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은 천심이다. 그래서 여론에 민감한 통치자는 국민이 호랑이처럼 무섭다고 실토한다.
햇수로 집권 3년차를 맞는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기간은 정확히 아직 만 2년이 채 안됐다. 급기야 국민 지지도가 20%대(29.7%)로 추락하는 이변에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화들짝 놀라고 있다. 민심 이반의 배경은 정치적 이슈인 십삼시 국정농단 파문과 문고리 3인방에 대한 회전문 인사에 대한 비판적 여론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13월 세금폭탄과 증세 없는 복지가 비극적 결말을 향해 치닫고 있고, 건보정책 개선 백지화의 조삼모개 정책의 반감과 실망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에 대한 잣대가 너무 성급하고 부박함을 떨칠 수 없다. 남북이 대치하는 산적한 국정지표 속에서 발등의 불인 경제 살리기에 노심초사하는 대통령의 진정성과 충정을 성찰하지 못한 국민들이 표피적인 여론 재판에 뭉뚱그려진 유약한 사고가 아닌가 싶다.

중국을 무시하다 덫에 걸린 한국 섬유산업

대통령학 전문가들은 임기 5년 중 1년은 국정 파악의 준비기간이고 2년째부터 본격 통치의 진수를 보인다고 강조하고 있다. 3년이 지나면 레임덕에 시달린다. 집권 만 2년도 채 안 되는 대통령에게 인기 없는 일부 사례를 잣대로 성급한 지지도 평가는 모호하고 자의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충고를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겨우 집권 3년차를 맞는 대통령의 지지도를 추락시켜 국정 운영의 동력을 상실하면 그 피해 역시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거품 같은 여론 지지도에 일희일비 말고 대통령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당분간은 진득하게 기다리는 여유와 아량이 필요한 때다. 

본질 문제로 돌아가 작년부터 급격히 고립무원의 한계 상황을 헤매고 있는 국내 섬유ㆍ패션산업이 근본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면밀히 복기(復碁)해봐야 한다. 그 바탕에서 탈출구가 어디인지 백방으로 연구하고 찾아보면서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리는 것이 발등의 불이다.

중언부언하지만 우리 섬유ㆍ패션업계에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불안성 가연심리가 엄습한 것은 십수년 전 부터다. 그럼에도 과거에 만들면 팔리던 시절의 향수를 잊지 못하고 천수답 경영으로 일관하다 이 모양 이 꼴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우리의 가장 큰 강적인 세계의 공장 중국을 너무 과소평가 했다. 산업마다 기업마다 세계 최대를 추구할 뿐 아니라 경영마인드가 급속히 선진화되고 있는 속도를 감지하지 못했다. ‘만만디’로 상징되는 느리고 질 나쁜 중국 이미지에 안주했을 뿐 규모경쟁과 생산성, 품질, 마케팅 전략의 급속한 발전을 애써 외면해온 것이다.

면방만 해도 중국의 전체 설비규모는 4000만추를 훨씬 상회한다. 한국의 120만추 규모의 40배에 육박한다. 중국의 대표적인 면방기업인 웨이차오 1개사 규모가 750만추다. 규모뿐 아니라 설비도 자동화로 무장했다. 품질과 생산성은 물론 물류 운반 시스템과 마케팅 전략 또한 한국 뺨치게 순발력을 과시하고 있다.

여기에 비해 국내 면방산업은 내수시장에 과잉설비란 자충수를 뒀다. 국내 시장 규모로 봐 국내 면방 설비의 적정규모는 100만추 규모가 적합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값싼 인도산의 가격파괴로 시장을 잠식당하면서 그들과 가격경쟁을 해야 하니 고급 차별화 면사로 탈출구를 마련했어야 했다. 대량 수요처인 의류수출 벤더들은 갈수록 국산 사용 비중을 줄이고 해외 현지공장 생산 비중을 높이고 현지 조달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흉년 떡도 많이 나오면 쌀 수밖에 없듯이 공급과잉은 필연적인 가격파괴를 유발하고 그로 인한 채산악화는 ‘묻지 마라 갑자생’이다.

표류하는 면방뿐 아니라 재벌급 기업이 운영하는 화섬산업의 고단한 경영 역시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면방처럼 중국의 화섬 생산능력은 전 세계 수요량보다 많다. 한국시장을 유린하고 있는 ‘행리’나 ‘생홍’같은 곳은 1개 회사 생산 캐퍼가 한국 전체 화섬기업 생산량보다 많다.

캐퍼뿐 아니라 설비는 5~10년 미만 최신설비가 주축이다. ‘요릿집 막대기 장기간 우려먹듯’ 설치된 지 30년, 40년 된 한국의 화섬 설비와는 생산성, 품질 모두 앞서고 있다. 여기에 중국은 풍부한 노동력에 아직도 한국 임금의 5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품질 좋고 가격 싸니 전 세계가 선호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시대에 영화 국제시장을 반복해 상영하며 애국심을 호소해도 냉엄한 국제 경쟁시대에 소용없는 일이다. 한국 화섬업계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섬과 면방 등 업스트림의 몰락 위기에 더욱 날개 없이 추락하는 것은 직물산업이다. 국내 봉제산업은 이미 90년대 후반부터 붕괴돼 공동화된 지 오래여서 거론할 필요 없이 참담한 상황이다. 직물 역시 갈수록 중국의 대량 생산에 이은 원가절감과 의도적인 시장가격 파괴에 우리 업계는 맥을 못 추고 있다.

폴리에스테르 치폰 B/W 직물의 터키 수출가격을 보면 ‘악’소리가 절로 난다. 한국산은 도둑놈 뒷골목 가격이라고 해도 미터당 1달러 이상은 받아야 원가를 맞출 수 있다. 그러나 요즘 터키에 들어가고 있는 중국산 치폰은 미터당 57센트 선에 불과해 한국의 절반 가격에 가깝다. 규모경쟁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중국 앞에 ‘계란으로 바위치기’신세로 우리 직물 가격경쟁이 떨어진 것이다.

아직 중국이 ITY 직물에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세계 시장을 장악하던 한국산 ITY니트직물도 순전히 우리끼리 과당경쟁으로 망가뜨렸다. 된다싶으니까 너도 나도 들쥐떼 근성으로 달려들어 너 죽고 나 죽는 막장투매로 시장을 초토화시켰다. 트리코트 경기는 환편보다 더 악화됐다. 여기에 염색가공업계도 직격탄을 맞아 대구, 경기, 전북지역에서 휴업하는 공장이 늘어나고 매물로 나온 공장도 눈에 띠고 있다. 국내 섬유스트림이 총체적으로 공멸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칼날 위를 걷는 위기의식 속에 백가쟁명(百家爭鳴)식 혼란만 난무할 뿐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없는 것이 오늘 우리가 서 있는 현주소다. 아무리 중증환자라도 발병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면 그 바탕에서 처방이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다. 신체 어느 부위에서 암이 시작됐고 어디까지 전위됐는지, 환부 일부만 제거해야 되는지 아니면 신체 어느 부위까지 제거해야 되는지 정확한 진단이 없는 것이다. 그 바탕에서 명의를 동원해 과감히 집도하는 것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수순이다.

10종 허들경기에 빠져든 막다른 상황

거두절미하고 섬유ㆍ패션산업을 살리기 위한 ‘민관 비상대책위원회’를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 어영부영 더 이상 방치하다가는 게도 구럭도 다 놓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섬유산업연합회가 앞장 서 각 스트림별 최고 경영자를 주축으로 한 ‘섬유ㆍ패션 비상대책위원회’구성을 제안한다. 단체나 학계도 중요하지만 경영 일선에서 고심참담 피가 마른 고통을 겪고 있는 중진 기업인들이 경영 일선에서 겪고 있는 목 타는 비명소리를 듣고 거기에 맞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기업의 운명은 기업 스스로 타개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 아래 문제 해결은 기업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대전제가 따라야 한다. 그 바탕에서 기업이 할 수 없는, 하기 어려운 분야는 정부의 산업정책을 통해 마련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둔다. 어느덧 10종 허들경기에 빠져든 국내 섬유ㆍ패션산업의 낙오를 방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허송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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