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ㆍ편직, 염색, 사가공 돈 있어도 투자 안한다”
재력 불구 신규 투자 기피. 안되면 회사 정리 체념
면방ㆍ화섬 신규 투자 활성화. 미들스트림 의욕 상실



세계 선두 그룹의 글로벌 의류 수출 밴더인 C社의 K사장은 최근 본지 발행인과 사석에서 나눈 대화중 무심 이상의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건넸다. 글로벌 의류 수출 밴더들은 치열한 국제 경쟁력을 극복하기 위해 25시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데 “국내 협력업체인 미들 스트림 업계는 투자 의욕이 완전 상실된 것 같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미 공동화된 봉제는 차치하고라도 편직, 제직, 염색가공 업체들과 동반 진출하기 위해 많은 편의와 거래를 보장해주고 있는데도 대다수 중소기업 사장들은 신규 투자 얘기만 나오면 손사래를 친다”고 털어놨다.

그의 이어진 얘기는 섬유 기업인들의 체념적인 사고양태가 어느 정도 심각한지 그 실상을 실증적으로 제기했다.

“미들ㆍ다운 스트림 기업인들은 대부분 회사 내부는 물론 개인적으로 상당한 재력을 갖추고 있다”, “문제는 기업인이 확보하고 있는 개인 재력은 곳간에 감추어 놓고 겨우 돌아가는 회사 자금을 유지하는 날까지 버티고서 불리하면 만세 부르고 가진 돈으로 편하게 살아가겠다는 사고양태가 팽배한 것 같다”고 예리하게 질타했다.
이 같은 미들 스트림 기업인들의 체념적인 사고는 신규 투자가 중단되고 오래된 노후 설비를 돌리며 근근이 지탱하다 안 되면 정리하겠다는 자포자기 풍토가 만연되고 있는 것이 솔직한 우리 섬유산업 기업인들의 현 주소다.

지구촌에 울타리가 사라진 글로벌 경쟁시대에 한 푼이라도 더 싼 곳을 찾아 구석구석 누비는 상황에서 우리 섬유 미틀 스트림의 이 같은 체념적인 투자 의욕 상실은 밴더들의 수많은 거래선을 해외 기업에 뺏길 수밖에 없다.

국내 편직, 제직, 염색가공 등 미들 다운 스트림들이 해외 진출이 싫다면 국내에서라도 설비 투자를 강화해 차별화, 특화전략을 강화해야 하지만, 국내도 해외도 투자를 기피하는 것은 자포자기를 의미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난 5년간 국내 섬유 스트림 중 설비 투자가 가장 활발한 업종은 아이러니 하게도 보수성이 가장 강한 면방산업과 일부 화섬산업이다.

이중 면방 업계는 2008년부터 금년 7월까지 5년간 해외 투자를 제외하고 순수 국내 투자에만 19만 6000추를 신ㆍ증설용으로 투자했다.

면방산업은 최신 첨단 링정방기 투자비가 많이 올라 1만추 당 100억 원 규모가 투자된다. 따라서 국내 면방 업계의 투자 규모가 2000억 원 규모에 달해 활발한 설비 투자를 강화했다. 경방의 베트남 공장까지 포함하면 투자 규모는 훨씬 늘어난다.

구 설비가 많은 면방 업계가 이 같이 섬유 스트림 중 가장 많은 설비 투자를 강화하는 것은 극히 상식적인 논리인 “세계적인 첨단 설비를 갖추지 못하면 경쟁할 수 없는 시대”임을 뒤늦게나마 절실히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국내 섬유산업의 버팀목인 화섬 산업도 일부 메이커의 투자 정체와는 달리 예상외의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국내 화섬 업계는 2008년 3000억 원을 투자한데 이어 2009년 1500억, 2010년 3120억, 2011년 6000억 원 규모를 투자했다. (화섬협회조사)
탄소섬유와 아라미드 섬유, 고강도 PE섬유 등에 대한 투자가 활발했다.

다만 폴리에스테르와 나일론 등 기본 업종의 투자는 효성과 대한화섬 등에 국한됐을 뿐이다. 대부분 폴리에스테르와 나일론은 신규 투자라기보다 유지 보수에 주안점을 뒀다.

반면, 2000년대 후반 들어 잃어버린 십수년을 뒤로하고 신규 투자가 다시 활기를 띠던 대구ㆍ경북과 경기북부 등지의 편직 및 제직 설비 투자는 최근 들어 확 꺾이기 시작했다.

워터젯트나 에어젯트, 레피어를 중심으로 혁신직기 투자는 최근 2~3년 사이 거의 동결 상태다. 환편을 중심으로 한 니트직물 투자도 정지 상태고 경편의 투자 열기는 환편보다 훨씬 빨리 중단했다. 물론 덕우실업과 현대화섬을 비롯한 일부 기업은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투자 열기가 식은 것이 사실이다.

니트와 우븐 불문하고 직물류는 연사물의 강세에 힘입어 지난 몇년간 연사기 투자가 활발했지만 중국산 연사물의 대량 반입으로 이 분야도 완전 끊긴 상태다.

염색ㆍ가공업계도 일부 니트직물 염색ㆍ가공과 프린트 전문 업체의 신규 투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유지보수 수준의 소극적 투자에 머물고 있다.

화섬사의 차별화 관건인 가연부문도 제원화섬 등 극소수를 제외하면 몇십년 된 구 설비에 의존하고 있다.

결국 섬유산업의 허리라 할 수 있는 미들 스트림의 설비 투자 열기가 식었다는 것은 섬유산업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얘기다.
기업에 가장 절실한 “1순위가 사람이고 2순위가 돈”인 상황에서 장래가 안 보인다는 증거다.

이미 봉제산업은 공동화된 지 오래고 직물산업의 미래도 갈수록 불투명해지면서 기업인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FTA가 도깨비 방망이가 될 걸로 기대했지만 한ㆍEU, 한ㆍ미 FTA는 ‘빛 좋은 개살구’였고 직물업계 불황 돌파의 비상구로 여겼던 한ㆍ터키 FTA도 아직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더욱 겁나는 것은 한ㆍ중 FTA 협상이 급물살을 타면서 업 스트림 쪽은 이미 대세가 기울었고, 다운 스트림도 멀리 보아 중국에게 이길 재간이 없다는 결론이 나고 있다.

그나마 한ㆍ중 FTA의 수혜 업종으로 지목되고 있는 직물산업은 기대를 걸지만 이것도 길게 보아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결국 돈보다 더 급한 사람 문제에 시달리면서 국내외 환경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어 섬유 기업인들의 투자 의욕이 상실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 섬유산업에 절실한 발등의 불은 체념적인 냉소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투자환경 조성이다.
섬유산업에 투자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정부가 서둘러 제시해야 한다. 당장 어려운 사람 문제에 대한 대안이 나와야 한다. 외국인근로자 도입 규모와 배정도 획기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경쟁력 있는 설비 투자를 희망하는 기업에게는 후취 담보를 전제로 하더라도 과감하게 저리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도 경쟁력 있는 설비를 하고 있어도 은행은 담보가 부족하다며 융자를 거절하고 있다.

도레이 첨단 산업의 유치에는 3000억 원 규모의 땅을 무상으로 제공했듯이 국내 기업의 설비 투자에는 적어도 제한 없이 장기 저리 자금의 혜택을 부여해야 한다.

섬유산업의 마지막 르네상스를 기대하고 있는 개성공단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섬유산업의 투자 유인책이 지금 이 순간 발등의 불인 것이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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