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의 거유(巨儒)로 성리학(性理學)의 거장인 충선공 문익점(文益漸)선생은 우리나라 섬유산업의 아버지다. 고려 충혜왕 1년(1331)에 탄생하여 26세에 과거시험에 급제하였고 공민왕 9년 관계에 진출해 정6품으로 승진했으며 호는 사은(思隱) 삼우당(三憂堂)이다.

삼우당 선생은 1363년 공민왕 12년에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 참수위험을 무릎 쓰고 목화씨 10개를 몰래 들여왔다. 낙향한 선생은 1365년 공민왕 14년 고향인 경상남도 진양 강성현에 가서 종자 5개는 선생이 심고, 5개는 장인 정천익씨에게 주어 파종하게 했다.

그러나 선생이 심은 종자 5개는 모두 말라죽고, 장인 정천익이 심은 종자중 겨우 한 그루가 싹터 살아났다. 이같이 우리나라에서 면화산업이 성장하는 데는 피나는 간난신고의 고심참담한 노력의 역사로 점철됐다.
정천익이 심은 한줄기의 목화는 잘 성장하여 가을에 소담한 목화송이로 피어났다.

문익점 선생은 섬유ㆍ패션산업의 아버지

이것을 가지고 3년간 확대 파종하여 수천개의 목화씨를 얻게 되자 향리에 분양하기 시작했다. 목화씨의 못자리가 된 곳은 지금의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읍 사월리이며 대한민국 사적 108호로 문익점 목화시배지로 지정돼 있다.

당시 면화산업은 농공병합 산업형태로서 고려 말에 신구 왕조의 교체 혁명기 진통기에 시작되어 본격적인 개화는 조선왕조의 혁명이 완성되는 태종조에 이르러 이루어졌다.

조선왕조는 면화(목면)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장려와 특혜조치를 베풀어 삼남일대에 급격히 보급 전파되었다.
세종조에는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에서 목화밭이 빽빽히 형성됐다. 이어 세조, 세종, 성종은 서북지방에도 면화산업의 전파에 진력하여 그 결과 전국 산하를 목화밭이 뒤덮은 것이다.
바로 면화산업은 조선왕조의 산업구조였다. 당시 조선왕조의 의료산업에 혁명을 가져왔고 왕조 재정의 중추적 기둥이었다. 농가경제의 중요한 농업보완 경제였고, 유통경제의 교환수단이었다. 그야말로 농공결합형태의 핵심 산업이었다.

백성, 천민, 사대부 등 계급을 초월한 평등산업이었다. 당연히 조선왕조의 대외무역중 왕자의 지위를 차지했다.
대일무역에서 면화를 수출하여 유황, 동, 금, 은을 수입하여 돈과 무기 화약까지 제조하여 국방에도 위대한 공헌을 했다.

삼우당 선생은 학문이 뛰어나고 인품이 탁월해 태조의 부름을 받았으나 고려인의 긍지를 지키며 고향 진양 강성현에서 오로지 학문연구와 면화산업 발전에 전념하다 1400년(定宗 2년) 2월 8일, 70을 일기로 타계했다. 조정에서는 헐벗은 백성에게 옷을 입히고 면화산업을 일으킨 민족의 은인 삼우당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임금이 직접 교지를 내려 사당을 짓고 호를 내리는 등 파격적인 특전을 내렸다. 실제 태종은 특별교지를 내려 밭과 노비를 내리면서 문익점의 자손은 문(文)ㆍ무(武)에 등적하고 공과 사의 죄를 범해도 면하게 하되 후일 억만세가 되도록 이 법을 고치지 말라고 특별령을 내리기까지 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 목화 재배는 이 땅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삼우당 문익점 선생은 우리나라 섬유산업의 효시이자 아버지임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나라가 오늘날 세계 4위 섬유ㆍ패션강국을 표방할 정도로 섬유패션대국이 된 것은 오직 삼우당 선생의 혜안과 충성심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같이 삼우당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 발전하기 위해 국제섬유신문이 20년 전 창간 당시 ‘삼우당 대한민국 섬유패션大賞’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명실공히 섬유패션분야의 노벨상으로 통하는 ‘삼우당 섬유패션大賞’은 올해도 훌륭하고 모범적인 기업인과 디자이너, 산업평화에 이바지한 수상자등 20명에게 상패와 고귀한 삼우당 순금메달을 수여했다.

6월 3일 섬유센터 17층에서 300여명의 축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된 삼우당 섬유ㆍ패션대상 시상식은 수상자의 명예뿐 아니라 섬유패션인의 화합과 교류를 다지는 축제의 한마당으로 진행됐다. 정부 고위직에 있는 동안 미쳐 몰랐던 홍석우 직전 지식경제부장관은 특별공로상 수상소감에서 “민간레벨에서 이토록 성대하고 권위 있는 상이 있는 줄 몰랐다”며 “자랑스런 삼우당 상을 긍지를 갖고 간직하겠다”고 인사했다.

수출과 내수부문大賞을 차지한 4명의 기업인을 포함, 창조경영, 창조기술 공로의 훌륭한 기업인들이 영예를 안았다. 유망 신인 디자이너와 산업평화에 앞장 선 노조지도자의 노사화합상도 함께 시상했다.

탁월한 경영능력과 창의적인 노력으로 각기 자기분야에서 우뚝 선 수상자들은 우리 섬유패션산업의 희망이며 긍지의 상징이다. 이같이 훌륭한 기업인과 지도자, 디자이너, 노조지도자들이 있다는 것은 섬유패션산업의 미래가 그만큼 밝다는 의미다.

올해 영예의 특별공로상을 수상한 홍석우 직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30년 공직생활중 섬유패션산업 육성에 남다른 공적을 세웠다. 사무관, 과장, 또는 주미 상무관 시절부터 섬유쿼터 업무를 담당해 섬유산업 중흥기를 설계했다. 중기청장, 코트라사장을 거쳐 지경부 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언제나 섬유패션 중흥론을 강조한 친 섬유패션장관이었다.

정부 고위공직자(장관) 중에는 무역협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경총회장인 이희범 전 산자부장관과 청와대 수석을 거쳐 현역 국회의원인 윤진식 전 산자부 장관에 이어 3번째로 홍장관이 올해 특별공로상 수상자가 된 것이다.

‘삼우당 섬유ㆍ패션大賞’은 해를 거듭할수록 명예와 권위가 수직상승하고 있다. 헐벗은 백성에게 옷을 입히고 산업화를 주도한 민족 제일의 은인 삼우당 문익점 선생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담고 있는 한국판 ‘섬유ㆍ패션노벨상’인 것이다.

삼우당의 숭고한 정신, 모방할 수없는 순금메달

‘삼우당 섬유패션大賞’은 지난 20년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순도 99.99%의 순금메달이 함께 수여돼왔다. 도용할 수 없는 삼우당 엠블런이 새겨진 순금메달은 그 권위와 가치로 봐 수억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영광의 상징이다.

유사 전문지들이 이런 저런 이름으로 시상하는 것과는 권위와 가치가 천앙지차다. 엄청난 비용의 순금가격이 부담된 것은 사실이지만 ‘삼우당’이란 고귀한 명성과 권위를 생각해 국제섬유신문은 상패와 함께 순금메달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섬유패션업계의 진정한 동반자이자 대변지인 국제섬유신문은 ‘섬유ㆍ패션코리아’의 백년의 미래를 열어가면서 이같은 고귀한 ‘삼우당 섬유ㆍ패션大賞’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것을 다짐한다. 섬유패션산업의 글로벌화를 선도하고 있는 1등 전문신문 국제섬유신문은 창간 20돌에 맞춰 열독률 1위, 신뢰도 1위라는 자긍심을 바탕으로 21세기 초일류 섬유패션지로 거듭날 것을 다시 한 번 엄숙히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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