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임박하면 온갖 풍병(風病)이 도져 나라 전체가 심한 돌림병을 앓는다. 북풍으로 시작해 '세풍', '총풍'이 불더니 이회창씨 아들 '병풍'(兵風)이 다시 불거져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고 있다. 여기에 전국을 강타하던 '노풍'(盧風)은 어느새 세력이 약화돼 민주당의 분열을 자초하고, 이번에는 월드컵붐이 몰고온 '정풍'(鄭風)이 태풍의 눈이 되고 있다.'바람'의 사전적 의미는 기압의 변화로 일어나는 대기의 유동이다. 동력선이 없던 시절 바람에 생사 여탈권을 맡긴 뱃사람들은 바람에 대한 말이 유난히 발달했다.한국, 지구촌 부국인가지금도 나이지긋한 뱃사람들은 동쪽은 '새쪽' 서쪽은 '하늬쪽' 남쪽은 '마쪽' 북쪽은 '노쪽'으로 부르고 있다. 따라서 동풍은 샛바람이고 하늬쪽에서 부는 바람은 하늬바람이다. 북풍은 높바람 또는 된바람이고, 남풍은 게가 눈을 감추게 만드는 마파람이라 부른다.또 바람도 여러 가지로서 명주처럼 보드랍고 화창한 바람을 명지바람, 맵고 독하게 부는 찬바람을 고추바람이라 불렀다. 비는 안오는데 몹시 부는 바람을 강바람이라고 부르고, 뒤에서 부는 바람을 꽁무니 바람, 이리저리 방향이 없이 막부는 바람을 왜바람이라고 부른다.이같이 다양한 바람중 가장 못된 바람이 피죽바람이다. 모낼 무렵에 오랫동안 부는 아침 샛바람과 저녁 높하늬를 아울러 피죽바람이라고 했다. 이 바람이 불면 어김없이 흉년이 들어 피죽도 먹기 어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떄마침 대선을 앞두고 온나라를 강타한 온갖 풍병이 나라 망치는 상살(相殺)의 피죽바람이 아닌 국태민안의 화창한 명지바람 이었으면 하는 바램이다.본질문제로 돌아가 12월 결산 상장기업의 올 상반기 실적을 보면 섬유수출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업종구분없이 호황을 만끽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경기 호황으로 상반기에 4조원이란 천문학적인 흑자를 시현했다.SK텔레콤은 1,000원 매출에 350원 이익을 버는 땅짚고 헤엄치는 대박을 터뜨렸다. 510개 상장기업의 평균 영업 이익률이 작년의 7.36%에서 8.1%로 높아져 호황의 척도가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가게한다.그래서 그런지 흥청망청 소비구조가 갈수록 도를 더해간다. 바캉스 휴가차 외국에 나가는 사람들이 포화상태를 이뤄 항공티켓을 구할수 없는 가운데 상반기에만 여행수지 적자가 무려 16억달러를 넘어섰다. 연말까지 줄잡아 이 부문에서만 40억달러의 적자가 예상된다는 것이다.최고급 국산 승용차인 에쿠스 딜리버리가 4∼5개월씩 지연되고, 값비싼 외제승용차를 비행기로 공수해 올 정도로 수요가 급등하고 있다. 대당 1,000만원짜리 벽걸이 TV가 불티나네 팔리고, 피스당 35만월짜리 스웨터가 백화점에서 동이날 정도로 내수경기가 불붙은 것이다. 우리 경제의 목줄을 쥐고있는 미국경기는 바닥으로 떨어져 고급식당에 파리가 날리고, 미국전역의 소매 경기가 급격히 추락한 것과는 너무 큰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 착각을 일으키는 대목이다. 문제는 우리의 경제가 이같이 튼실해 골고루 호황을 누린다면 오죽 좋겠는가마는 외양과 실제 사이에 거리가 멀다는데 심각성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무역흑자의 효자산업인 섬유수출이 바닥을 기고 있다.상반기 결산에서 모든 업종이 호황을 만끽하고 있지만 섬유수출업계는 피골이 상접해졌다. 사·직물업계부터 극소수 업체를 제외하고는 세계 경기침체에 환율까지 추락해 내용이 형편없이 빈약해졌다. 이미 국내 생산을 포기하고 해외로 탈출한 의류수출업계도 뒤지가 빈 것은 매한가지이다. 환율이 달러당 1,200원 밑으로 떨어지면서 여기저기서 아비규환의 신음소리가 요란해지고 있다. 벌써부터 해외공장마저 경영이 어려워 비명소리가 한창이다. 그동안 황금알을 낳던 카리브지역 봉제공장들도 한계상황에 놓여 포기업체가 속출하고 있다. 인건비가 싼 베트남쪽으로 50개 100개 라인의 초대형 공장을 투자하고 있지만 기존 카리브 공장을 그대로 두고 있어 제살깎기 경쟁으로 도마뱀꼬리 자르는 악순환에 사달리고 있다.급기야 올 상반기에 과테말라에서만 한국계 섬유봉제공장 30개소가 철수했다. 인건비 인상에 도둑떼가 극성을 부리는 치안문제가 겹친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벌써부터 이 지경이라면 섬유쿼터가 폐지되는 2005년부터는 세계의 공장 중국 앞에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쿼터가 없어지면 의류봉제가 가장 먼저 치명타를 입는 것은 불문가지이다.여기서 걱정스런 것은 산업구조의 왜곡이다. 다시말해 수출 경쟁력이 추락하면서 너도나도 내수시장으로 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실적에서 나타나듯이 내수패션업체들은 복종별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대박을 터뜨렸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판매가 저항이 없는 독특한 국민성 덕분에 비싸면 더 잘팔리는 소비심리 때문이다.백화점에서 스웨터 한 장에 16만원짜리는 안팔리지만 36만원을 붙이면 불티나게 팔린다. 모 스포츠업체에서 등산화 한 켤레에 8만원을 붙였더니 안팔려 12만원으로 붙이니까 너무 잘팔리더라는 에피소드는 지금 우리가 서있는 내수시장의 현주소다. 의류수출업체는 쪽박을 차고 내수업체만 대박을 터뜨리는 이런 잘못된 구조 때문에 피같은 달러를 벌어들인 수출기업들이 좌절감에 사로잡혀있다. 당연히 수출을 포기하고 수익좋은 내수쪽으로 방향을 선회할 수밖에 없다. 불가측성 내수시장 실제 지금까지 수십년간 수출 외길을 걸어온 의류수출업체들이 내수시장 진출을 위해 물밑에서 본격 움직이고 있다. 외국의 유명브랜드를 들여오기 위해 접촉하면서 경합이 붙어 라이센스 가격이 치솟고 있다. 일찌감치 해외공장에 투자했던 회사들은 내수업체의 하청공장으로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그러나 4,500만 인구의 내수시장 규모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지금은 왜곡된 소비문화로 인해 값비싼 브랜드 위주로 수요가 폭발하고 있지만 이것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의문이다.IMF때 철저하게 체험했듯이 경기가 조금만 삐끗하면 와르르 무너지기 십상이다. 그만큼 불가측성 내수시장에 신규진출이 봇물을 이루는 것은 위험한 모험이다.수출이 안되면 득달같이 내수경기에 파급이 미친다. 정부도 국가경제의 안정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내수위주의 경기진작보다 수출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장기전략을 유지해야 한다. 환율문제를 비롯 주5일근무제 등 요즘 돌아가는 통박은 경제 현장에서 볼 때 엇박자일 뿐이다.<本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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