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개혁개방을 주도해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이끈 뎡사오핑은 김일성 생전 시에 아주 평범하면서도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졌다. “정치에서 영원한 동지나 영원한 적이 없듯이 국가 간에도 영원한 우방은 없다”고 넌지시 말했다.

천하의 김일성도 죽고 못 사는 선린관계인 중국이 한국과 이토록 ‘새로운 미래 비전’을 선언하며 동반자 관계로 진화 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동족상쟁의 6ㆍ25비극을 회상하면 인해전술로 대한민국을 초토화시킨 중국은 한국 입장에서 도저히 상종할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중국과 우리는 수교 21년을 맞아 연간 교역량이 1500억달러로 늘어난데 이어 앞으로 이를 3000억달러로 늘리기로 했다. 연간 수출규모가 우리의 중견 기업규모인 40억달러에 불과한 북한 입장에서 볼 때 까무러칠 일이다.

한ㆍ미FTA 믿다 발등 찍힌 봉제공장 투자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중국정부가 대하는 예우와 회담 성과를 보면 천지개벽을 실감케 했다. 더구나 북한을 끝까지 옹호해줄 줄 알았던 핵무기에 대해 한ㆍ중 정상이 비핵화를 명문화한데 대해 북한은 피를 토하고 싶을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ㆍ중 양국은 경제뿐 아니라 정치, 외교, 군사, 문화까지 광범위한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북한은 이 냉엄한 국제적 변화의 돌아가는 통박을 직시하고 대한민국과 대화하며 실리를 추구할 수밖에 없게 됐다.

물론 이번 한ㆍ중 정상회담이 성공했다고 해서 중국이 완전히 우리 편에 선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벗기면 벗길수록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양파 속성의 중국이 북한을 박대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중대한 착각이다.

어찌됐건 북한은 한ㆍ중 정상회담을 지켜보며 우리보다 중국을 향해 배신감에 길길이 뛸 것이다. 역사를 왜곡하고 오리발 내는 일본 역시 왕따 당한 수모에 심사가 뒤틀리는 것 역시 매한가지다. 한ㆍ미 정상회담에 이어 한ㆍ중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가 대북관계나 한ㆍ일 관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것은 부인 못할 일이다. 이 호기를 활용해 남북이 갈망하는 개성공단부터 정상화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말을 바꿔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에 우리 경제도 가연성 불안심리가 팽배하다.
경제의 90%에 육박하는 수출이 제자리걸음이고, 내수경기는 아예 엄동설한이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버틴 원동력은 제조업 뿌리가 워낙 강했기에 가능했다. 반면 우리 제조업은 하루가 다르게 시난고난 시들어 가고 있다. 전국 산업단지는 갈수록 거미줄과 곰팡이가 무성하고 신규투자가 가뭄에 콩 나기다.

정부는 자고새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든다고 대포를 쏘지만, 기업할 수 있는 환경이라도 먼저 만들어야 했다. 부정과 비리를 감싸자는 것이 아니라 경제 민주화나 사정기관의 기업 때려잡는 일이 많은데 어느 기업인이 투자의욕을 갖겠는가?

삼성전자가 박대통령 방중 때 찾은 중국 시안에 8조원을 투자한 것도 한국에서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적어도 2만명의 고용효과를 나타낼 8조원중 절반만 한국에 투자해도 1만명의 고용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대기업이 이 정도일 때 중소기업은 오죽하겠는가? 우선 섬유를 비롯한 경공업 대부분은 인력난과 고임금으로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하나의 예증으로 한ㆍ미 FTA가 발효되면 가장 큰 수혜업종으로 섬유와 자동차를 꼽았다. 섬유산업의 대미수출이 급증할 것으로 보고 관련 기업의 주가가 뛰는 헤프닝이 일어났다.
그러나 한ㆍ미 FTA가 발효된 지 1년 반이 되도록 달라진 것이 없다. 갈수록 팍팍하고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한ㆍ미 FTA가 발효되면 가장 기대되는 것은 즉시 또는 단계적으로 관세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대다수 인기 품목인 직물류는 5~10년간 단계적으로 철폐되지만 최고 34%에 달한 즉시 철폐 품목에 잔뜩 기대를 모았다.

이 점을 노려 어느 중견 의류수출 밴더가 비교적 유휴 인력이 많은 경기도 성남에 수출 봉제공장을 설립했다. 시설도 자동화율이 가장 높고, 부대시설 역시 최신형으로 설치했다.
30억원을 들여 종업원 50명 규모의 알뜰한 봉제공장을 작년 상반기 후반에 가동했다. 아이템은 관세 34% 즉시 철폐품목인 니트의류였다.

연간 3억달러 규모를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자체공장을 통해 미국에 수출하는 이 회사 오너 K씨는 의류수출업계에서 경영의 귀재로 통한 인물이다. 줄잡아 34% 관세를 물지 않으면 국내 공장에서 고급화시켜 손익분기점은 유지할 것으로 낙관한 것이다.
그러나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도 적자는 개선되지 않고 계속 손실이 이어졌다. 품질도 기대만큼 못 따라 온데다 임금수준에 비해 생산성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봉제 경험이 있는 50대 중심의 주부사원을 활용한데 따른 기본임금이 1인당 150만원에 달했다. 4대 보험 포함하고 이것저것 합치니 1인당 줄잡아 월200만원의 임금부담이 생겼다. 그러나 월 평균 30만원 내외인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에 비해 임금이 5배 이상 비싼 반면 생산은 70% 수준에 불과했다.

베트남 등지의 인력과는 달리 집중력과 순발력이 떨어진 것은 물론 가사문제로 걸핏하면 결근하고 라인 작업중 자리를 비워 생산성이 형편없이 떨어진 것이다. 이 회사 오너는 나름대로 소명의식을 갖고 국내에서 고용창출을 통해 미력이나마 애국하겠다고 저지른 수출 봉제공장을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9개월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품질ㆍ생산성 개성공단 외에 길이 없다.

국내 봉제공장이 그나마 존재하는 것은 내수용이라서 하청 공임이 비싸지만 수출용 의류는 글로벌 경쟁으로 내수용처럼 하청공임을 책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백전노장의 의류생산 수출전문가인 이 회사 회장은 눈덩이 적자를 못 이겨 성남공장 문을 닫으며 허탈하게 말했다. “34% 관세철폐에 기대를 건 것이 잘못이다. 우리나라에서 내수용이 아닌 수출봉제품 생산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것이 우리 중소제조업이 서 있는 현주소다. 고용창출의 1등 공신인 수출 봉제공장을 할 수 없는 이같은 현실을 정부가 제대로 아는지 묻고 싶다. 그 대안이 개성공단이란 점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개성공단 폐쇄상태의 원인은 북한에 있지만 이제는 꼬리 내릴 북한을 잘 설득해 하루속히 정상화시키는 것은 한국 몫이다. 7월에도 가동되지 못하면 개성공단은 포기해야 된다. 피 말리는 입주기업뿐 아니라 남북 긴장의 완충지대인 개성공단은 남북을 위해 선택이 아닌 필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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