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晩秋)에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벌써 알싸하다. 때마침 불타는 가을에 섬유인의 축제인 올해 섬유의날 기념 행사도 유난히 비까번쩍했다.전국에서 모인 1000여명의 섬유관련 인사들이 이날만은 팍팍한 기업일상을 뒤로하고 격동의 세월에도 고려심줄처럼 질긴 섬유산업의 꿈과 희망을 다짐했다.훈·포장 수상자가 너무 적어 아쉽기는 했지만 산자부장관과 섬산련회장상, 그리고 원로기업인과 섬유산업 발전에 공이 큰 유공자에게 감사장을 대거 전달해 모양 좋게 격식도 갖췄다. 에너지 절약을 위한 내복사랑 패션쇼도 시의 적절하게 기획됐고, 정부와 단체, 학계, 시민단체 대표에 이르기까지 참석자의 면면도 어느 때보다 다양했다.특히 지난 87년 11월11일 섬유수출 100억불 달성에 따른 섬유의 날 제정당시 상공부 수출과장이었던 이희범장관의 축사도 감명 깊었다. "쿼터가 폐지되면 더욱 치열해질 국제경쟁에서 승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이 장관의 뼈있는 충고에 무심 이상의 깊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리고 최근 노무현 대통령을 수행해 인도와 베트남 방문당시 현지 대규모 봉제공장을 둘러본 소감도 눈길을 끌었다. "비록 최종제품 생산은 인도나 베트남이지만 원부자재와 금융은 모두 한국산이거나 한국의 은행이었다"고 자신 있게 낙관론을 피력했다. 다시한번 섬유인의 가슴에 희망과 용기를 안겨준 찬사였다. 참석자 모두가 친 섬유장관인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로 화답하는 등 이 순간만은 모처럼 섬유인과 정부가 하나가 되는 밝은 분위기였다.일각에서는 이 난세에 성대한 섬유의날 기념식이 허장성세 빛 좋은 개살구라는 비판적인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섬유산업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섬유인의 화합과 단결을 위한 상징성이란 점에서도 큰 의미를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섬유의날 행사나 섬유주간 행사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알차고 보람있는 행사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섬유의날 모르는 대구산지한가지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전 섬유인의 축제의 장이자 섬유산업 재도약을 위한 기폭제가 돼야할 섬유의날 행사가 서울 행사로 끝냈다는 점이다. 지난 11일 섬유센터에서 열린 기념식을 정점으로 한주일 내내 다양한 섬유주간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정작 산지인 대구는 침묵했다.해마다 열렸던 달구벌 축제가 사라진 이후 아무런 기념행사도 없이 쓸쓸하게 보냈다. 섬유의날이 있는 것인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조차 섬유산지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물론 대구산지가 봄에는 PID와 함께 10월에는 직물과 패션의 만남을 비롯한 관련 행사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섬유산업 붐을 조성하고 재도약을 다짐하는 다양한 행사라면 서울과 대구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내년부터는 대구가 가을 행사만은 11월 섬유주간에 맞춰 같이 치르는 방향으로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서울의 섬유산업연합회와 대구의 섬유산업협회가 소 닭 보듯 하지 말고 긴밀한 협조와 공조를 통해 이를 이끌어 내야한다.얘기는 다르지만 최근들어 더욱 격렬해진 대구의 성난 민심이 걱정이다. 공황에 가까운 수출경기 불황에 유화폭리에 따른 원사값 폭등으로 실신상태에 빠져있기 때문이다.오죽하면 대구 견직물조합이 주축이되 유화폭리와 은행의 목조르기가 개선되지 않으며 전면조업중단과 사업자 등록증 반납, 고속도로 점거 농성이란 극약처방을 준비하고 이에따른 행동계획을 최종 통보했겠는가. 또 사태의 심각성을 전해들은 조해녕 대구시장이 12일 낮 직접 견직물조합에 나와 이사진 및 비상대책위원들과 원사값 폭등과 관련한 대비책 마련을 위한 간담회까지 주재했다.실질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 몰라도 악에 받친 대구산지의 심각한 현상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여 지방정부차원에서 중앙정부는 물론 금융기관과의 대책을 협의하고 대안마련에 협조를 요청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대구산지가 이같이 절박하게 돌아가는 것은 그만큼 위기감이 고조돼 이미 기업경영의 한계수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중언부언하지만 전체생산의 80%이상을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대구 합섬직물업계로서는 3년 이상 거듭된 장기불황에 원사값이 올들어 최고 70% 가까이 올라 수출활동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지난 9월부터 10월, 11월 3개월 연속 파운드당 10센트씩 원사값이 오르다보니 바이어에게 매월 원단값을 올리라고 통보해야할 판이다. 그러나 어느 속좋은 바이어가 3개월에 한번도 아니고 연속 세번씩 인상요구를 들어주겠는가. 결국 직물제조원가에서 원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68.3%까지 올라가자 상당부문을 자체적으로 껴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이 때문에 직기를 돌리는 것보다 세우는 것이 이득이 돼버렸고, 그래서 혁신직기 가동 대수가 최고 5만대에서 현재 마지노선인 1만2000대 규모로 추락하고 말았다.조소로 응대할일이 아니다여기서 더욱 걱정스런 것은 만약 대구산지의 혁신직기가 1만대이하로 내려갈 경우 그걸로 끝장이라는 사실이다. 바로 직기 가동대수가 1만대 밑으로 떨어지면 해외 바이어들이 대구를 직물 산지로 인정하지 않고 철저히 외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한국에 가봐야 살 물건이 없다고 판단하고 중국이나 다른 국가로 거래선을 전환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현재 추세가 조금만 더 지속되면 대구의 혁신직기가 허망하게도 1만대 미만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매우 농후해지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분석이다. 그나마 아직까지는 싼 물건은 중국에서 사고 고급제품은 한국으로 오는 이유가 산지기능의 마지노선이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무슨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더 이상 혁신직기 가동대수가 줄어들지 않게 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대로 가면 게도 구덕도 다 놓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정부나 화섬·유화업계가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대구 합섬직물업계가 길길이 뛴 이유가 여기에 있다.이같은 실상을 정부가 어영부영 건성으로 들어서는 안된다. 대구가 봉기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비상처방을 내려야 한다. 업계가 다 죽게 됐다고 아우성을 쳐도 정부나 은행, 유화업계가 언제까지 조소로 응대할지 지켜보겠다. <本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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