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나 국가를 불문하고 번 돈보다 쓰는 돈이 많으면 곳간이 거덜 나는 것은 불문가지다. 경기침체로 올 상반기 세금 징수실적이 목표의 40%에 불과해 국세청이 비상이 걸렸다.

복지와 지방 균형 발전으로 써야할 돈이 수백조인데 경기가 나빠 재원인 세금이 안 걷혀 정부가 안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표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 정치권은 대선 공약대로 마구 쓰고 보자는 식이다.

원래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업인의 피눈물 나는 고충을 모른다. 피땀 흘려 돈 번 기억이 없으니 “내 돈도 내 돈, 남의 돈도 내 돈”식이다.

글로벌 경지침체에 대한민국이 이만큼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근본 원동력은 잘나가는 대기업 덕분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법인세만 3조3870억원을 냈다. 현대 자동차는 1조 40억원을 냈다.

9월 7차 회의서 데생작업 끝날 듯

삼성전자는 국내 30대 기업의 법인세 납부액 8조4850억원의 39.9%를 부담했다. 현대자동차는 11.8%를 냈다.
이들 양사가 낸 법인세만 30대기업 납부세액의 51.8%를 냈다. 2011년 기준 전국 46만 614개 법인 가운데 상위 1%가 35조 5800억원을 내 전체 법인이 내는 세금의 86.1%를 냈다.
한마디로 삼성, 현대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일등공신이다. 박근혜 대통령 말대로 업어주어야 할 기업이 삼성, 현대를 비롯한 대기업들이다.

그럼에도 정치권과 강성노조는 세치 혀를 놀릴 때마다 재벌을 못 잡아서 안달이다. 부정과 비리는 당연히 법에 따라 처벌하면 그만일 뿐 경제 민주화니 뭐니하며 이상한 논리로 찍고 발기는 행동은 참으로 염치없는 행동이다.

본질 문제로 돌아가 중언부언하지만 우리 섬유업계가 ‘에비’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 담고 있는 한ㆍ중 FTA가 현실로 다가왔다. 금년 초까지만 해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방심했던 한ㆍ중 FTA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한ㆍ중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이른바 “높은 수준의 한ㆍ중 자유무역협정”은 이미 6차 회의에서 기본원칙에 합의 했고 9월 중국에서 열리는 7차 실무협상에서 민감품목과 초민감품목에 대한 양허율과 기간문제까지 실질 접근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여진다.

솔직히 한ㆍ중 FTA는 9월이면 데생을 끝내놓고 마지막 색칠만 남겨놓은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한ㆍ중 양국이 세계 최대 교역국이자 4위 교역국 간에 자유무역협정은 필연적인 논리이자 현실적인 대안임을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한ㆍ중 관계는 단순한 경제뿐 아니라 정치, 외교, 군사적으로 얽혀있어 자유무역협정을 서두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미 대세가 협정체결 쪽으로 기울였기 때문에 어느 특정 산업이나 단체가 반대한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대세가 체결 쪽으로 기울었다고 하지만 치명타가 우려되는 섬유산업 입장에서는 “어느 놈 몽둥이에 맞아 죽을지는 알고 죽어야할 절박한 상황”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의류봉제산업은 국내 산업이 공동화된 채 동ㆍ남대문 시장에서 거래되는 의류제품 80%이상을 중국산이 장악했다. 의류봉제산업 붕괴에서 비롯된 연관 스트림이 연쇄피해를 입었던 지난날의 경험을 되새겨 보면 앞으로 전개될 상황은 끔찍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ㆍ중 FTA가 체결되면 가장 먼저 떡쌀 담그는 산업은 우리 섬유산업의 근간이자 버팀목인 화섬산업이다. 명색이 세계 6위 화섬국인 우리나라의 화섬생산능력은 연산 170만톤 남짓이다. 중국은 4100만톤이 넘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단순한 규모경쟁뿐 아니다. 우리의 화섬생산설비는 대부분 도입한지 20년에서 40년에 달한 구설비다. 중국은 대부분 10년 미만의 최신설비다.

생산성에서 도저히 우리가 따라갈 수 없고 품질 경쟁력도 앞서 있다. 일본 데이진 같은 선진 화섬메이커도 폴리에스테르사를 중국산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중국산으로 인한 산업피해를 호소해 엔티덤핑관세로 방어막을 치고 있지만 이마저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중국산 화섬사가 연간 1만 5000톤씩 들어온다. 기본관세 8%에 덤핑관세 7% 부대비용까지 따지면 20%가까운 관세장벽이 있다.

그럼에도 중국산 화섬사 수입이 급증한 것은 품질 좋고 가격이 싼 경쟁력 때문이다.

경기북부 니트업계는 중국산 화섬사가 사실상 장악했다. 20%외에 더 높은 가격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국산품 애용하는 것이 애국하던 시절은 지났다. 외할머니 떡도 싸고 맛있어야 사먹듯 중국산이 품질 좋고 가격이 싼데 누가 굳이 국산 원사를 사용하는 의리를 지키겠는가?

화섬산업과 함께 득달같이 은사죽음 당하는 것은 국내 가연산업이다. 사가공업체들의 경쟁력은 이미 한계 상황에 와있다. 첨단설비투자가 극소수 업체에 국한된 채 요릿집 막대기 3년 우려먹듯 구설비를 수십년 우려먹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섬유산업이 전반적으로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스트림별로 온도차가 있어 의견일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합섬직물업계와 니트직물업계는 한ㆍ중 FTA가 오히려 중국수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섬유스트림에 절실한 순망치한 정신

물론 유일하게 한ㆍ중 섬유교역에서 흑자를 보이고 있는 품목이 직물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동대문 시장 C동 원단상가의 자연섬유 또는 혼방직물은 80%가 중국산으로 채워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범용품만 중국산이 장악했지만 우리의 강세품목인 치폰까지 중국산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패션업계도 생각이 다르다. 오히려 한ㆍ중 FTA가 우리 패션브랜드의 중국진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 경향이 농후하다.
그러나 의류봉제에 이어 화섬ㆍ면방ㆍ가연산업이 붕괴되면 직물이나 패션산업도 함께 타격을 입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역지사지로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정신으로 접근해야 한다.

설마 설마하며 어영부영 방심하다가는 9월 실무협상에서 큰 줄기가 결정될 것은 예정된 수순이다. 섬유패션업계가 종합적인 대책반을 만들어 심도 있는 대응책을 강구해 정부 협상팀에 강력히 전달해야 한다.

민감품목이나 초민감품목에 섬유를 포함시키고 양허율과 기간도 섬유업계의 의견을 관철시켜야 한다. 일패도지(一敗塗地)가 겁나는 우리 섬유산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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