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섬유ㆍ패션CEO들이 지난주 일상에서 벗어나 제주에 집결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가 주최한 ‘2013 섬유ㆍ패션CEO포럼’에 섬유ㆍ패션인 가족 400명 가까운 대규모 인원이 참여한 것이다.
수출과 내수 가릴 것 없이 바닥 밑을 헤매는 상황에서 참가자들의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경기는 위축되고 해빙기미를 보이던 남북관계가 다시 대치국면을 보이면서 개성공단 문제가 기약 없이 표류하는 상황이었다.

개성공단이 멈추면서 섬유봉제를 중심으로 123개 입주기업들이 생사기로를 헤매면서 공동현상은 좀처럼 메어질 기미가 안보인다. 시난고난하던 섬유ㆍ패션산업에 다시 한 번 르네상스를 기약했던 개성공단이 장기 표류하면서 관련 섬유ㆍ패션업계 가슴이 화석으로 변했다. 당연히 북한 측의 어리석은 협상 자세 때문이지만 우리 정부도 장관급 회담 격식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나돈다. 싫건 좋건 개성공단은 섬유ㆍ패션산업을 중심으로 우리경제에 소홀히 할 수 없는 비중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제주 CEO포럼 경영인 산 교육장 됐다.

설상가상으로 세계 증시를 패닉상태로 몰고 온 블랙 목요일이 제주 CEO포럼 기간에 터졌다. 내수패션경기에 악재가 될 장마전선 예보도 무거운 분위기였다.

장관이 바뀌고 한전사장이 바껴도 고장 난 원전은 쉽게 수리가 않돼 연일 블랙아웃 공포에 시달린 시점이었다. 울고 싶을 때 뺨 맞은 격으로 경기불황에 재고가 쌓인 철강업계를 시발로 섬유업계도 감산이라는 극약처방을 채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팎으로 무거운 침잠현상이 짓눌리는 시점에서 제주 CEO포럼은 재충전의 활력소를 제공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올해로 11년째 이어진 섬유ㆍ패션 CEO포럼은 단순한 화합과 교류차원이 아니라 글로벌 경영에 필수인 금과옥조 같은 값진 지식을 습득하는 절호의 기회였다.

특강을 맡은 정부와 전문가들로부터 평소 접근하기 힘든 정책과 전략을 2박3일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이번에도 정부의 산업정책 방향에서부터 경제계의 비중 있는 수장(首長)인 송경식 대한상의 회장의 ‘새 시대의 기업경영’에 대한 광범위한 경영지식은 많은 것을 깨우쳐줬다.

유명한 음악감독이자 상임 지휘자인 서희태씨의 ‘마에스트로 리더쉽’강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경영인의 역할이 동일하다는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였다. 한국을 대표한 패션디자이너 이상봉씨의 ‘패션의 글로벌 전략’역시 고부가가치 지식문화산업인 패션산업의 중요성을 새롭게 각인시켰다. 특히 이상봉씨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 개최된 수교 50년 기념 패션쇼를 마치고 13일 밤 귀국해 다음날 아침 특강을 하는 강행군을 하면서 글로벌 패션디자이너로 우뚝 선 험난한 도정을 공개해 많은 감동을 안겨줬다.

이번 ‘제주CEO포럼’의 대미를 장식한 하이라이트는 세계 초일류 기업인 일본 도레이의 사카키바라 회장의 특강이었다. 도레이의 첨단소재 개발을 중심으로 ‘환경ㆍ원료ㆍ에너지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혁신전략’을 통해 우리 섬유ㆍ패션산업이 어디로 가야한다는 대전제를 제시해준 것이다.

알다시피 도레이는 화섬, 화학, 플라스틱, 정보통신, 재료, 기기, 탄소섬유 복합재료, 환경, 엔지니어링, 수처리 사업 등에서 난공불락의 세계 초일류 기업이다. 탄소섬유 분야의 1등 기업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 40%를 과시하고 있다. 수처리 분야의 세계 1등 기업으로 물부족 국가의 1억명에게 먹는 물을 제공하는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의약, 의료재료를 비롯 다양한 사업군을 확장하면서 해당분야의 세계 1등을 차지하는 기업이다.
연간 매출 16조원에 일본과 해외에 236개사를 보유하고 있고, 그 중 하나가 한국의 ‘(주)도레이 첨단산업’이다. 종업원 4만260명(일본 1만7300명, 해외 2만5300명)의 다국적 기업이다.
특히 타산업도 마찬가지이지만 첨단 섬유부문에서 단연 세계 1위 기업이다. 연구개발 인력 3000명중 섬유분야에 1200명이 24시간 연구실 불을 밝히고 있다.

아무리 불황이 심해도 연구소 기능과 인력을 축소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계적인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극세사 섬유의 한계에 도전한 결과 “한 톨의 쌀 크기의 섬유뭉치를 늘리고 늘려 지구에서 달에 도달한 만큼 직경 20나노미터(nm)를 뽑아냈다”고 공개했다. nm은 10억분의 1미터임을 감안하면 그 가늘기가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고난도 기술이다.

도레이가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탄소섬유는 무게가 철의 4분의 1에 불과하지만 강도는 털보다 10배나 강해 경량화시대의 총아로 자리 잡고 있다. 비행기 날개에 이어 앞으로 자동차 용도로 대량 수요가 예상되는 황금알을 낳은 거위산업이다. 미국 보잉사와 2020년까지 70억달러 공급계약을 체결할 정도다. 사카키바라 회장의 표현처럼 탄소섬유는 극한을 추구하는 산업이다.
1970년대 도레이가 처음 탄소섬유를 개발할 당시 성능의 기준이 되는 표면결함의 크기는 “마이크론 수준으로 품질이 형편 없었다”고 실토했다.

이 한계를 “1990년대 서브마이크론 수준으로 극복한데 이어 2000년대부터 나노수준으로 떨어뜨려 표면결함을 극소화했다”고 설명했다.

도레이를 보면 섬유ㆍ패션미래가 보인다

이같은 성과의 배경에는 연간 500억엔 이상(6000억원)의 R&D비용을 쏟아 붓고 있기 때문이다. 탄소섬유기술로 갈수록 진화돼 그동안 항공기 날개나 고급 스포츠카 정도에 사용했지만 “앞으로 자동차 연비향상을 위해 탄소섬유가 필두 소재로 등장하면서 가격도 낮추고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이같이 각 분야의 세계 초일류 기업인 도레이가 섬유산업을 변함없는 기간산업으로 정하고 다운스트림 분야까지 계속 진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니클로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발열 보온기능의 ‘히트테크’를 개발해 한해에 2억피스의 내의를 판매하게 한 원동력이 바로 도레이 기술의 공로다.
원사에서부터 ‘직ㆍ편직ㆍ클러스터 구축’ 염색가공에 이어 세계 각국 소싱 최적지를 찾아 봉제까지 생산해 백화점과 SPA브랜드에 공급하고 있다.

이같은 도레이의 경영전략은 한국의 화섬ㆍ면방업체들이 어디로 가야한다는 대전제란 점에서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제주 CEO포럼에서 더 많은 섬유ㆍ패션CEO들이 듣고 새겨야할 대목이었다. 우리업계가 도레이에서 배워야할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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