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하고 즐거워야할 추석이 우울하다 못해 을씨년스럽다. 곳간의 뒤주가 텅 비어 있다보니 자금 성수기 대명절이 호랑이처럼 무서울 수밖에 없다.섬유산업 전반에 어느 한구석 쨍한 곳이 없지만 대구 섬유업계와 화섬업계 거지반이 이런 심정으로 목을 길게 빼들고 있다. 일패도지(一敗塗地)가 실감날 정도로 허망하게 내려 앉고 있는 것이다.대구 합섬직물부터 시작된 빙하기가 화섬원사까지 확대되면서 시난고난 고만고만한 경기가 어느덧 막다른 길에 몰리고 말았다. 최소한 유지돼야할 합섬직물산지의 설비가동이 이제 마지노선까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전성기 혁신직기 가동이 5만대에 달하던 대구가 최소한 산지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혁신직기 1만 5000대는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요즘 돌아가는 직기는 사실상 1만대 미만으로 떨어졌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솔직한 고백이다.대구산지 마지노선이 무너졌다제직공장마다 세워진 직기가 부지기수이고 거미줄과 곰팡이가 가득한 참담한 현상이 오늘 대구가 서있는 현주소다. 일부에서는 세운 직기를 다시 돌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지만 직기점검이 버거웁고, 설상가상으로 이미 떠난 인력을 다시 확충하기도 수월치 않아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대구산지의 급속한 몰락은 득달같이 화섬업계에 파급돼 실을 팔 수 있는 밭이 없어졌다. 레귤러 폴리에스테르원사 생산을 대폭 줄이고 차별화 소재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지만 근본적으로 공급과잉의 벽을 허물지 못하고 있다.화섬메이커들이 줄이고 또 줄였지만 아직도 전체생산량의 50%를 내수로컬용으로 공급하고 직수출용으로 30%를 공급하더라도 나머지 20%물량은 고스란히 남을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유화업계의 일방통행으로 기초원료값이 폭등해 원사값을 연쇄적으로 올리다보니 가격경쟁력도 추락하고 말았다.통상 중국의 화섬원사가격이 한국 로컬 가격보다 10%수준 비싼 것이 상례이지만 잇따른 원사가격인상으로 이제 중국내 원사값이 한국산보다 오히려 싸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한국산 원사수요가 급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DTY가격역시 대만산보다 훨씬 비싸 대만산이 대거 유입되고 있다.상황이 이같이 악화되다 보니 원사메이커들이 웬만하면 세우는 것보다 돌리면서 손해보는 것이 낫다는 지금까지의 생각이 확 바뀌고 말았다. 이제는 거꾸로 설비를 세우는 것이 돌리는 것보다 손해가 작다는 판단아래 감산에 감산을 거듭하고 있다.이 때문에 장기 불황터널에 갇혀 옴짝달싹못하는 합섬직물업계가 때아닌 원사 구득난이 겹치고 있다. 레귤러사는 품귀난이 심해 직물업계가 원사확보에 비상이 걸렸다.물론 원사메이커의 실상을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면 이해가 간다. 효성이 작년한해 폴리에스테르 원사부문에서만 850억원규모의 눈덩이 적자를 기록했다는 소문이 과장된 엄살은 아닌 것 같다.850억원적자 규모중 200억원은 거래선의 부도로 떼인 돈이라는 전언이다. 휴비스도 작년한해 적자규모가 350억원에 달했다는 소문이다. 오죽하면 SK그룹의 뿌리였던 수원공장을 추석이후 폐쇄하고 전주공장으로 통합한다는 소문이 나돌겠는가. 또 연구소도 대전으로 합친다는 계획이다.효성, 휴비스뿐 아니라 화섬원사메이커 대부분이 이같이 눈덩이 적자에 시난고난하면서 혁명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경영전략도 과거와 달리 독해졌다.대한화섬이 가차없이 원사공급을 끊어 가뜩이나 은행압력에 시달리던 동우섬유가 떡쌀을 담그고 말았다. 여신을 대폭 단축하고 7,8월 독사눈을 하면서 위험한 거래선을 감시하느라 정신이 없다.문제는 콩값은 폭등하는데 두부값을 제대로 올릴 수 없는 합섬직물 업계의 현실이 한심하다. 9,10월 두달동안 원사값을 파운드당 10센트씩 올리면 제직원가가 고스란히 400g기준 야드당 16센트정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그러나 원사값이 폭등해 직물값을 야드당 16센트 올리겠다고 통보할 직물업체도 없지만, 통보한다고 받아줄 바이어는 더더욱 없는 것이 현재의 시황이다.이른바 리딩그룹인 몇몇 업체들이 야드당 5센트~8센트 올리는데도 헉헉거리고 있는데 논브랜드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 결국 급한김에 제값 못받고 퍼내는 기업은 얼은발에 오줌누기식의 임시방편으로 연명하다 종착역은 부도밖에 없다.이같은 악순환이 직물업계의 현상이고 화섬메이커의 실상이다. 국내 화섬산업이 총체적 위기에 몰려 사실상 거덜나고 있는 것이다.여기서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것이 업계의 자구노력과 더불어 정부의 과감한 지원책이다. 우선 누구탓 할 것 없이 대구직물업계부터 변해야 한다.고급화 차별화가 지상명제이지만 방법의 차이를 정확히 꿰뚫어야 한다. 하나의 예증으로 인삼은 5년근이 정상제품이고 홍삼은 8년근 인삼이라야 된다. 홍삼값은 인삼값의 몇배 이지만 문제는 5년근 인삼이 8년이 되기까지 성장과정에서 무수히 썩고만다.섬유업계도 봉기할 수 있다무작정 값비싼 홍삼만 추구하다는 썩어 문드러진 인삼으로 손에 쥘게 별로 없다. 대구직물 업계도 개발비 많이 들고 시장이 협소한 고급화만 고집하기보다 시장에서 먹히는 주류품목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거기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화섬메이커들도 기본적으로 직물업계를 소중한 밭으로 알고 가꾸면서 공조하는 노력이 강화돼야 한다. 원료값 인상을 한꺼번에 벌충할려는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 멀리 보면서 일본 화섬메이커처럼 신소재 개발에 총력을 경주해야한다. 소재개발은 누가뭐래도 원사메이커 몫이다.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과 같이 어려울 때 정부의 역할이다. 우선 유화업계의 독선과 횡포를 정부가 나서서 조정해야 한다. '울어야 젖준다'고 며칠전 중소 플라스틱업계가 유화업계의 횡포를 성토하며 데모를 벌이려하자 산자부장관이 양업계를 불러 진화했다. 화섬업계가 대기업이라서 데모가 어렵다면 대구직물업계가 봉기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원사값 폭등의 주범을 성토하는데 플라스틱업계와 직물업계를 차별대우한다면 대구 직물업계도 참는데 한계가 있다.여기에 세계에서 유일한 황금시장인 러시아에 합섬직물을 대량 수출하기 위해 수출대전을 섬유나 다른 전략물자로 들여올 수 있는 구상무역(求償貿易)도 정부차원에서 적극 검토해야된다. 우선 모스크바에 상사기능을 할 수 있는 대규모 상설전시장과 창고를 확보하기 위해 소요예산을 과감히 지원해야 한다. 토사곽란에 머큐롬 바르는 정책으로는 게도 구덕도 다 놓친다. <本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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