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살기가 팍팍한 갑신년의 마지막 달력을 찢는 기분이 홀가분하다. 해마다 이맘때면 이루지 못한 꿈이 아쉽고 억울하지만 올해는 시원섭섭함을 넘어 마치 앓던 이 빠진 기분이다.사시사철 이어진 모진 불황에 파김치가 된 섬유·패션업계로서는 이 한해가 그만큼 지긋지긋한 고통이었다. 업종에 따라 체감기온이 다소 차이는 있지만 수출과 내수, 수도권과 지방 가릴 것 없이 불황의 한파가 그만큼 혹독했던 것이다. 옛부터 광에서 인심 난다고 배부르고 등 따뜻해야 국태민안인데 정치권부터 밤낮없이 개처럼 싸우니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정부가 시도때도 없이 강조하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커녕 '기업할 수 있는 나라'마저 안되는 것이 현실이다.초장부터 분배니 뭐니 하면서 성장에 발목을 잡는 허튼 소리로 싹수가 노랗다 했더니 이제는 아예 꿩도 매도 다 놓친 꼴이 되고 말았다. 기업은 줄초상이고 실질 실업률이 15%에 달하면서 이른바 이태백 실업자가 90만명에 달하는 충격적인 수치에 국민의 가슴은 화석으로 변해 버렸다.섬유·봉제 새로운 르네상스중국은 올해 9.8%의 고도성장을 하고 아시아 각국이 호황의 콧노래를 부르는 사이 우리만 나홀로 불황에 울고 있으니 억장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갑신년으로 끝날 줄 알았던 혹독한 시련은 내년에도 거듭된다는 분석이고 보면 죽지 않고 숨만 쉬는 것도 천행으로 여겨야 할 것 같다.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망가진 우리 섬유산업에도 희망의 불빛이 점차 가시화 되고 있다. 때마침 냄비공장 가동을 계기로 본격 부각된 개성공단이 바로 우리 섬유산업의 희망봉인 것이다.실제 시범단지 첫 섬유공장인 신원의 개성공단 공장이 23일부터 제품 생산에 착수한다. 아직 마무리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풀가동까지는 안되지만 부분가동을 거쳐 내년 1월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신원공장이 가동되면서 섬유·봉제업계의 눈과 귀가 개성공단에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만큼 개성공단에 대한 향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사실 아직은 속단하기 어렵지만 개성공단은 우리 굴뚝산업이 다시한번 재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의 땅이다. 그중에서도 섬유·봉제산업은 지구촌에서 이만큼 확실한 투자적지가 없을 정도로 땅짚고 헤엄치기로 볼 수 있다.우선 양질의 노동력에 월 임금 57.5달러는 세계 어느 곳보다 유리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도 고정임금 월 50달러에 사회보장비 15%를 합친 금액이다. 중국이나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은 단순 임금은 비슷하지만 사실상 사회보장기금이 임금의 배에 달한 점을 감안하면 이곳보다 더 좋은곳이 없을 정도이다.내국 거래이기 때문에 관세도 없다. 사실상 경기도 공장이어서 물류비가 저렴하다. 이같은 조건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다만 아직은 건설자재 반입 절차가 까다롭고 그동안 대북사업에 쏟아 부은 투자비를 왕창 벌충하려는 현대 아산측이 건축비를 평당 150만원에 책정해 큰 부담이다. 땅값도 평당 14만9000원에 달해 공짜나 다름없는 중국과 비교할 때 높은 것만은 사실이다.또 변덕이 심한 북한 정권의 도발로 인한 위험부담이 크고 여기에 아직은 원산지문제가 걸림돌이돼 대미수출이 어려운 악재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같은 악재가 오히려 섬유·봉제업종은 호재가 될 수 있다.우선 북한이 언제까지 부황든 인민들의 굶주림을 외면하고 철조망을 칠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북한 역시 스스로 개방이 대세임을 인정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이같은 대전제에서 전략물자 규제에 묶여 타 업종이 망설이고 있을 때 섬유·봉제가 단지를 선점하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양질의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개성공단 섬유 전용단지는 적어도 100만평 규모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우븐·니트 불문하고 미싱 관련 설비만 가지고 가동할 수 있는 붕제공장 200~300개 규모가 입주할 수 있도록 키워야 된다.이미 정부도 자금력이 약한 업체를 위해 아파트형 공장을 건립해 분양하는 방안까지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봉제는 제직, 편직, 염색, 방적 등 다른 장치산업에 비해 투자비가 적게 든다는 점이 우선 위험부담에서 가벼워질 수 있다. 현재도 정부에서 건설비 대부분을 융자해주는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건물이나 설비를 후취 담보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또 설사 북한이 태도를 돌변해 돌발사태가 발생한다해도 마케팅 클레임이 아닌 다른 정치적인 이유일 경우 보험으로 위험부담을 덜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될 전망이다.또 무엇보다 시장이 문제이지만 순수 내수용으로만 현재 티셔츠 기준 연간 2억~3억 피스를 중국으로부터 반입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200~300개 규모 중견 공장의 가동 물량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봉제공장이 제대로 가동되면 관세 없고 물류비 싸며 인건비 싸고 품질 좋은 장점으로 중국에서 반입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또 당장은 내수용 수요에 국한되겠지만 일본 수출 또한 중국보다 개성공단이 훨씬 유리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여기에 한·싱가포르간 FTA가 타결된 점을 감안하면 개성공단 의류제품을 싱가포르로 보내 동남아에 판매할 수도 있어 시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한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섬산연 추진본부 서둘러야이같이 개성공단에 200여개 봉제공장이 가동되면 줄잡아 10억달러 규모의 의류매출은 식은죽 먹기일 수 있다. 이때 국산 면사 수요만 2억달러 규모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국내 면방업체의 전체 생산캐퍼 30%에 달하는 물량이다. 경기도에 산재한 염색가공 공장들도 덩달아 가동물량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 대구직물이나 염색가공, 그리고 니트원단생산업체들도 연쇄반응을 일으켜 새로운 섬유산업 르네상스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이같은 개성공단 섬유단지 황금어장을 겨냥해 섬유산업연합회가 중심이돼 하루빨리 대규모 섬유전용공단 조성을 서둘러야 한다. 필요하면 별도 추진본부를 발족시켜 이 사업을 전담시키는 적극적인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일부에서는 개성공단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그는 것은 아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자로 재고 저울로 달고 망설이다가는 게도 구덕도 다 놓친다. 다른 업종이 눈독들이지 않을 때 선수를 치는 용기가 지금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 섬유산업의 마지막 희망이자 최후의 기회의 땅이 개성공단 섬유단지임을 명심해야 한다. <本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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