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절 설이 임박했다. 이번 주부터 어김없이 1천만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부모 형제 일가친척이 모이면 으레 정치가 안주삼아 화제에 오른다. 정치의 계절이 본격 시작 된 것이다.
정치권의 돌아가는 통박은 코메디성 해프닝에 조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19대 국회는 철저하게 망가져 역대 최악이다. 비타협과 불신, 상살(相殺)의 투쟁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야 모두 편법과 위선의 자가당착이 난무했다. 그러고도 염치없이 표를 달라는 뻔뻔함에 진력이 난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지만 야권 분열로 어부지리를 만끽한 여권도 바람 잘 날이 없다. 평소에도 보이지 않게 들리지 않게 질 그릇 깨지는 소리가 요란했지만 뜬금없는 권력자 시비로 시끌벅적하다. 상향식 공천과 공천 심사위원장 자리를 둘러싸고 친박과 비박간의 샅바 싸움이다. 국회 선진화법을 만들어 식물국회로 만든 당사자들이 사과나 반성 없이 각혈하며 선진화법을 매도하는 것도 언뜻 이해할 수 없다.

차별화 기업은 불황 모른다

야당의 행태는 지리멸렬 포기 상태를 방불케 한다. 나가도록 밀어내는 사람이나 박차고 나간 사람 오십보 백보이지만 망할 짓을 자처한 행태가 한심하다 못해 처연하다.
바둑을 둘 때 돌 던질 기회를 잃으면 계속 악수가 나오고 패착이 이어진다. 바둑실력이 출중하다는 문재인 대표가 왜 돌 던질 시기를 놓치고 미적대다 게도 구럭도 다 놓치기 직전에야 돌을 던졌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치권에 도덕성의 미학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 이지만 최근에는 부모 자식 간에 이간질까지 시키는 행태는 참으로 볼썽사납다. 나이 젊은 DJ 3남을 끌어들여 부모 자식 간 불화를 조성하는 일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비대위원장의 벼락감투를 쓴 김종인 위원장이 야당 원로 정대철 전 고문 아들을 비서실장으로 기용하겠다는 발상도 정치 도의적으로 못할 짓이다. 모든 나무는 뿌리가 다칠 때 더 아프다. 아무리 정치가 야박해도 부모 자식 간의 이간질 시도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본질 문제로 돌아가 국내외 경제상황이 갈수록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리는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감소했고, 천하의 포스코가 창업 47년 만에 처음 적자를 기록할 정도다.
전반적인 조난위기 속에 섬유패션산업도 예외일 수 없어 모질게 고통을 받고 있다. 전통적인 섬유뿌리인 면방업계가 5년 장기 불황에 벼랑 끝에 몰렸고, 화섬 산업도 중국과 인도산의 가격경쟁에 밀려 골병이 들었다. 대구산지 직기 가동률이 절반수준으로 줄어들면서 지난해 직물업체 매출이 대부분 반 토막 났다. 경기북부도 불황폭탄을 맞아 심하게 휘청거리고 있다. 직
편직 경기 침체는 염색가공업계에 직격탄을 안겨 가공물량 확보에 걸신이 들었다.
그러나 섬유산업의 실상을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면 모두가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공황에 가까운 불황에서도 흑자를 많이 내 표정관리 하는 기업이 수두룩하다. 스판덱스 세계 1위이자 타이어코드 등 세계 1등 상품을 갖고 있는 효성은 섬유부문이 날개를 달아 지난해 영업이익 1조 클럽에 가입했다. 영원무역도 2000억 원 내외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세아
한세 한솔을 비롯한 빅 3 의류벤더 역시 지난해 영업이익 1000억 원 이상을 달성했다. 빅3뿐 아니라 대다수 의류벤더들은 짭짤하게 흑자를 내 소재업체들과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소재업체들은 배곯아 피골이 상접한데 반해 의류벤더들은 배 터져 감당하기 어려운 양극화의 전형이었다.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기업은 인정과 의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계산에 입각한다는 사실이다. 잘 나가는 의류벤더들과 보다 긴밀한 국내 산업의 협력을 기대하며 가급적 국산 소재 사용을 늘려줄 것을 고대했지만 허당이었다. 혼자 빨리 가지 말고 함께 멀리 가자고 애원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이었다. 해외 직수출 가격보다 더 낮게 후려치며 “하려면 하고 말라면 말아라”는 식이다.
심지어 어느 대형 벤더는 소재업체가 신제품을 개발해 거래를 의뢰했더니 그 샘플을 득달같이 중국에 넘겨 “이대로 싸게 만들어 달라”고 해 해당 소재업체가 울분을 토로하기도 했다. 수출 경기가 침체 되면서 바이어의 가격 후려치기가 이어지자 벤더들은 자기 몫 마진을 유지하기 위해 거래 협력업체에 가격을 후려치는 형식이다. 아주 야박하고 고약한 상혼이다.
그러나 아흔아홉 석 가진 벤더들이 백 석을 채우기 위해 몰인정하게 원부자재 가격을 후려치는 것을 야박하다고 할 수 없다. 기업은 이윤추구가 목적이라면 가격 조건이 불리한 국산 제품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 지구촌에 울타리가 사라진 글로벌 시대에 더 좋고 싼 곳 을 찾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가격차가 크지 않는데도 국산보다 외산을 선호한다고 원망하는 것 자체가 순진한 온정주의 발상이다. 장사에는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의 세계다. “외할머니 떡도 싸고 맛있어야 사먹는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중언부언 하지만 명제는 분명히 설정돼 있다. 싸고 좋거나 비싸도 귀한 것이어야 한다. 효성이 섬유사업을 통해 유래 없는 호황을 만끽한 것은 스판덱스 분야의 세계 최강의 경쟁력이다. 규모경쟁과 품질경쟁에서 비교우위는 확보했기 때문이다. 면방 공황 속에서도 지난해 매출 3100억 원에 영업이익 100억 원을 올린 일신방의 경영전략은 철저한 차별화 특수사 전략이 적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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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 한솔을 비롯한 의류벤더들이 피스당 3달러, 5달러짜리 의류를 수출해 천 수백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것은 해외 소싱을 통한 규모경쟁이 맞아 떨어졌다. 물론 이 과정에서 1억 달러 미만 벤더들의 거래선을 가격경쟁으로 제압해 차지하는 무자비도 있었지만 결과는 ‘더 크게, 더 싸게’ 전략이 명중한 것이다.
중국과 인도산에 밀려 레귤러 원사에서 코피를 쏟고 있는 화섬업계도 차별화 전략이 본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효성은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 등 일류화 상품 외에 광발열 원사를 독자 개발해 유니클로에 대량공급하고 있다. 휴비스를 비롯한 몇몇 화섬 메이커들은 레귤러 품목 에서는 적자지만 독자 개발한 잠재권축사는 지금 이순간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코오롱의 기능성과 고감성 소재도 크게 각광받고 있다. 중소 벤처기업으로 하늘을 찌를 듯이 커가는 벤텍스의 성공신화는 남이 하지 못한 제품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 금맥 찾자

차별화 원사가 개발되면 이를 사용한 제직과 편직업체들이 동반 성장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원사 메이커의 차별화 소재 개발이 직물과 니트 업계의 사활이 걸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전제는 당연히 시장에서 팔리는 제품이면서 중국이 따라오지 못한 품목이어야 한다. 어떤 원사나 원단도 중국이 따라왔다 하면 그 품목은 사시미 값도 매운탕 값도 아닌 젓갈 값으로 추락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대전제에서 섬유수출입조합이 올해부터 본격 시도하고 있는 중국산 소재의 강약점 조사 분석 사업은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아주 타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이 잘하는 품목은 피해가고 못하거나 안하는 품목에 선택과 집중하면 금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마케팅과 기술
전문가 12명 내외의 테스크포스팀(TF)을 구성한 것으로 알려져 3월부터 본격화 될 이들의 활동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차별화, 특화, 이 길만이 우리 섬유산업이 기사회생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다. 인정사정없이 가격을 후려치는 벤더나 바이어를 원망하기에 앞서 내 물건을 안사면 못베기게 하는 것이 금맥 전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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