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태민안(國泰民安)을 잔뜩 기대한 청마(靑馬)의 해 시작부터 싹수가 혼란스럽다. 넋 빠진 카드 3사의 구멍 난 보안에 온 국민의 정보가 털렸다. 개인정보를 도둑맞아 국민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경제 부총리가 염장을 질러 여론의 융단폭격을 맞았다. 정치인이건 정부 관료건 세치 혀가 문제다.
설상가상 엄동설한에 조루인플루엔자(AI)까지 창궐해 공포와 불안이 온 나라를 덮치고 있다. 가창 오리의 동선을 막을 수 없지만 새들의 무서운 역병이 사람에게 침투할까봐 오금이 저린다.
철새들에 의한 AI야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지만 정보유출은 엄연한 인재(人災)다. 아직도 우리 사회 도처에 나사가 풀린 미숙아들이 많다는 증거다.

동남아 임금폭탄 비상구 잠겼다.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한 국민들에게 심리적 불안을 가중시킨 것은 경제다. 한국경제의 양대 축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영업이익이 후진하고 말았다. 아직 미래를 속단할 수 없으나 삼성전자와 현대차에 대한 지구촌 곳곳의 견제는 상상을 초월한다.

삼성과 현대차가 우리 경제를 견인하지 못하면 한국경제는 일패도지(一敗塗地) 위기에 몰리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사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 총생산(GDP)은 2.8%에 그쳤다. 아시아 주요국 중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수출이 2년 연속 4%의 증가세를 유지하지 않았다면 우리 경제는 고꾸라질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낙관하고 있는 올해 경제성장률 3.9% 달성이 말처럼 쉬울 것 같지 않다. 돌아가는 통박이 새해 초반부터 여기저기 어깃장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본질문제로 돌아가 국내 섬유의류업계가 무더기 탈출한 동남아의 저임금 메리트가 사라져 진출 기업마다 비상이 걸렸다.
고임금과 인력난을 못 이겨 난파선에 쥐 빠져 나가듯 수천개 업체가 진출했지만, 노다지의 꿈은 한계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중국은 이미 섬유 봉제기업으로서 인건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한국 진출 기업뿐 아니라 중국 기업들도 자국 생산을 포기하고 동남아나 방글라데시 등지로 빠져나가고 있다.
호치민과 하노이 등 베트남의 주요 도시 최저임금이 올해 270만동(13만6000원)으로 올라 작년의 235만동 보다 15%나 뛰었다. 베트남도 호치민과 하노의 인근에는 벌써 사람이 없어 중부지역 오지에서 사람을 모은 지 오래다.

인도네시아 카라완 지역에도 역시 새해 초부터 최저 임금이 22%나 뛰었다. 최근 2년간 자카르타의 최저 임금이 1.6배나 치솟은데 대한 연쇄반응이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지역도 2월부터 최저 임금이 100달러로 뛰었다. 여기에 각종 수당을 합치면 최저 임금의 두 배에 달한 것으로 현지 봉제업체에서 알려왔다. 설상가상으로 걸핏하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여 공장가동에 극심한 피해를 주고 있다.

뒤늦게 각광받고 있는 미얀마 역시 인근 국가의 가파른 임금인상에 편승해 임금이 수직상승하고 있다. 의류봉제 수출 대국인 방글라데시에도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데모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임금 인상 투쟁을 벌이고 있는 방글라데시 데모대에 경찰이 유혈진압을 하는 과정에서 진출 기업은 공장 가동에 지장을 받는 혹독한 고통을 겪고 있다.

해외에 수천, 수만명을 고용하고 있는 우리의 의류 수출벤더들이 동남아의 인금 인상 쓰나미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한국에 비해서는 아직도 임금이 크게 낮고 인력 조달이 쉽지만 해가 갈수록 공장 운영이 어려워지고 있다. 봉제를 비롯 동남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 8200개사가 이 같은 임금 폭탄으로 비상이 걸렸다.

붕괴된 국내 의류봉제 산업을 일으킬 대안이 없고 동남아 탈출지역은 몇 달이 멀다하고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제3의 탈출구가 발등의 불인데도 갈 곳이 없다.
그래서 다시 재조명되고 있는 곳이 개성공단이다. 아직은 미국이나 일본 수출이 막혀 돌파구가 못 되지만 내수용으로는 개성공단 만큼 유리한 지역이 없다.

장기적으로는 개성공단 제품이 역외가공 인정이 가시화되고 있고 그런 필요충족 여건을 만들지 않으면 북한 경제는 고꾸라질 수밖에 없어 미래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개성공단의 월 기본임금은 70달러 수준이다. 야근, 특근을 합쳐 월 130달러 정도다.

우리말이 통하고 양질의 노동력에 전직이 안 되는 개성공단이야 말로 지구촌 최고의 명품 소싱처다. 내수용은 ‘메이드 인 코리아’로 표기되고 물류비가 싼데다 내국인 거래라서 관세도 없다.
지난해 4월 무식하면 용감하듯 덜컥 폐쇄조치를 단행했던 북한 측도 많이 아팠다. 우리 입주기업들은 반 죽게 됐지만 북한 인민은 기아에 시달려 아주 죽을 뻔 했다.

북한이 무모하게 폐쇄시켜 놓고 “에비”하며 화들짝 놀란 것은 개성공단이 북한 경제와 인민들을 위한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북한 정권에서 무모한 장난질을 하다 스스로 나자빠졌다.
물론 남측 입주기업 121개 업체와 4000여 원부자재 협력업체들의 고초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5개월여 만인 지난해 9월 다시 정상가동에 들어간 이후 요즘 공장마다 풀가동하고 있다.
전제의 60%이상이 섬유봉제기업으로 현재 모든 기업들이 오더가 넘쳐 표정관리하고 있다. S/S시즌은 마감됐고, F/W용 오더가 밀려 캐퍼 확보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때마침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이다”는 화두가 국내외에서 많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보수언론까지 ‘통일은 미래다’는 긍정적인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통일이 되면 GDP규모 47조달러의 세계 최대 경제공동체를 전망했다.

개성공단 섬유전용단지 서둘 때다.

‘통일이 대박’인 것은 필연적인 논리이지만 그 과정은 한 계단 한 계단부터 실현돼야 한다. 개성공단부터 더욱 확대해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인력과 토지가 결합돼야 한다.
당연히 개성공단이 확대돼야 하고 가장 먼저 섬유전용공단부터 조성돼야 한다. 현재의 국내 인력 사정으로는 향후 5~6년 버티기가 힘든 것이 섬유산업이다.

아쉽고 답답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이다’는 대전제에도 불구. 개성공단을 확대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안 보인다. 개성공단이 북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기업의 비상구를 위해 화급을 다투는 일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 한 것 같다. 상호주의 원칙을 포기하지 않은 한도에서 통일부나 관계당국이 개성공단 확대와 활성화를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자세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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