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108번째로 좁은 국토인 대한민국이 이토록 넓은 줄 몰랐다. 수도권은 연일 물폭탄에 아우성이고 남부지역은 가마솥더위에 사람도 초목도 삶아 늘어지고 있다.

자연의 몽니 속에 연일 경천동지할 대형 소식에 민초들의 가슴은 쿵쾅거린다. 아무리 봐도 민생과는 무관한 것 같은 NLL문제로 온 나라가 내편 네편으로 갈라서고 있다.

남북뿐 아니라 외교는 상대가 있는 고도의 정치 행위임에도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NLL문제로 사생결단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국익보다 국정원보호가 중요하다면 네모난 삼각형논리와 다를 바 없다.

정치권이 민생과 무관한 소모전에 매달리기보다 도탄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경제살리기에 분골쇄신할 때다. 9분기 동안 0%성장에 그치는 팍팍한 실상을 직시하고 아랫목까지 식어가는 경제회복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중국과의 경쟁 계란으로 바위치기

갤럽조사 결과 국민의 70%가 경제가 나쁘다고 반응했다. 실제 체감경기는 99%가 나쁘게 보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나쁘면 득달같이 민심이 이반되는 것인데도 다행히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63%에 달하는 고공행진 자체가 괴이쩍은 일이다. 한ㆍ미, 한ㆍ중 정상회담의 성공과 대북정책의 일관성이 높은 점수를 얻었겠지만 경제가 호전되지 않으면 지지율은 언제든지 급변할 수 있다.

성장이 안되면 박 정부의 국정지표 1호인 일자리 창출도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요즘 언론으로부터 복날 개잡듯 패대기 당하고 있는 경제 부총리가 제구실을 못하면 기수를 빨리 바꿔야 한다.

경제는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회복되는 요술이 아니다. 볼 컨트롤 능력이 떨어진 투수는 빨리 교체해야 하듯 헛발질하는 경제수장이라면 실기하기 전에 교체돼야 한다.

다시 본질문제로 돌아가 한ㆍ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이 찰떡공조를 이루고 있다. 북한의 위협을 머리에 이고 사는 민족의 업보 속에 한ㆍ중관계가 밀착돼 정치, 군사, 외교 전 분야에 큰 힘이 되고 있다.

한ㆍ중 관계의 밀월은 필연적으로 경제협력의 핵심인 자유무역협정(FTA)의 급진전 또한 받아놓은 밥상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에 높은 수준의 양국 FTA협정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초기만 해도 “국가산업에 미치는 해악을 고려해 FTA를 서두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때와는 상황이 바뀌었다. 우선 한ㆍ중 두 정상간 신뢰가 두터워 적극 서두를 것은 불문가지다.

아시아나 항공참사 때 한 방송사의 철없는 진행자가 중국인 2명이 사망한 걸 두고 “사망자가 중국인이어서 다행”이라고 망발한데 대해 박 대통령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대신 사과하는 성의를 다할 정도다. 중국에 대한 기대와 의존도가 역대 정권과는 천앙지차다.

이같은 양국 정상 간의 FTA합의를 계기로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도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윤상직 장관이 밝힌 것처럼 한ㆍ중 FTA는 9월까지 1단계 협상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강조할 정도다.

문제는 한ㆍ중 FTA가 양국간 정치, 외교적으로 필연적인 논리이고 현실적인 대안이지만 산업별로 빛과 그림자가 뚜렷하게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소속돼 있는 섬유산업은 농산물과 함께 치명적인 타격이 불가피한 것이다.

그동안 MB정권 하에서 시작됐던 한ㆍ중 FTA 협상초기에 섬유업계는 한ㆍ중 FTA에 양허율 70%이상을 요구했었다. 그 전제로 농산물과 함께 민감품목으로 지정해 줄 것을 시종일관 요구했었다.

그러나 지난달에 열린 한ㆍ중 정상회담에서 “실질적인 자유화의 폭 넓은 범위를 포괄하는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목표로 한다”고 분명히 못 박았다. 여기서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협정이란 “관세 폐지품목을 90%이상 확대한다”는 대원칙을 담고 있어 우리 섬유업계가 요구해온 양허율 요구는 발붙일 사항이 못 된다는 점이다.

물론 정부도 섬유산업의 피해가 극심할 것이란 사실을 직시하고 있지만 국가간 고도의 정치행위로 이루어질 자유무역협정에 특정산업을 참작해 전체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처지에선 천성산 도롱뇽 몇 마리 살리기 위해 경부고속 전철공사를 중단할 수 있었지만 국가간 협상은 도매금으로 넘어갈 소지가 클 수밖에 없다. 정치, 군사, 외교적 큰 물줄기에 휘둘려 섬유는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이렇게 됐을 때 가뜩이나 중국산 섬유류가 우리의 안방시장을 점거하는 상황에서 그 도가 더욱 거세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중언부언하지만 작년을 기준해 한ㆍ중 양국의 섬유교역은 85억6000만달러 규모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중국에 수출한 섬유는 27억2500만달러에 불과한데 반해 중국으로부터 수입은 56억3000만달러에 달해 무려 31억500만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품목별로는 의류를 비롯한 중국산 섬유제품 수입이 40억8000만달러에 달했지만 국산 섬유제품의 대 중국수출은 5억500만달러에 불과해 25억7800만달러의 무역적자를 보였다.

국산섬유사도 수출 3억3000만달러에 비해 수입은 7억7900만달러에 달해 이 부문에서도 4억4900만달러의 적자를 나타냈다.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화섬사는 수출이 수입보다 많았지만 상황이 뒤바꼈다. 중국과의 교역에서 무역흑자를 내는 품목은 유일하게 직물류뿐이다.

국산 직물류의 작년 대 중국 수출은 17억 3600만달러에 달해 수입 9억3200만달러보다 8억200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한 국산 차별화 소재 수출이 활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대재앙 무신경도 한 몫

그러나 직물 수출의 흑자기조도 갈수록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범용품은 이미 중국산이 한국 시장을 싹쓸이 한데다 치폰같은 주력 연사물도 올해부터 중국이 진출해 한국 시장을 장악했다.

우리 섬유산업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화섬산업부터 위험신호의 전조등이 켜진지 오래다. 중국산 화섬사가 최신설비와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무섭게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POY, DTY사 모두 반덤핑관세를 부과해 최대한 반입을 억제하고 있지만 수입량은 급증하고 있다. 기본관세 8%에 반덤핑관세 7~8%를, 그리고 부대비용을 따지면 국산보다 표면상 20% 관세부담이 있지만 높은 과세 장벽을 뚫고도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화섬산업부터 계란으로 바위치기 상태로 망가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섬유산업은 한ㆍ중 FTA가 대재앙일 수밖에 없다. 이 거대한 파도를 어떻게 피해갈지 고단위 처방이 시급한 시점이다. 그럼에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겠지”하며 방심하고 있는 우리업계의 대응책이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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