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봄인데 봄이 아니다.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청명촵한식(淸明촵寒食)이 눈앞인데 철없는 눈보라가쳐 산천은 여전히 겨울이다. 가뜩이나 경기불황에 날씨마저 해코지를 해 초봄부터 내수옷장사가 망가졌다. 섬유수출도 녹록치가 않다. 환율이 벼락치기로 올라 오더만 넘치면 천재일우의 호기인데 오더가 줄어 그림의 떡이다. 업종별로 짚어 봐도 개인 곳 보다 먹구름이 훨씬 많다. 재벌축성의 지금길인 화섬산업 부터 수년간 누적적자에 신음하면서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면방은 쇠락의 징검다리를 가장 먼저 건너더니 외국산 면사가 물밑듯이 몰려와 집단으로 떡쌀 담그기 직전이다. 세계 최대규모라고 자랑하던 대구 폴리에스테르직물 산지도 사상 처음 성수기에 직기를 대거 세우는 기막힌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꺾일줄 모르고 수직상승하던 경편업계는 1월의 전면 조업중단에 이어 아직도 가동률이 50%를 넘지 못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시름많은 春來不似春 일찍부터 해외로 눈을 돌려 유탄을 적게 맞은 제품업계도 인터넷 입찰이 성행하면서 단가가 28%까지 떨어져 안절부절 이다. 목줄을 대고있는 미국시장이 냉각돼 지난번 라스베가스 매직쇼에서 계약한 오더 마저 소식이 없고, 지난 3년간 단 한차례도 가격이 오르기는커녕 거꾸로 추락해 채산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인도, 파키스탄, 코마사 반덤핑제소로 내부분열 까 지 일어나 면방업계와 실수요자간에 노기등등한 대치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경기불황에 우리끼리의 아귀다툼까지 벌어져 섬유산업 전체가 심한 내홍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섬유수출의 보호막인 섬유쿼터제가 곧 폐지돼 앞으로 3년 남짓이면 완전히 없어진다. 일부에서는 선진국들이 호락호락 안방을 송두리째 내주겠느냐는 가설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실상은 원칙대로 전개되고 있다. WTO(세계무역기구)규정에 따라 지난 95년부터 97년까지 3년간 적용된 1단계 쿼터조정과 98년부터 2001년말까지 적용되는 2단계 조정과정에서 추호의 차질없이 스캐줄대로 가고 있다. 따라서 내년부터 2004년까지 3년간 적용되는 3단계 쿼터조정이 끝나면 우리가 원하건, 원치 않건 세계 섬유시장은 논쿼터시대가 활짝 열리게 된다. 이같이 지난 30년간의 섬유수출의 보호막인 쿼터제도의 단단한 버팀목이 무너지면 향후 우리의 경쟁력은 '장기판의 졸(卒)'신세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어선것과 상관없이 월100만원을 주고도 사람을 못 구해 외국인 근로자로 땜질하는 고질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는 우리의 참담한 현실이 섬유산업을 벼랑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반면 월 10만원∼20만원 임금에 풍부한 노동력, 그리고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후발국들의 노하우를 감안할 때 아무리 주판을 튕겨도 그들과 경쟁해서는 계산이 안나온다. 중국과 베트남, 방글라데시에 이어 중남미 카리브국가의 기존경쟁국 뿐 아니다. 인도를 비롯한 서남아 국가와 심지어 미국이 쿼터와 관세특혜까지 주는 사하라 사막 남부국가와 요르단, 이스라엘 등 중동국가까지 우리의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섬유쿼터가 폐지되면 해외 저임금 국가에서 가장 우수한 공장을 갖춘 기업만 생존할 수 있다. '외할머니 떡도 싸고 맛있어야 사먹듯'이 값싸고 질 좋아야 바이어가 찾아올텐데 우리의 현실이 그렇지가 못한 것이다. 물론 이미 1,500개 이상의 국내 섬유업체가 해외로 진출해 군웅할거 하고 있지만 국내에 있는 수많은 생산공장 등은 치명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섬유제품 수출량의 60%가 이미 해외공장에서 생산되고 있지만, 아직도 40%는 국내에서 공급되고 있다. 해외 봉제공장이 번창하면 할수록 원촵부자재 공장도 현지에서 함께 생성되기 마련이다. 국내 편직, 우븐 업체와 염색가공업체가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게될 것은 불문가지 이다. 그만큼 섬유쿼터제 폐지는 세계섬유교역 뿐 아니라 국내 섬유수출에 천지개벽을 불러올 중대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같이 발등의 불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나약한 업계는 말할것도 없고, 국제화에 유난히 둔감한 정부나 수출단체, 심지어 섬유산업연합회 까지 여전히 태평이다. 본지가 그토록 숨넘어간 소리를 하면서 채근을 해도 들은체도 안한다. 심지어 본지의 이 같은 성화에 못이겨 전임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 재임 막바지에 이에 따른 대응방안을 마련키로 결정했었다. 세계섬유시장 변화에 따른 종합적인 대응방안으로 업계, 학계, 연구소, 단체 및 정부 관계자 등 15명내외 전문가로 '테스크 포스'를 3월중에 구성하겠다고 며칠전 신장관이 섬유산업정책간담회에서 공언했다. 그런데 이것마저 장관이 바뀌자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변했다. 아직도 감감 무소식인체 필요한 사안이 있으면 그때그때 대응하겠다는 에매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장관 인사명령이 잉크도 마르기 전에 이같이 정책방향이 오락가락하는 한심한 모습이 오늘 우리가 서있는 현주소이다. 더구나 태국 출신 수파차이 WTO 차기 사무총장이 최근 섬유쿼터제 폐지시한을 당초 2005년에서 2003년으로 2년 앞당기자는 폭탄선언을 하고 있어 그 시한 마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수파차이 총장은 쿼터가 거의 없는 태국출신 이란 점에서 조기 폐지를 주장해 실현성은 없지만 그의 입김으로 봐 2004년 이후 연장을 기대할수 없는 상황이다. 이같은 절박한 상황에서 더욱 답답하고 걱정스러운 것은 수출단체이다. 쿼터가 완전 폐지되면 수출조합의 존립자체가 위협을 받을 것은 불문가지이다. 불과 3년 남짓이면 지난 30년 우리나라 섬유수출업무를 지원하고 집행해온 화려한 역할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지리멸렬할 수밖에 없다. 쿼터폐지 이후에도 당연히 존립의 당위성은 있지만 현실적으로 운영재원을 마련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날의 궤적에서 볼 수 있듯이 몇십명의 사무국 직원을 거느리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피혁수출조합이나 생활용품수조가 쿼터추천이 없어지자 임원도 없이 2-3명의 직원으로 초라하게 연명하고 있는 것이 하나의 예증이다. 추천과정이 없으면 업계가 조합비를 내지 않는 속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회비를 강요할 수단도 애걸할 명분도 사라지게 된다. 현재 임원 2명에 직원 42명인 의류산업협회 사무국이나 임원2명에 직원 39명인 직물수출조합도 쿼터가 폐지되면 이 같은 운명을 피할 재간이 없다. 그야말로 시한부 운명이다. 수출단체 조기통합론 그래서 최근 업계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이 양 단체의 조기통합론이다. 쿼터가 없어지면서 수출단체가 한꺼번에 소멸위기를 맞을 충격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쿼터폐지 훨씬 이전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동하자는 여론이다. 재정과 여력, 권한이 있을 때 안전장치를 강화하는 새로운 위상정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쿼터폐지 이후에는 필연적으로 대두될 각 국과의 섬유교역 통상마찰을 해결할 창구는 여전히 수출단체이다. 더구나 개별기업이 수집할 수 없는 조사, 정보업무를 강화해 업계에 유익한 정보와 도움을 꾸준히 제공한다면 업계로부터 결코 외면 당하지 않을 수 있다. 바로 그 같은 길을 조기에 마련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구책이 지금부터 절실히 준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나 수출단체가 가장 민감한 콤플렉스이자 아킬레스건인 이 문제를 노출시키지 않고 무대책으로 일관하는 것은 마지막 상황에 몰릴때 호소력도 설득력도 없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本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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