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역사가 46억년이라고 배웠다. 그동안 무수한 생물의 진화가 이루워졌다. 인류의 조상이 진화를 시작한 것이 600만년 전이라고 진화생물학자들이 주장한다. 인간의 게놈지도가 완성된 현대과학을 감안할 때 600만년 후가 아닌 불과 1,000년후 인간이 어떻게 진화할지 흥미로운 상상이다. 진화하는 것은 생물뿐 아니다. 산업도 마찬가지다. 타분야는 차치하고라도 섬유의 진화 또한 비록 더디기는 했지만 변화무쌍했다. 기록에는 1만년전부터 실과 직물을 제조해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약 5,000년 전부터 인도에서 면직물을 사용한 기록이 있다. 4,500년 전부터 중국에서 양잠기술이 시작돼 견직물을 사용한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는 고려 공민왕 11년(1363년)이후 목화를 재배해 사용해왔다. 1만년보다 더빠른 50년의 변화그리고 100년 전부터 인조섬유시대가 열리면서 과거 1만년보다 빠르게 변화했다. 1899년 영국에서 비스코스 레이온 제조기술이 개발된 것이다. 곧이어 1902년에 미국에서 셀룰로즈 아세테이트 제조방법이 개발됐다. 여기에 1950년대에 아크릴과 폴리에스테르, 트리코트 섬유가 개발됐고 이를 계기로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아크릴 등 3대 화섬의 대규모 기업화가 이루워졌다. 60년대 들어 스판덱스와 아라미드 섬유가 등장했고, 여기에 탄소섬유와 고강도 폴리에티렌 섬유가 잇따라 개발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100년 전까지 거의 1만년 동안 섬유는 아마, 황마, 저마, 대마 등의 껍질섬유와 야자섬유의 과실섬유, 그리고 아바카섬유와 사이잘섬유라고 하는 잎섬유 시대였다. 그리고 면과 케이폭섬유의 씨앗섬유 중심이었고, 단백질섬유인 헤어섬유와 양모섬유와 함께 견(누에고치)섬유 위주였던 것이다.다시말해 꿈의 섬유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아크릴 등 3대 화섬의 대중화가 이루워지면서 섬유산업의 혁명이 일어났다. 불과 반세기만의 일이다. 이때부터 우리나라도 분초를 다투는 초고속 변화가 일어났다. 50∼60년대부터 이땅의 빈곤퇴치 주역으로 우뚝선 우리 섬유산업은 국가경제의 핵심축이었다. 그것이 90년대까지 30∼40년을 이어왔다. 당시에는 일부 선진국을 빼고는 중진국, 개도국, 후진국 모두 섬유산업 중흥정책을 펴지 않았다. 당연히 한국의 독무대속에 승승장구했다. 기업마다 섬유로 뭉칫돈을 벌었고 이것이 재벌축성의 지름길이었다. 현대와 쌍용을 빼고 우리나라 재벌 모두가 섬유로 부를 축적했다. 섬유로 번 돈으로 중화학에 투자했고, 섬유란 탄탄한 산모가 오늘날 반도체, 자동차, 철강, 조선, 정보통신의 건강한 자식을 낳은 것이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는 과거 1만년보다 지난 50년이 더욱 빠르고 넓었다. 세상이 바뀌면서 인력난과 임금인상이란 무서운 복병앞에 속수무책으로 주저 않게됐다. 더욱이 글로벌시대에 중국이란 무서운 경쟁국에 뒷덜미를 잡혔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영원한 섬유수출국을 장담하며 수입관세를 남의 일로 치부하고 비관세 장벽도 없이 세계에서 가장 싼 8%로 인심썼다. 선진국이나 경쟁국이 관세 또는 비관세 장벽으로 보호막을 치고 있을 때 우리는 대문을 활짝 열어 안방을 내준 것이다. 결과는 섬유수출 입초국을 눈앞에 둔 대량수입국으로 변했다. 지난 8월중 우리섬유 수입 역사상 최초로 월 3억달러를 돌파했다. 고급은 이태리 프랑스에서, 중저급은 중국에서 봇물 터지듯 몰려오고 있다. 의류수출은 작년보다 18%나 감소하고 있는데 수입은 이같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웃 일본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수입의류의 80%를 중국산에 내주고 말았다. 이것이 남의 일이 아닌 당장 우리의 발 등에 떨어졌다. 우리의 의류생산기반은 하루가 다르게 공동화(空洞化)되면서 속절없이 붕괴되고 있다. 의류뿐아니라 화섬도 벌써 중국이 재채기하면 감기몸살 앓을 정도로 중국의존률이 절대적이다. 면방산업 역시 가장 먼저 쇠락하면서 카드사는 전멸했고 코마사 마저 인도, 파키스탄산이 대종을 이뤄 설 땅이 좁아진지 오래다. 세계 최대 합섬직물산지인 대구에 급속히 낙조가 드리워진 것 역시 사실은 중국이란 거대 장벽 때문이다. 이미 대세가 기울었지만 이대로 방치하면 빠르면 3년, 늦어도 10년이면 대구 합섬직물산업은 지금의 1/3이 살아남으면 다행이다. 여러번 강조한 얘기이지만 중국은 원가개념이 없는 국가다. 1인당 평균임금이 시간당 0.69달러에 불과하다. 멕시코의 시간당 2.2달러, 폴란드와 헝가리 등 동구권의 2달러에 비해 1/3도 안된다. 한국의 시간당 평균임금 5.3달러의 1/10이다. 여기에 풍부한 인력, 정치는 사회주의, 경제는 자유경제를 채택한데 따른 무서운 경쟁력까지 가지고 있다. 정부가 하는 짓에 누가 감히 불만을 토로하면 곧바로 공안원에 끌려가 치도곤을 맞게된다. 이 판국에 월 1,000달러를 주고도 사람을 못구해 공장라인을 상당수 세우고 있는 우리현실에서 주5일 근무라는 가당찮은 제도가 법만 통과되지 않았지 사실상 시행되고 있다. '바다 장뚱이가 뛰니까 게가 따라뛰다 복판이 부러져 죽은꼴'이다. 대기업이 주5일 근무하니까 중소기업 근로자들도 5일제를 당연시한다. 주인이 장에 가니까 머슴이 지게지고 장에 가는 꼴이다. 노동의 유연성은 없고 노동의 국수주의만 팽배해 발등의 불인 외국인 산업연수생마저 제대로 조달할 수 없다. 임금에서, 인력에서, 제도에서 중국보다 천길만길 불리한 여건에서 국제경쟁력이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같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우리 의류수출은 갈수록 위축되는데 중국은 올들어 7월말 현재 대미수출이 작년보다 무려 94%나 급증했다. 2005년 섬유쿼터가 폐지되면 미국시장은 지금의 일본처럼 중국산이 80%를 차지해 독무대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전략과 전술이 생존전략이다. 미국 섬유업계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행정부와 의회에 쿼터규제를 2008년까지 연장 요청해 놓고 있는것도 이같은 위기감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의 섬유수출은 중국앞에 장기판의 돌신세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마디로 소름끼치는 일이다. 섬유산업 경영자들이 생물에서와 같이 미분화에서 분화로, 동질에서 이질로의 진화를 거부한 무사안일이 몰고 온 필연적인 귀결이다.그러나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결코 중국이란 거대한 장벽이 만리장성만큼 높은 것만은 아니다. 그들에게도 허점은 있다. 세계가 중국을 경계하는 장벽이 높아지고 있는것과 함께 한국만이 갖고 있는 순발력이 있다. 중국을 이길수 있는 전술과 함께 시장에서 이길수 있는 다양한 전략을 함께 구사하면 중국이 꼭 두려운 존재만은 아니다. 한국의 섬유산업 각 스트림이 공조하면서 시장에서 적중할 수 있는 전술과 전략을 구사하면 중국의 장벽은 얼마든지 넘을 수 있다. 자포자기는 이르다. <本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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