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이 옹기 짐 지고 가다 자갈밭에 넘어졌다. 물통에 남은 마지막 한모금의 물을 모래밭에 쏟은 모양새다. 개성공단 기업의 80%가 시리고 먹먹한 가슴을 안고 재가동 가능성에 실오라기 희망을 걸지만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엎질러진 물을 되 담을 수 없듯 죽은 자식 뭐 만지기다.
우리 내부에 찬반양론이 팽팽하지만 국가 안보 이슈에 양비론은 꼬리를 내려야한다. 졸지에 수조원의 피해를 당한 입주기업과 원청업체, 원부자재 협력 업체는 물론 국가 경제적으로도 피해규모가 예상을 초월한다. 물론 전기가 끊겨 수돗물을 못 먹는 20만 개성시민의 생계를 책임지던 5만 4000명의 북측 실업자의 고통도 클 것이다.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고 북측 피해와 타격이 크건 말건 알바 아니고 우선 우리측 피해가 만만찮아 걱정이다.

지원보상 걱정만 하고 성과가 없다

근본 원인은 설마 했던 괴물스런 북한 지도부가 예상보다 고약하게 악성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개성공단을 조성한 김정일은 노련하고 경험이 있었지만 아들 김정은은 훨씬 과격하고 충동적이기 때문이다. 핵을 보유하면 주변 국가가 슬슬 길 걸로 착각하겠지만 철없는 망상이다. 미국과 쌍벽을 겨루던 구소련이 무너진 것은 핵이 없어서가 아니라 피폐해진 경제에 자유를 갈망한 국민이 봉기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더 춥고 배고파야 정신을 차릴지 지켜볼 일이다. 물이 비등점에 도달하면 끓게 되고 댐이 한계수위를 지나면 붕괴된다. 이 같은 물리적 현상은 북한 사회라고 언제까지 예외일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김정은이 배워야 한다.
이 시점에서 시급한 것은 정부가 파산위기에 몰린 개성공단 기업에 대한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피해 보상책이다. 정부가 국무조정실장을 반장으로 각 부처가 긴밀히 움직이는 정부합동대책반을 가동하고 있는 것은 시의적절한 조치다. 그러나 돌아가는 통박은 소리만 요란할 뿐 피해기업들이 바라는 지원과 보상책이 제대로 이루워지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다.
정부가 남북경협자금을 활용해 공장 투자금액의 90%까지 우선 지급한다고 하지만 한도는 70억 원에 불과하다. 100억, 200억 이상 투자한 기업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마저 입주기업의 70개가 안 된 기업만 보험보상이 가능하다. 섬유신발업체 가입은 45개 사다. 124개 기업이 입주한 개성공단은 정부투자 4577억원(기반, 경의선 철도, 남북경협사무소)에 민간투자 5616억이고 섬유기업투자 규모만 2800억 원에 달한다.
더욱이 원자재나 완제품에 대한 손실보전 보험 가입자는 전무한 실정이다. 수출은행이 거부했건 입주기업들이 무관심했건 가입자가 없기 때문이다. 원자재와 완제품을 놔두고 빈손으로 나온 피해는 공장투자규모 못지않게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다.
지난 2013년 4월 3일 북측이 일방적으로 개성공단 출입을 막을 당시 완제품과 원부자재를 겨우 5%밖에 못 가져 왔다. 이번에는 물량규모도 훨씬 커진데다 2월 10일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중단 발표 후 북측이 득달같이 40분 말미를 주고 우리측 근로자 퇴거를 명령했다. 갑작스럽게 빈손으로 몸만 빠져나가라는 억지 추방에 아무것도 못 가져 왔다. 그러다보니 완제품과 원부자재에 잠겨 있는 물량이 작게는 40억, 많게는 80억, 심지어 100억 이상이 달한다는 것이다.
입주기업들은 청천벽력 같은 개성공단 폐쇄로 자식 같은 원부자재와 완제품을 못가져와 2중 3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완제품을 납품해야 임가공료를 결제 받고 기업이 생존할 텐데 원청업체들이 기존 납품 물량 결제까지 중단해 버린 경우가 발생했다. 정부가 그런 원청업체를 신고하라고 채근하고 있으나 ‘甲’인 원청업체를 신고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여파로 당장 남측 협력업체뿐 아니라 본사 직원 급료 줄 돈 마저 말라버려 아비규환이다. 일부 원청업체는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암암리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날리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결국 공장도 잃고 기업유지의 생명줄인 거래선 마저 잃어 생존이 가물가물해졌다.
개성공단 폐쇄는 입주기업이 옴싹달싹 할 수 없는 천재지변과 같은 논리다. 불가항력적인 이 사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정부가 나서서 구제하고 지원책을 하루속히 마련할 수밖에 없다.
우선 파산직전에서 자금이 고갈된 이들에게 긴급자금을 지원해줘야 한다. 기업이 생존할 수 있도록 경영안정자금을 저리로 신용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 작년 실적과 원부자재 공급수치를 기준으로 완제품과 원부자재 피해를 산출해 보상해주길 바란다. 이미 정부가 채근한대로 원청업체들이 거래관계를 유지하도록 보다 강력한 행정지도가 절실하다. 의례적으로 권유하거나 지도하면 들은 척도 안 할 수 있다.
그 다음 원청업체와 거래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국내나 해외에 소싱처를 신속히 준비하도록 다각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당장 국내나 해외에 공장을 지을 수도, 지을 돈이 없으니 기존 공장 라인을 임대해 차질 없이 납품토록 지원해야 한다. 그 다음 국내 대체단지 제공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에 생산거점을 마련해 주고 공장 건설자금을 장기융자로 지원하는 것이 순서다.
원청업체들도 봄 신상품 진열을 눈앞에 두고 공급중단이란 날벼락의 피해가 이만 저만 아니다. 피해가 막중하지만 기존 개성공단 거래선들에게 거래관계는 유지하며 피해는 단계적으로 회수하는 아량이 요구되고 있다.
중언부언하지만 국가안보 차원에서 이의를 달 수 없으나 정부나 국민모두 역지사지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친북인사도, 악덕 기업인도 아니다. 정부정책에 따라 북한 땅 개성에 들어갔고 정부정책에 따라 폐쇄로 인한 파산위기에 직면해있다. 죄가 있다면 정부정책을 믿고 어려운 국내 여건에서 살기 위해 그곳에 갔던 것이다. 김정일, 김정은 도와주려고 간 것이 아니다.
그동안 국외자들의 수없는 퍼주기 음해를 감수하며 남북교역의 선구자로서 긴장완화의 상징으로서 개성공단에서 신산고초를 감내했다. 혹자는 정부의 혜택을 받아 많은 수익을 올렸다고 비난하지만 과장된 것이며 그 많은 위험부담을 안고 그 정도 이익이 없다면 왜 개성공단을 갖겠는가. 과거 정부이건 현 정부이건 가면 안 된다고 막았는데도 정부 방침을 어기고 간 것은 아니었다.

남북경협의 선구자 순기능 인정해야
지난 12년간 개성공단을 가동하는 동안 경제적인 수익도 있지만 동토의 나라 북한 근로자에 자본주의 의식을 접목시킨 공로 또한 무시 할 수 없다. 처음 눈을 부라리며 말도 대꾸 않던 그들이 미숫가루를 시작으로 초코파이, 라면에 이젠 커피까지 마시는 변화의 변곡점은 이들 기업인 덕이었다. 개성공단 근로자 60% 이상이 남쪽 사고에 젖어들었다는 것은 총칼보다 더 큰 위력인 것이다.
이 같은 여러 순기능을 감안해 누구도 개성공단 기업인에게 돌을 던져서는 안 된다. 지금은 정부와 업계가 다함께 이들을 보듬고 살리기 위한 방안에 최선을 다할 때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를 중심으로 섬유패션단체들도 이 같은 절박하고 안타까운 실상을 감안해 지원방안에 팔소매를 걷어 올리고 있다.
지난 12년간 동토의 나라에서 남북교류협력의 당사자로서 나름대로 긴장완화의 첨병역할을 했던 개성공단 기업인들에게 찬사는 못해도 남남갈등의 소재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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