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표창] 김기완 (주)비전랜드 대표이사

나주에 세계 최초 천연염색센터 설립 양산돌입
“섬유업에 불황은 없다, 인간은 옷을 입으니까”

“섬유산업은 불황이 없다. 굶어도 옷은 입어야 하니까” 이 말을 전해주자 한 섬유업 종사자는 자신이 지난날 불황을 탓하며 시장을 원망했던 일을 떠올리며 뜨끔했다고 한다.
섬유업종에 대한 ‘불황 무용론(無用論)’. 김기완 (주)비전랜드 대표의 주장이다.
업계에서 그를 한국 섬유수출의 산증인이라는 말에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다.
1995년 (주)비전랜드를 창업한 김 대표은 ‘데뷔’ 첫해 700만 달러 수출로 시작했다. 이후 교직물 수출업체로 성장을 거듭하면서 2001년엔 수출 2000만 달러를 찍었다.
그는 국내시장의 장기불황을 타개하기 아이템의 차별화 특화전략을 남보다 한발 앞서 전개하면서 미국과 유럽시장을 공략했다. 2008년에 7500만 달러를 달성, 창업 13년 만에 10배 이상의 수출신장을 기록했다. 모두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던 때라 이 같은 실적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마침내 지난해 1억 1000만 달러를 돌파하면서 ‘1억불 클럽’에 진입했다.
김 대표는 창업초기엔 중동시장에 비중을 뒀다. 당시에는 주로 폴리(poly), 스웨이드(suede)를 소재로한 아이템이었다. 1990년 후반 글로벌 시장의 변화를 감지하고 주력 수출 아이템을 교체했다. 바로 비전랜드의 간판 ‘면교직물 원단’이다.
면에 폴리에스터 스판덱스(POLYESTER PANDEX) 또는 나일론 스판텍스(NYLON SPANDEX)를 위사로 배열하는 면교직물을 발전시켜 드레스셔츠 용 원단을 대량 생산화한 것이다. 회사 측은 “비전랜드서 개발한 면 교직물은 기존 제품들에 비해 구김이 덜하고 광택이 나는 장점을 가졌으며 유럽산 원단과 비교해 절대 꿀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면교직물 수출은 2002년 230만 달러→2006년 1350만 달러→2009년 2640만 달러→2011년 3200만 달러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주변에서는 비전랜드의 아이템을 바탕으로 국내 많은 섬유회사들이 새로 설립되거나 성장한 것을 보면 김 대표와 비전랜드가 국내 섬유산업에 끼친 영향력은 막대하다고 입을 모은다. 면직물은 이 같은 진화과정을 거치며 한국섬유산업을 떠받치는 든든한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했다.
김 대표는 일찍이 국내 원단산업의 ‘해답’은 해외에 있다고 판단 이를 실천에 옮겼다.
2003년 이래 중국, 방글라데시,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에 공장 혹은 법인을 설립했고, 2017년은 미얀마에서 원단 및 의류를 양산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생산 능력이 크게 확대 되면서 2019년 5억불 수출이 가능할 것으로 회사 측은 자신하고 있다.
천하의 비전랜드도 위기가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선물환 거래로 153억 원의 손실을 입은 것.
김 대표는 임직원들에게 “자신과 회사의 미래를 믿고 단결해 극복하자”고 호소했다. 자신을 포함한 간부급 직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등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협력업체들부터 밀린 임가공료 1년치를 우선 지급해준 일화는 대인배의 모습으로 회자되고 있다.
‘친환경 기업의 미션을 실행에 옮기는 인류주의자’ 김기완 대표를 일컫는 수식어다. 그는 ‘섬유를 통한 인간 행복의 실현’을 모토로 삼고 있었다. 섬유를 다루면서 늘 화학염료가 좋지 않다는 점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천연염색 원단을 양산하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김 대표는 아무나 할 수 없지만 누군가 해야 할 ‘천연염색의 양산’의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
우여곡절 3년의 집념 끝에 전남 나주시에 천연염색센터를 구축했고 올해부터 양산체제에 들어갔다.
“회사가 존재하는 그날까지 입는 사업(섬유ㆍ의류ㆍ패션)을 할 생각입니다. 왜냐고요? 인류가 존재하는 마지막 날까지 사라지지 않을 사업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섬유인’ 김기완 대표의 확고부동한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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