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패션의 중심지 이태리에서 패션디자이너로 맹활약하고 있는 임덕용씨(47)가 국내 업계와의 업무협의차 일시귀국했다. 서라벌대 미술과를 졸업하고 코오롱상사 패션부문에서 7년간 근무하다 대한민국 패션대전에서 금상수상을 계기로 17년전 이태리로 건너가 신산고초(辛酸苦楚)를 다 겪으면서 권위있는 디자이너로 성장한 그는 현지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아 프리랜서로 활약하고 있다. 이태리에서 자신이 디자인하고 기획 디렉터까지 맡아 런칭한 브랜드가 자그마치 15개에 달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임씨는 국내 제일모직의 스포츠 브랜드 라피도의 컨설턴트를 7년간 맡아오다 지난 25일 계약을 만료시킨 권위자.17년전 부인 권경옥씨와 함께 이태리로 건너가 '마랑고니'에서 수학하다 6개월만에 현지 패션회사에 스카웃 되어 이태리 패션의 진수를 섭렵한 그는 특히 스포츠 캐주얼과 신발분야의 뛰어난 디자이너이자 기획디렉터로 정평이 나있다. 지난 25일 귀국해 30일 출국하기까지 국내 모 패션업체와의 업무협의와 대학강의로 바쁘게 보낸 그를 본지 기자가 잠시 만났다. - 우선 패션디자이너 답지않게 인상이 강인하고 건강미가 넘치는군요.▲ 제가 워낙 등산과 스키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태리 밀라노에서 10년을 살다 현재는 알프스 밑자락 인스브르크 근처로 이사를 해 시간나는대로 만년설을 즐기며 등산과 스키를 타고 있습니다. 건강만큼 소중한 것은 없지 않습니까.- 본론으로 들어가 미국을 비롯해 선진국 경제가 침체기를 맞고 있는데 이태리 패션경기는 어떻습니까.▲ 정확한 통계는 지금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만 이태리 패션산업은 그대로 안정돼 있다고 봅니다. 가장 큰 미국시장이 위축되고 있지만 대신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권시장에 패션제품 수출이 잘돼 전체적인 밸런스는 유지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태리 사람들은 아무리 경기가 좋아도 좋다는 말을 안하는 것이 통례입니다만 요즘 나쁘다는 얘기 안합니다. - 이태리 패션의 강점이 무엇이라 봅니까.▲ 제가 보기엔 패션산업이 발달할 수 있는 역사와 문화, 환경이 어느나라보다 유리하다고 봅니다. 고대문명의 발상지라는 역사적 배경과 함께 3면이 우리나라처럼 바다로 쌓여있고 유럽에서도 가장 새파란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여기에 오스트리아와 경계에 알프스산이 있어 4계절 몽블랑의 만년설을 볼 수 있을 수밖에 없고, 역시 4계절이 분명합니다. 이같은 바탕위에서 오솔레미오 노래가 있고 패션이 성장할 수 잇는 토양이 갖춰졌다고 봅니다. - 국민들의 패션에 대한 의식이나 상식이 평준화 돼 있다는 얘기인가요.▲ 그렇습니다. 한 번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50대 아주머니 3명이 같이 앉아서 하는 얘기가 귀에 번쩍들어오더군요. "'미소니'는 디자인이 그런대로 괜찮고 '베르사체'는 섹시하지만 너무 반짝거린 것 같고 소재는 '아르마니'가 괜찮은데 가격은 '막스마라' 수준이었으면 좋겠고 역시 광고는 베네통 아니니?"….하고 쉴새없이 유명브랜드를 평가하드라고요. 50대 부인의 화제가 이 정도로 다양하고 예리할 정도로 패션의식이 대중화 돼있다는 점에 탄복했어요. 또 한 번은 버스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저를 보고 패션디자이너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내년에는 무슨 컬러가 유행될 것 같으냐고 물어요. 생각나는대로 그동안 유행했던 블랙이 가고 브라운컬러가 강세를 보일 것 같다고 얘기해줬더니 당장 집에가서 마누라에게 컬러를 브라운컬러로 바꾸라고 얘기하겠다고 말해요. 그만큼 관심과 의식이 대중화 됐다는 점에 놀랐습니다. - 이태리패션이 프랑스를 앞서가는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이라 봅니까. ▲ 파리패션이 이태리에 점차 뒤지는 이유는 생산기반 차이라고 봅니다. 파리는 크리에이티브한 면에서는 이태리를 훨씬 앞서고 있지만 생산기반이 없어 이태리에 밀린다는 것이죠. 이같은 점은 해외로 탈출하는 한국업계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 나라에 자본과 기술을 넘겨주면 결국 그 나라 공장입니다. 이태리는 한국처럼 해외공장에 무차별 투자하지 않거든요. 중국에 기술과 자본을 투자하면 결국 중국것 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태리에서는 패션제품을 팔 때 고객감동 차원이 아니라 패션의 영감을 판다는 것이 기본자세로 정착돼 있다는 점입니다. - 이태리 패션이 아무리 세계 최고라고 하지만 전부 고급품에만 의존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중국을 비롯한 후발국들의 추격을 어떻게 피하고 있습니까. ▲ 예를들어 신발하나만봐도 전세계 생산량의 53%를 중국이 장악했습니다. 이태리 역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예요. 그러나 한 번 넘겨준 중저가 시장을 다시 찾아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부르짖는 것이 고부가가치 전략에 명운을 걸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태리는 어떤 전략으로 고부가가치 전략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 예를들면 이렇습니다. 이태리의 가죽제품은 세계 최고라는 점에 아무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피혁원단 자체는 거의 이태리자체 생산이 없어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등지로부터 원피를 들여다 가공하는 기술에서 승부를 냅니다. 가공기술에서 탁월한 노하우를 개발해 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류용 원단도 가공기술로 승부를 냅니다. 의류원단중 제직과정은 10%에 불과합니다. 90%가 가공기술에 달려있다는 사실입니다. - 한국패션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 기본적으로 한국의 패션산업은 다듬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잠재력에서는 뛰어나다고 봅니다. 한 예로 한국에 초등학생들까지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데 대해 저 자신이 처음에는 상당히 거부감을 가졌어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소비가 있는 곳에 일류제품이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내수기반이 있었기에 오늘의 세계 최고를 넘보는 삼성전자가 나온 것 아닙니까. -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시죠. ▲ 사실 세계 1, 2위 핸드폰 제조회사인 '노키아'나 '모토로라'에서는 1년에 기껏해야 20개 내외의 신모델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3∼4개월에 20여개 모델의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어 세계에서 핸드폰분야 디자인이 가장 앞섰다고 불수 있지요. 바다의 돌이나 화장품 콤팩트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는데 놀랐습니다. 이런 대전제에서 볼 때 패션디자인도 우리의 잠재능력은 이태리보다 앞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태리업체가 3∼4개월 걸릴 디자인 개발을 우리는 하루 이틀에 완성할 수 있는 능력과 순발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중시해야 합니다. 이런 잠재능력을 제대로 개발하면 저는 충분히 패션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 얘기를 바꿔 한국에는 지금 외국산 명품에 대한 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습니다. 이같은 바람이 언제까지 갈 것 같습니까. ▲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웃음) 다만 과거 일본에서 불던 명품 열풍이 지금은 싹 가셨지 않습니까. 경제불황 때문이죠. 모른긴해도 한국에서는 앞으로 5년 이상은 가지 않을까 봅니다. - 요즘은 좀 뜸합니다만 이태리에서 우리의 동대문시장 같은 곳에서 싸구려 제품을 대거 수입한 일이 있습니다. 지금도 성행하고 있나요.▲ 이태리에서도 가짜 유명 브랜드를 도용한 제품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은 수입업자들이 양심을 갖고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한가지 특기할 것은 이태리의 스탁(재고) 장사가 요즘 잘 안된다고 합니다. 원인은 인터넷을 통해 젊은이들이 몇 개월, 몇 년 재고인지 확연히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6개월후 유행될 신제품 경향까지 한국 젊은이들이 꿰뚫고 있어 재고장사가 파리 날린다고 들었습니다. - 끝으로 영구 귀국계획은 없습니까.▲ 제가 17년전 이태리에 건너갔을 때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온갖 고초를 다 겪었습니다. 이제 이태리 패션계에서도 저의 집념과 능력을 어느정도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제가 이태리에 있는 것이 한국의 패션산업발전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으로 믿기 때문에 당분간은 귀국할 생각이 없습니다. 아들 동근이와 딸 유리를 이태리에서 낳았는데 가족과 함께 제가 좋아하는 알프산 밑에서 살면서 패션분야에 더욱 정진할 생각입니다. -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정희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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