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도 이르다. 세계를 감동과 흥분으로 몰아 넣었던 한·일 월드컵이 잉크도 마르기전에 고질적인 망국병이 다시 도지고 있다.'대∼한민국'의 함성이 아직도 귓전에 생생한데 또다시 여·야 정치권이 득달같이 물고 뜯고 개처럼 싸운다. 60억 지구촌 가족의 갈채를 초일류국가 도약의 동력으로 삼기는커녕 그들에겐 12월 대선외엔 안중에 없는 모습이다.설상가상으로 삼복더위에 정치권의 핏발선 신호에 맞춰 잠잠했던 노사분규가 여기저기서 재연돼 소모적인 파열음이 귓청을 때린다. 가구당 부채가 수천만원이란 통계를 비웃기나 하듯 해외여행객이 다시 봇물을 이루는 것도 볼성사납다.월드컵 기간 중 그토록 조용하던 강력범죄가 다시 기승을 부려 불안감이 고조되는 등 도처에서 내성강한 풍토병이 재발하고 있는 것이다.충격적인 직기감소 속도모든길이 로마로 통하듯 오만가지 병폐는 정치권에서 시작된다는 지적이 실감나는 시점이다. 위선과 폐덕의 정치가 언제쯤 끝날지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내친김에 중언부언하자면 영락없는 코메디인 정치권의 일희일비는 국민들의 실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지난 4월까지 태풍 '라마순'을 뺨치는 노무현 돌풍때는 민주당이 행여 이회창이 낙마할까봐 가슴을 졸였다. 5월 이후 거꾸로 노풍이 추락하자 이번에는 한나라당이 노무현이 낙마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고양이 쥐 생각하는 꼴이다. 벌써부터 수면위로 부상한 정몽준 대안론에 노무현은 물론 한나라당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30억 아시아인을 대표한 유일한 FIFA 부회장으로써 히딩크 신화의 주역인 정회장의 인기가 수직상승하고 있는 점이 하나의 예증이다. "정치와 축구는 구별되야 한다"는 알쏭달쏭한 발언에도 불구, 그의 9월 거취표명을 앞두고 여·야 대선주자들이 오뉴월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다시 우리얘기로 돌아가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는 자연의 법칙은 우리 섬유산업의 현주소와 일맥상통한다. 세계제일의 합섬직물 산지인 대구의 모습이 그렇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며칠전 직물연합회와 원사시험연구원이 발표한 전국제직시설 실태조사 결과는 관련업계 모두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지난 97년말 직물합리화조치 종료 시점과 비교하면 직기대수나 업체수 모두 상상을 초월한 급감현상을 보였다.구체적으로 불과 5년만에 직기대수와 업체수가 무려 40%나 줄었다. 워터제트직기가 5만대니 6만대니 하며 과잉직기 폐기조치를 촉구한 것이 엊그제인데 전국을 통틀어 3만2천대도 채 안된 것으로 나타났다.여기에 에어젯트 1만 400대, 레피어 1만 4,800대를 포함해 혁신직기 모두를 합쳐 5만 7,000여대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북직기 감소야 불가피하지만 지난 5년전에 비해 90%인 5만대 가까운 북직기가 감소하고 불과 1만대 규모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혁신직기 개체는 극히 미약하기 이를데 없다. 업계가 설비투자는 엄두를 못내고 그저 축소지향 일변도로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겨우겨우 연명한 것이다. 걱정스런 것은 이같은 직물업계의 축소지향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단행된다는 사실이다. 불과 5년전에 비해 40%가 줄었다면 향후 5년내에 또다시 이같은 감소가 재연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더 가파르게 간판내리고 문 닫을 기업이 많다는 점에서 가속이 붙은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산업역사에서 가설은 성립되지 않지만 섬유산업의 지난 궤적에서 이같은 가설은 오히려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원인과 근인은 간단하다. 합섬직물 공급 능력이 과거 한국과 일본 위주에서 중국이란 거대한 복병이 등장했고, 세계 곳곳 후발국들이 합섬직물에 진출해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이 한국에 당했듯이 우리가 중국이란 세계의 공장에 경쟁력을 잃고 있는 것이다.실제 우리업계가 나름대로 차별화다, 특화다 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오늘 이 순간도 두바이의 겨울용 후직물은 중국산이 휩쓸고 있다. 시리아 시장도 중국산이 장악했고, 동구권, 중남미 심지어 미국시장까지 중국산이 활보하고 있다. 문제는 아직도 이같은 절박한 위기 상황임에도 우리 업계가 뚜렷한 타개책이 없이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협공에 속수무책으로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좀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중국을 극복할려는 전략도 의지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젠 늦었지만 우리끼리 찍고 발기고 하는 후진성 행태를 지양하고 같이 살아남기 위한 고단위 처방을 마련하는데 관련 업계가 총력을 경주해야한다. 무엇보다 화섬원사메이커와 합섬직물업계의 스트림간 공조체제가 좀더 강화돼야 한다. 누가 뭐래도 우리의 합섬직물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재의 차별화가 가장 절박한 급선무이다. 이를 위해 원사메이커와 직물업계가 수시로 머리를 맞대고 정보를 교환하고 의사를 소통해야한다. 서로 불신과 반목으로 일관하던 지난날의 오류는 이제 청산해야한다. 우선 자본과 기술, 정보에서 앞선 화섬업계가 포용하는 자세로 직물업계를 이끌어야 한다. 다양한 신소재를 부단하게 개발해 실수요 업계의 소재 빈곤 불만을 털어내야 한다. 과거 원사 배급주던 시절과는 세상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아직 힘있는 곳은 원사메이커이다. 감싸고 이끄는 그런 아량속에 직물업계를 리드해야 한다. 대구직물업계가 살아야 우리화섬업계가 생존할 수 있다. 국내 직물산업이 지금같은 속도로 붕괴되면 화섬업계의 미래도 없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더불어 직물업계도 반성해야한다. 얼핏하면 뭐맡겨 놓은 것 달라는 식으로 푸념만 해서는 안된다. 국내화섬산업 일본 앞섰다. 소재를 개발하지 않는다고 불평, 불만을 늘어놓기 전에 무슨 소재를 어떻게 개발해 달라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요구가 선행돼야 한다. 사실 지금의 국내화섬업계는 일본화섬업계보다 기술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일본화섬업계는 지난 10년간 사실상 신규투자를 별로 하지 못했다. 규모나 기술에서 국내화섬업계가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은 세계화섬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더우기 국내화섬업계중 선발업체 상당수는 자체 연구소에 150-200명의 석·박사를 보유하고 있다. 밥먹고 하는 일이 신소재 신기술 개발이다. 그들을 활용해 신소재 개발을 촉진해야 한다. 앉아서 개발소재를 기다리기 보다 이런 소재를 개발해 달라고 채근하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울어야 젖주는 것 아닌가. 화섬업계가 거래선에 '무슨 소재를 개발했으면 좋겠냐?'고 물으면 묵묵부답이면서 전가의 보도처럼 소재개발 못한다고 난타하는 것은 잘못된 것 아니냐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화섬업계 연구소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실수요업계의 이같은 의견 개진을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필자에게 전달해 오고 있음을 아울러 밝혀둔다. (本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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