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 유작 기증 잇단 전시회…‘칠겹옷’ 등 시선모아,기부, 전시회, 라이센스 사업 등 순항…일대기 영화 제작 ,고인유지 의식 ‘지나친 상업성’ 경계 사업 소극적 모습도

지난달 28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故앙드레김(1935.8.24~2010.8.12) 4주기 천도제가 있었다.
고인의 유족인 아들 김중도 ‘(주)앙드레김디자이너아뜨리에’ 대표와 아뜨리에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임세우 실장, 임직원, 그리고 본지 조영일 발행인 등 지인들이 참석해 조촐한 행사를 가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 다수 매스컴에서 ‘패션거장 앙드레김’을 추억하면서 재조명 등 보도가 이어졌으나 4주기인 올해는 다소 잊혀진 느낌이다.


고인이 떠난 지 4년째 서울 신사동에 있는 ‘앙드레김 아뜨리에’는 특별한 변화는 없다.
다만 생전에 30~40명이던 구성원들이 10명 남짓으로 줄면서 규모가 작아졌다.
이곳 임세우 실장은 회사를 소수 정예로 운영한다고 귀뜸한다.
디자이너, 재단사, 미싱사 등으로 구성된 아뜨리에 가족은 저마다 분야별 베테랑으로 생전의 앙드레김과 함께 작업해오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오랜 동안 한솥밥을 먹고 팀워크를 다져오면서 앙드레김의 혼을 작품에 불어넣고 있다.
임 실장과 김 대표는 역할 분담을 하기보다 ‘앙드레김’의 영속성을 위해 함께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실장은 故앙드레김의 최측근으로 30년을 함께 해오면서 실질적으로 아뜨리에를 이끌고 있다.
패션 거장은 떠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여기저기서 앙드레김과 함께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그가 남긴 디자인의 작품을 구매하고 기업은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있다.
현재 ‘앙드레김’브랜드 라이센스 사업은 도자기(한국도자기), 속옷(아인스 M&M), 골프웨어(정선가족), 침구(한울아리), 안경(반도광학), 양말(빈센치오), 잡화(성창 F&C) 우산 등 10여개에 달한다.
라이센스 사업은 현재 규모 수준에서 꾸준한 모습이다.
아들 김중도 대표는 “아직도 라이센스 브랜드를 접할 때 마다 부친의 숨결이 살아 숨쉬고 있는듯 하다”며 남다른 애정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24일부터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앙드레김의 유작이 전시되고 있다.
생전에 고인이 직접 만들었던 의상 20벌이 3개월마다 교체되며 관객을 맞고 있는 것이다. 
모두 아뜨리에로부터 기증받은 앙드레김의 의상 자료들이다.
아뜨리에는 박물관에 ‘칠겹옷(Seven layers dress)’ 등 15건 121점을 기증했다.
이곳은 패션 관계자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모습도 눈에 많이 띈다.
‘칠겹옷’ 앞에서 시선을 고정한 한 관객은 한국의 정서를 몽환적으로 표현한 앙드레김의 독보적인 영감을 떠올리며 잠시 추억하는 모습이다. 서울시립 역사박물관에서 전시도 준비중이다. 아뜨리에는 향후 사업 확대와 관련 여전히 조용한 편이다.


임 실장은 “브랜드 사업 구상과 준비는 하고 있지만 서두르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앙드레김 브랜드가 자칫 지나치게 상업적인 모습으로 비춰질까봐 경계하는 눈치다.
고인이 추구했던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추진하고 있다 보니 다소 더딘 모습이라는 것. 임 실장은 기업이나 단체 등에서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접촉해오고 있지만 아직 라이센스 사업 수준에서 거래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뜨리에는 앙드레김 사후에도 서울대병원, 연세대병원 등을 비롯해 각 단체에 활발한 기부활동을 벌여왔다. 고인의 유지를 실천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처럼 요란하지 않지만 라이센스 사업, 패션쇼, 전시, 기부활동 등으로 ‘앙드레김 아뜨리에’는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는 ‘앙드레김 추모 패션쇼’도 열릴 것 같다.
후배 디자이너면서 뉴욕과 파리에서 왕성하게 활약하고 있는 정구호가 디자인을 맡는다는 소식이다.
내년엔 앙드레김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의 1호 남성 디자이너앙드레김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앙드레김’이 2015년 개봉된다.
배우 하정우가 앙드레김의 청년과 중년시절을 보여줄 예정이다.
후계자 선정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신중한 입장이다.
앙드레김의 디자인과 철학을 갖추면서도 현대적 감각으로 재조명시킬 수 있는 역량있는 인물을 찾고 있지만 아직 수면위로 떠오르지 않고 있다.
한편 최근엔 앙드레김 타계 4주년을 앞두고 생전에 고인과 인연이 있던 던 이들이 한 방송에 나와 추억했다.


60년대 톱스타였던 엄앵란은 자신의 결혼식에 최초의 서양식 웨딩드레스를 선보인 앙드레김과의 인연을 소개하면서 당시 명동 시절과 젊은 백의(白衣)거장을 회상했다.
모델 박영선은 故앙드레김의 장례식 때 아이가 너무 어려 불참했던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정말 존경했던 분이고 자신의 정신적 지주라고 말했다.
그는 15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첫 목적지가 앙드레김 선생님 가게였고, 이곳에서 김중도 대표도 만났다는 말을 덧붙였다.
앙드레김은 1960년대 ‘패션’이란 용어조차 없던 시절에 파리 에펠탑에서 한국인 최초로 의상쇼를 열어 호평을 받았다.
이어 반세기 동안 해외 각국을 돌며 올림픽 패션쇼 등을 개최하면서 한국 패션을 알려온 선구자이자 국민 디자이너다.


마이클잭슨과 브룩실즈를 비롯해 글로벌 스타들이 그가 만든 옷을 입었고, 각국의 영부인과 왕실 여인들이 ‘앙드레김’표를 입고 맵시를 뽐냈다.
앙드레김은 여성의 우아함을 최대한 끌어내는 로맨티시즘에 바탕을 둔 의상을 고집했다.
한국의 전통문양을 비롯한 각국의 전통문양과 자연에서 모티브를 딴 문양을 적극 응용하고, 화려한 컬러를 자유롭게 이용했다.
‘칠겹드레스’는 이의 절정판이라 할 수 있다.
패션쇼에 당대 최고의 스타들을 모델로 등장시키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의 무대에 서야 비로소 최고의 스타로 인정받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천도제를 마치고 온 한 패션관계자는 “그가 아직 우리 곁에 있다면 패션한류가 날개를 달았을 것”이라며 거장의 빈자리를 아쉬워했다.

 


서울 국립민속 박물관에서는 지난 4월 24일부터 앙드레김 아뜨리에가 기증한 故앙드레김 유작 121점이 절찬리에 전시되고 있다. 전시회는 서울시립역사박물관에서도 이어질 예정이다.


서울 서초동에 있는 ‘앙드레김디자이너아뜨리’에 내부 모습. 흑과 백이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며 생전 앙드레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생전의 앙드레김 패션쇼. 일각에서는 추상적이라는 평도 있었으나 거장 특유의 환상적이고 독창적인 패션으로 관객의 탄성을 자아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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