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2백만명 민족의대이동이 언제 있었느냐는듯 다시 숨가쁜 일상의 업무가 시작됐다. 경제가 어려워 살기가 팍팍하다보니 덕담보다 실망과 분노가 유난히 많았던 설 민심이었다. 자고새면 진흙탕 싸움인 정치권에 환멸을 느껴 고향길 사랑방마다 여·야 싸잡아 돌팔매를 던졌다. 날치기 파동, 의원 꿔주기에 할말을 잃었고, 방탄국회, 장외 집회에 넌덜머리 쳤다.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날 안기부자금 수사는 왜 시작했으며, 수십억원을 횡령한 범죄 혐의자를 끝까지 보호하겠다는 몰염치에 어안이 벙벙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正大) 스님의 회초리를 천군만마로 해석하는 여당의 속좁음도, 종로에서 빰맞고 맞대응도 못한 채 여의도에서 냉가슴 앓은 야당 총재도 술상의 안주거리는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성난 설 민심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아전 인수격으로 해석한 여·야 지도부가 한심스럽다. 제발 정초부터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추악한 모습을 벗어나 국민을 섬기는 상생(相生)의 정치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장미 빛 청사진 섬유비젼다시 우리 얘기로 돌아가 산업자원부가 최근 '2010년 섬유산업비젼'을 제시했다. 지식집약화와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향후 10년후 국내섬유생산을 지금보다 1.5배 늘린 51조원 규모로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수출은 연평균 2.9%씩 증가율을 감안해 2010년에 250억달러로 늘린다는 것이다. 중국, 이태리, 독일에 이어 세계 4위국에서 3위국으로 부상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다. 내수도 지금보다 배로 늘려 41.3 조원 규모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패션디자인산업과 낙후된 산업용섬유를 선진국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대구 밀라노프로젝트를 비롯 근본적인 인프라 구축은 물론 지역별 특성화와 집적화를 통해 항구적인 육성시책을 펴나간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고 있는 10대산업의 하나인 섬유산업을 기술과 품질, 자동화, 각 부문에서 현재의 이태리와 일본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본 반색할 낭보다. 그러나 산자부가 확정한 이같은 2010년 비젼이 현실성을 감안하지 않하고 지나친 장미빛 청사진이 아닌가하는 깊은 우려를 떨칠 수 없다. 세계가 한울타리로 경쟁하고 있는 글로벌 환경에서 하루가 다르게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 섬유산업이 지속적인 안정성장을 누릴 수 있는가 하는데는 상당한 의문부호가 뒤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패션 디자인 산업과 산업용 섬유 개발이라는 양대산맥을 구축하겠다는 것은 매우 타당성 있는 발상이라고 볼 수 있다. 섬유·패션산업과 낙후된 산업용 섬유를 일으켜 승부를 내겠다는 발상은 일단 진일보한 것으로 볼수 있다. 그러나 우선 우리 섬유산업의 기본체질이 지나치게 산성화되면서 곳곳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섬유산업기반이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취약점을 보강하고 발전시킬 경우 그 가능성이 보이지만, 지금의 상황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심각한 처지에 있는 화섬산업부터 기둥이 내려않고 있다. 구조적인 공급과잉에 대외경쟁력까지 상실해 위기국면은 이미 중증상태에 와 있다. 폴리에스테르 원사를 생산하는 화섬업체의 부채규모가 자그마치 3조 5,000억원에 달하고 있다. 부채규모가 많다해도 경기호전의 가능성만 있으면 정상화를 기대할 수 있지만, 대내외적 여건은 우리의 희망만큼 녹녹치 못하다는 것이 부인 못할 사실이다. 우선 기본적으로 경기 불황에 공급과잉이란 치유불능의 불치병을 앓고 있다. 그것도 자그마치 월 3만6,000톤이란 거대한 물량이 남아돈다. 부채비율이 많은만큼 빚없는 대만기업보다 경쟁력이 훨씬 떨어진다. 엊그제 롯데 그룹 신격호 회장이 지적한 것처럼 한국이 일본보다 인건비가 비싸다는 것도 화섬산업의 앞날이 안 보이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화섬업계의 노무비 비율은 아세아에서 가장 취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97년을 100으로 기준했을때 지난 3년간 국내 화섬업계의 임금인상률은 150으로 뛰었다. 향후 3년후면 220으로 높아지게 된다.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대만등과 경쟁해 비교해 이겨낼 재간이 없다. 그야말로 시계(視界)제로 상태다. 이대로 가면 채권회수가 불가능한 채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하게 된다. 오죽하면 정부가 나서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는가. 그러나 이것도 문제다. 산자부가 삼양사와 S·K케미칼을 합친 한국휴비스를 선례로 이곳저곳 묶어 짝짓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단순한 짝짓기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산자부가 채권은행의 협조를 받아 타율적 강제적으로 구조조정을 시도하는 것은 또다른 부작용과 파행이 우려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화섬업계의 구조조정은 시급을 요하는 발등의 불이다. 더 늦출수도 늦춰서도 안된다. 그러나 산자부가 총론적으로 방향은 잘 잡고있지만 각론에서 문제가 있는 것이다. 바로 산자부는 게임의 룰만 만들어주고 한발 비켜서 있어야 한다. 업계가 자발적으로 짝짓기 하도록 멍석만 깔아주면 되는 것이다. 구제적인 방안은 바로 이런 것이다. 구조조정 대상이 되고 있는 화섬업체의 과다한 부채를 탕감하기 위한 출자전환이 먼저 선행돼야 한다. 짝짓기 업체에 이같은 인센티브를 주면 하지말라고 말려도 구조조정은 저절로 된다. 서로 자기만 불리한채 왕따 당하기 싫어서도 참여하게 된다. 여기에 채권금융기관들의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해당 구조조정기업의 코스닥 상장을 1년내에 허용해 줘야한다. 또 짝짓기 대상을 삼양사와 SK케미칼 방식으로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 SDY는 SDY대로, 화이버는 화이버대로 묶어야 한다. 양쪽을 다 하는 것은 시너지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대전제에서 구조조정이 이루워지면 해당 화섬업체는 기력을 회생해 승승장구하게 돼 있다. 아시아 최대규모인 일산 1500톤 규모회사가 만들어질 경우 원료 시장도 지배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대만을 한순간에 이겨낼 수 있는 아시아 최대규모의 경쟁력 강한 화섬업체로 거듭날 수 있다. 이 바탕에서 흑자를 내면 자연히 주식값이 뛰게 돼 있다. 그렇게 되면 당사자도 채권은행도 손해가 없다. 이러한 보다 큰 그림이 필요하다. 화섬산업부터 살려야 화섬원사 뿐 아니라 벌써 대구 합섬직물업계도 줄초상이 예고되고 있다. 중국이란 거대한 경쟁국이 생기면서 속수무책이다. 이웃 일본 후꾸리꾸지역 합섬직물업체 2,100개사중 98년부터 지난 3년간 500여개사가 쓰러진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일본 업계가 한국보다 능력이 부족해서 줄초상이 난 것이 아니다. 한국에 이어 중국이 등장하는 시대적 조류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우리 섬유산업의 주축인 화섬산업이 무너지고 나면 게도 구덕도 다 놓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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