회장님께서 생각하시는 돌파구가 궁금합니다.
“어려울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합니다. 소비자들은 점점 똑똑해지고 있습니다. 똑같이 만들어서 꺾어 파는 예전의 방식으로는 국내에 들어와 있는 해외 브랜드와 경쟁할 수가 없습니다. 브랜드 가치 최우선 경영을 해야 합니다. 글로벌화와 프로세스 혁신도 브랜딩이 없으면 공허한 메아리입니다. 제가 제일모직 사장으로 취임할 때 매출 250억원이던 ‘빈폴’을 10년 만에 3500억원까지 키웠습니다. 정상 판매율이 85%였어요. 재고가 아예 없었죠. 취임과 동시에 철저한 노세일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였습니다.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니 레이디스, 진, 골프, 키즈, 액세서리까지… 성공적인 라인확장이 가능해 진겁니다.”

 

내년이면 임기가 사실상 완료되십니다. 아직 여러 가지 난제가 남아 있지만, 마땅한 후임자가 없어 업계 일각에선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데요.
“애정과 책임감을 갖고 협회를 이끌어줄 적임자를 찾고 있는데 만만치가 않습니다. 중견·대기업에서 협회 행사나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면 그중에서 후임자를 물색해 볼 텐데 참여율이 저조합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맞길 수 있는 자리는 아니고요. 남은 시간동안 패션산업에 전문성을 갖고 있으면서 열정을 갖고 협회 일을 할 수 있는 인물을 계속 찾아 봐야죠. 고민이 많습니다.(웃음)”

 

마지막으로 업계 선배로서 패션업계 대표와 관리자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인본위 경영을 해달라는 주문을 하고 싶습니다. 창조도 좋고 벤처도 좋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람입니다.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가지 가치와 생각이 있습니다. 거기서 아이디어가 솟아나고 회사가 발전하는 겁니다. 리더는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귀를 열고 방향을 잡는 사람이죠. 사람을 쉽게 버리고 들이는 문화는 고쳐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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