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은 천심이다. 국민은 여ㆍ야 정치권에 따가운 회초리를 들었다. 푸른 바다 창파에 300여 생사람을 수장시킨 세월호 통곡 속에 치러진 6ㆍ4 지방선거 결과는 절묘했다. 세월호 참사에 무능하고 무기력한 정부 여당에 혼찌검을 냈다. 그렇다고 야당이 좋아서 반사이익을 주지 않았다.

국민은 어느 한 쪽에 완승도 완패도 거부했다. 여ㆍ야 모두에게 국민 무서운 줄 모르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엄중히 경고했다. 앞으로 어느 쪽이 국민을 더 섬기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가에 따라 차기 선거에서 심판받게 될 것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차지단체장 선거에 몰입하면서 교육감 선거결과가 이상해졌다. 전국 초ㆍ중ㆍ고 유치원생 718만명 가운데 80%가 진보 교육감 수중에 들어갔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는 상당수 전교조 성향의 교육감이 탄생한 것이다. 기우일지 몰라도 그렇지 않아도 위아래가 없어져가는 사회풍토에서 되바라진 급진 사고가 어린 학생들에게 주입될까봐 겁난다.

백성에게 옷을 입히고 산업화시킨 은인

말을 바꿔 지난 2일은 21년 전 우리 섬유ㆍ패션산업의 명운을 좌우할 전문 신문을 자임하며 출범한 국제섬유신문 창간 기념일이었다. 해마다 이날이면 우리 섬유ㆍ패션산업 발전에 기여한 기업인과 공로자를 선정해 시상하는 ‘삼우당 대한민국 섬유ㆍ패션大賞’시상식이 함께 열린다.

올해도 수상자와 단체장, 업계 인사 다수가 참석해 명실공히 난공불락 국내 초일류 섬유ㆍ패션 전문지로 자리매김한 본지 창간 기념식에 아낌없는 축하와 성원을 보냈다. 한국의 섬유ㆍ패션 노벨상으로 불리는 ‘삼우당 대한민국 섬유ㆍ패션大賞’수상자 17명에 대해 아낌없는 축하와 갈채를 보내는 축제의 한마당으로 이어졌다.

차제에 우리나라 섬유ㆍ패션산업의 아버지이자 산업 발전에 초석을 세운 민족 최고의 충신인 문익점 선생의 공적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본다. 삼우당(三憂堂) 평생을 나라와 임금과 백성을 위한 3가지 근심 속에 살아가신 충신 문익점 선생의 아호다.

삼우당 선생은 고려말 거유(巨儒)로 성리학의 거장이자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와 재배와 이용에 헌신한 민족의 위대한 은인이다. 선생은 1360년 고려 공민왕 9년에 과거시험에 급제했다. 요즘 KBS드라마 정도전에 나오는 고려말 마지막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과 과거시험 동기이며 당시 포은 선생이 장원급제 했다. 삼우당은 지금부터 651년 전인 1363년 공민왕 12년에 원나라에 사신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목화씨 10개를 몰래 숨겨 들여왔다.

당시에도 수많은 사신이 원나라를 다녀왔지만 적발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두려움 때문에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던 것을 문익점 선생이 결행한 것이다. 이듬해 향리인 지금의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읍 사활리에 내려가서 목화씨 5개는 본인이 심고 5개는 장인 정천익 씨에게 주어 심도록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본인이 심은 5개는 모두 말라 죽었고, 장인 정천익 씨가 심은 5개중 하나가 기적적으로 살아 가을에 소담한 목화송이로 피어났다.

이것을 가지고 3년 간 간난신고를 거듭하여 확대 파종하여 수천개의 목화씨를 얻게 되자 향리에서 부양하기 시작했다. 삼우당 선생에 의해 조선시대 목면의 못자리가 된 곳은 당시 진주목 강성현 효자리 지금의 산청군 단성읍 사월리로 대한민국 사적 108호 문익점 목면 시배지로 지정돼 있다.

이때부터 경상북도 의성지역을 중심으로 목화가 재배됐고 조선시대에 들풀처럼 번져 전국 산하를 목화밭으로 뒤덮게 됐다. 이를 계기로 목화를 수확해 솜을 타는 활을 만들고 물레를 만들어 실을 뽑아 베를 짜는 기술이 개발된 것이다.

당시 백성들의 의류소재는 명주와 삼베, 모시가 대부분이었으며 명주는 사대부 사람이나 입었고, 일반 백성은 겨울에도 모시, 삼베로 견디는 원시적인 생활이었다.

바로 문익점 선생은 헐벗은 백성에게 옷을 입힌 충신이며 조선시대의 농업이자 산업으로 발전시킨 일등공신이다.

조선왕실은 목면산업에 대해 적극적인 장려와 특혜조치를 베풀었고, 조선왕조의 의류산업에 혁명을 가져왔다. 또 목면산업은 조선왕조 재정의 중추적 기둥이었고, 농가 경제의 중요한 농법보완 경제이며, 유통경제의 교환 수단이었다. 그리고 백성, 천민, 사대부 등 계급을 초월한 평등산업이었다. 목면은 조선왕조 대외무역품 중 왕자의 지위를 점하며 일본에 목면을 수출해 유황, 동, 금, 은을 수입해 돈, 무기, 화약을 제조하여 국방에도 큰 공헌을 한 것이다.

조선왕조는 그에게 수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고려인의 충절을 고수하며 향리에서 후학을 가르치는데 전념했다. 선생이 병환으로 고생하시면 조정에서 예관을 보내 문병했고, 1400년 2월8일 수 70일 일기로 타계하자 국왕의 명으로 예장(禮葬ㆍ국장)을 명했다. 이와 함께 논과 밭의 제전(祭典)을 내리고 묘사를 짓고 묘 지키는 사람 4명을 정하였으며 국가에서 산과 밭 36정보를 내렸다.

태종과, 세종, 성종, 선조, 경종, 영조, 정조, 순조 대왕은 각기 전교문을 내려 얼어죽은 백성에게 옷을 입힌 의피생민지공(衣被生民之功)이 영원히 만세까지 이어지도록 했다. 이들 조선왕들은 관봉과 작위, 호를 내리고 사당을 세우고 밭과 노비를 주는 특별한 은전을 내렸다. 한마디로 삼우당 선생은 헐벗은 백성에게 옷을 입힌 민족의 위대한 위인이자 최고 충신이다. 우리나라 섬유ㆍ패션산업의 오늘이 있기까지 마중물과 견인역을 삼우당 선생이 한 것이다.

이같이 민족 최고의 은인이자 충신이며 섬유ㆍ패션산업의 아버지인 삼우당 선생의 공적을 계승해 섬유ㆍ패션산업의 발전을 이어가기 위해 21년 전 국제섬유신문 창간 1주년 때부터 이 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유사 전문지가 본지가 제정한 거룩한 시상을 흉내 내려고 하지만 삼우당은 모방할 수 없는 명예와 권위의 상징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상의 권위에 맞게 삼우당 엠블런이 새겨진 순금메달이 함께 수여돼 섬유ㆍ패션기업이면 이 상을 수상하는 것이 노벨상을 받는 것처럼 영예로 여기고 있다.

기업인, 공로자에 주어진 영예의 상징

올해도 명실공히 섬유ㆍ패션분야의 삼성전자인 영원무역의 성기학 회장이 ‘수출ㆍ내수종합 大賞’을, 화섬직물 수출로 대성하면서 대구경북섬유패션업계 수장을 맡고 있는 덕우실업 이의열 회장이 특별大賞의 영예를 안았다. 또 우리나라 섬유ㆍ패션산업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국회 전순옥 의원과 16대 의원이며 지금도 원자재를 안정공급하고 있는 김윤식 (주)신동에너콤 회장이 특별공로상을 받았다.

이들 외에도 기업인과 단체장, 패션디자이너, 신기술을 개발한 권위 있는 공학도 출신의 현장 경영자가 창조경영 대상의 부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본지는 헐벗은 백성에게 옷을 입히고 국가와 민족에 위대한 공헌을 한 삼우당 선생의 정신을 계승해 국내 최정상의 섬유ㆍ패션전문지의 긍지와 사명감을 갖고 우리 섬유ㆍ패션업계의 촛불이 되고 동반자가 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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