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판의 훈수는 뺨을 맞고서도 한다. 그러나 승패의 결과에 대해 훈수꾼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개성공단 문제를 놓고 훈수꾼들이 날뛴다. ‘퍼주기’, ‘외화벌이’, ‘달러박스’의 초치는 허튼소리가 요란하다. “개성공단을 문 닫으려는 순간 북이 손들었다”는 논조로 다급한 북한을 자극했다. “박근혜 정부의 일관성 있는 대북정책이 적중했다”는 말은 수긍하지만 “차제에 북을 무릎 꿇게 하자”는 헛소리까지 난무한다.

묵묵부답하던 북한의 전격 제안에 우리 정부가 화답해 14일 7차 개성공단 협상이 재개된데 따른 각계각층의 훈수가 요란하다. 생각 같아서는 개성공단을 문 닫게 한 북한이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하지만 협상은 상대가 있는 법이다.

본디 가난할수록 자존심이 강한 법이다. 더구나 자존심을 통치수단으로 삼는 북한입장에서 이번 7차 회담 제안 내용은 사실상 백기를 든 것이나 다름없다.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기세등등하게 통행금지 시키고 근로자 철수 시킬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갑자기 나긋나긋 부드러운 태도는 북측 사정이 그만큼 절박해서인지 모른다. 7차 회담이 내놓은 제안을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면 북측의 파격성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 6차 회담에서 우리 측이 일관되게 주장한 “북측은 어떠한 경우라도 공단 가동을 제재하는 일방적 조치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문구를 제시해왔다. 책임소재의 주체를 북측으로 명시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대해 북측은 “남측이 공업지구를 겨냥한 불순한 정치적 언론과 군사적 위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담보하며 북측은 이상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 한 출입차단, 종업원 철수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담보한다”는 문구를 고수해왔다. 남측의 언론보도와 군사훈련에 대해 또 다시 유사한 대응을 할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다.

그토록 완강하던 북한이 지난 7일 발표한 조평통담화에서 문제가 된 문구를 뺀 채. “북과 남은 공업지구 중단상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며 어떤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공업지구의 정상 운영을 보장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고집불통 북한의 이 같은 후퇴(?)는 지금까지의 관례로 봐 매우 이례적이며, 그만큼 개성공단 폐쇄에 대한 초조함과 강한 집념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이 같은 전향적인 자세를 인정하고 보험금 지급 직전에 7차 회담 개최로 화답했다. 이 같은 희망적인 분위기에 따라 지난 4개월여 단 한 푼의 매출이 없어 고사 직전이던 입주 기업들이 한 푼이 급한 상황에서 보험금 수령을 유보하고 14일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실제 109개 기업들이 신청한 2809억 원의 경협보험금을 수령한 업체는 2개사 55억 원에 불과했다. 그만큼 피 말리는 고통 속에 지낸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이번 7차 회담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7차 회담이 타결될 것이라는 낙관론은 아직 빠르다. 실무협상에 들어가면 또 다시 삐걱거리는 난제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우리 정부의 방침은 “개성공단 가동중단을 단행한 북측의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는 대전제를 담고 있다. 이 바탕 위에서 “확고부동한 재발 방치책을 보장 받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더욱 재발방지를 보장하는 책임 있는 당국자를 누구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실랑이가 예상된다. 북측은 개성공단 특구 책임자인 총국장 명의의 사인을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우리 정부는 적어도 북한의 대남 총책임자인 김양건 비서(북한에서는 부 총리급 실세로 알려짐)의 사인을 주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부가 이번에는 “같은 돌에 두 번 넘어지지 않겠다”는 확고한 입장을 고수해 보장책을 주장할 것으로 본다. 당연히 그렇게 돼야 국민이 찬동하고 개성공단이 오래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 정부도 이번 7차 협상이 마지막이라는 각오 아래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남북이 더 이상 소모전을 벌린다면 이미 피골이 상접한 채 시난고난하고 있는 입주 기업들은 제풀에 죽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측 입장뿐 아니다. 북측도 5만4000명의 실업자와 30만 개성공단의 호구를 생략할 때 더 이상 늦출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설마 하겠지만 만약 협상이 결렬돼 공단 폐쇄와 함께 득달같이 단행될 전력 차단이 이루어지면 개성시민은 수돗물도 먹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

급하기는 덥고 배고픈 북한이 더하겠지만 개성공단이 폐쇄 됐을 때 우리의 피해도 간단치가 않다. 129개 입주기업은 물론 4000여 협력업체에서 2만 여명의 종사자가 100% 원부자재를 공급하고 있는 상황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개성공단이 문 닫았을 때 6조 원 규모의 피해액도 천문학적인 규모이지만 우리 산업현장의 미래도 암담해 질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열이 빛이라면 실업자가 아무리 많아도 산업 현장에 사람이 오지 않는 고학력 그림자가 절망적인 상황이다.
국내 근로자보다 임금 수준이 더 높은 외국인 근로자나 50대 근로자로 겨우 생산 현장을 유지하고 있는 산업 현장은 5년 내 대위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도 섬유를 비롯한 경공업 산업 현장에는 사람문제가 돈보다 더 급한 상황이다.

인력난 문제의 해결책은 개성공단 활성화와 북한 인력 활용 방안이 가장 절실한 대안이다. 그 시금석이 개성공단인 것이다.

개성공단 과거를 간직하며 미래를 보자

개성공단은 단순한 129개 입주기업 문제로 보는 근시안적인 사고가 문제다. 중국이 신의주 인근 황금평 일대를 홍콩을 뛰어넘어 싱가포르 수준으로 개발하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중국이 동북4성으로 간주하는 북한을 위성국가로 만드는 위도가 뚜렷한 판에 우리가 개성공단을 어떻게 유지하고 확대해야 하는가 하는 명제는 더욱 뚜렷하다. 우리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토지와 인력을 접목한 황금조합의 개성공단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같은 대전제에서 며칠 전 중앙일보에 게재된 ‘이유극강(以柔克剛)의 대북정책’이란 배명복 논설위원의 칼럼이 눈길을 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핵심라인에 별들이 워낙 많아서인지 6차 개성공단 협상은 군사 작전하듯 한 것 같다”는 지적이었다.

과거를 용서하자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담고 미래를 머리에 담아 대북정책을 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것이 결국 강한 것을 이긴다는 유연성과 융통성을 7차 협상에 임한 정부 대표가 명심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남북관계 원칙도 중요하지만 앞을 보고 가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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