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단은 언제나 세치 혀부터 시작된다. 자나 깨나 ‘조심’이란 두 글자를 머금고 살아야할 ‘입뿌리’, ‘발뿌리’, ‘손뿌리’의 3뿌리중 가장 저지르기 쉬운 첫 단어다.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로 패가망신 신세 망친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명문 하버드대 출신 某국회의원은 “아나운서 되려면 다 줘야 한다”는 농담 한 마디로 아나운서들의 집단항의를 받아 천신만고 끝에 얻은 금배지를 떼고 말았다.

항공사 승무원을 식모 취급하며 라면타박을 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회사까지 쫓겨난 포스코 계열 임원의 경거망동 또한 말실수 때문이다. 대기업 임원이란 성취욕에 도취돼 거들먹 거리다 비행기 안에서 독사에 물린 꼴이다.

호텔에서 주차 문제로 시비를 하다 지배인에게 폭언을 한 중소기업사장 역시 홧김에 내뱉은 한마디가 인터넷을 달구었다. 그는 결국 피땀 흘려 일군 제빵산업이 거래처인 코레일의 납품거부와 여론 질타 속에 회사 간판 내리고 문 닫는 파멸을 맞았다.

남양유업 뺨치는 공룡백화점 횡포

요즘 한창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남양유업 사건 역시 직원의 폭언으로 대리점주가 열받아 인터넷에 까발리면서 일파만파 파문이 번지고 있다. 회가 경영진이나 상사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조직원의 말실수로 회사 전체가 휘청거리고 있다.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누구나 말실수를 할 수 있고 또 그래왔다. 그러나 이들 파문 만들기 작태의 말실수 사례는 단순한 부지불식간의 실수가 아니라 몸속 깊이 배어있는 우월적 지위의 자만심의 말로란 점에서 여론이 비분강개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들이 세치 혀를 잘못 놀린데는 ‘甲’ 의 논리가 뼛속 깊이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갑’은 항상 ‘乙’에게 군림해왔고 그것이 습관화, 보편화돼 불쑥 내뱉은 것이다.

최근 이같은 사건을 계기로 ‘갑’의 횡포와 독선에 대한 논란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강자적 논리인 ‘갑’ 앞에서 항상 약자적 입장인 ‘을’의 맺힌 한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시대적 변화가 도래한 것이다.

섬유패션업계 입장에서 가장 무서운 ‘갑’중의 ‘갑’은 공룡백화점이다. 이른바 ‘슈퍼갑’의 대명사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무소불위의 위세를 부리고 있는 공룡백화점인 것이다.
공룡백화점 앞의 입점업체는 영혼이 없다고 봐도 된다. 공룡백화점의 횡포와 독선 앞에 옴짝달싹 못하고 퇴점 압력이 무서워 항거불능상태다.

중언부언 한두 번 들어본 얘기가 아니지만 공룡백화점은 건물만 덩그러니 지어 놓고 입점업체 피를 빨아먹고 사는 악덕부동산 임대 업자와 다름이 없다는 여론이다. 재고가 쌓이건 말건 위탁판매의 매입구조를 이용해 30~40%까지 고율의 판매수수료를 챙긴다. 땅 짚고 헤엄치기 판매수수료 수익을 연간 수천억씩 챙기면서 광고 선전비까지 입점업체에 전가시킨다.

정기세일, 부정기 행사 광고를 빈번하게 내면서 광고 단수 계산해 입점업체에 전액 부담시킨다.
원칙으로 봐 백화점 리뉴얼 비용은 당연히 백화점 측이 부담해야 하지만 웬만한 서민 아파트 평당 가격과 거의 맞먹는 평당 리뉴얼 비용을 입점업체에 떠넘긴다.

판매사원도 백화점 직원이 아닌 입점업체 직원이다. 판매사원 월급은 입점업체가 내고 백화점에서 실시하는 야유회비, 건강진단비까지 입점업체가 부담한다.

판매사원이 백화점 직원이 아닌 입점업체 직원이면 허드렛일을 시켜서는 안되지만 백화점 층계 청소에 환기구 청소까지 시켜 말썽이 되고 있다.

더욱 타락되고 전복된 행태는 백화점이 판매수수료를 더 챙기기 위해 가짜 매출까지 강요하는 부도덕행태를 서슴지 않는다는 여론이다. 무리한 매출 목표를 할당해 놓고 이것을 달성하지 못하면 매장위치를 후미진 화장실 쪽으로 밀려나야 한다. 매출차가 큰 후미진 곳으로 밀려나다 않되면 아예 퇴출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기 카드로 가짜 매출을 찍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진짜건 가짜건 매출이 잡히면 판매수수료는 인정사정없이 뗀다. 그렇게 해서 백화점은 배터지고 입점협력업체는 피골이 상접하지만 장사를 포기할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40대 백화점 여성판매사원이 자신이 근무하던 백화점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롯데백화점 청량리 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백화점 측의 매출실적 압박과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사망한 이 여인의 휴대전화에는 “사람들 그만 괴롭히세요. 대표로 말씀드리고 저 먼저 떠납니다”라고 담당 이 모 대리에게 쓴 모바일 메신저 문자가 발견됐다.

이 대리가 김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도 “실시간 매출을 조회하라”, “오늘은 500이라는 숫자 가까이 하라” 등의 실적을 채근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죽은 김씨의 가족들도 평소 “매일 매일 시달려 도저히 못 살겠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판매사원 김씨의 사망사건과 관련, 롯데백화점 측은 “그의 자살요인은 매출압박이 아닌 개인사정”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자살한 김씨가 펜션에 투자했다 실패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왔고, 우울증으로 약을 복용해왔다”며 김씨의 사인이 백화점 매출압력 때문이 아니라고 강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없는 죽은 김씨뿐 아니다. 백화점 판매사원 경력 20년째인 某백화점 이모씨는 “백화점 판매사원은 이조시대의 하녀와 같다”고 절규한 사실이 종합 일간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목표 매출을 올리지 못하면 백화점 측으로부터 온갖 인격적인 모독이 가해진다”고 털어놨다.

아침 조회 때 공개망신을 주거나 “카카오톡방에 판매직원들을 초대해 시간마다 매출순위를 쓰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압박한다”며 “죽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호소하고 있다.

서슬퍼런 공정위도 백화점 횡포 못 잡아

공룡백화점의 갑의 논리 앞에 횡포와 독선에 시달리면서도 입점협력업체는 제대로 항의 한 번 못한다. 바른 소리 하다가는 영락없이 퇴점 당하기 때문이다.

어느 유명 디자이너가 몇년전 디자이너 부티크 중에서 매출이 가장 높았지만 정면에서 바른 소리 한 번 했다가 여지없이 퇴점 위협을 받은 바 있다. 수백, 수천개 협력업체가 있지만 입점업체 권익보호를 위한 협회하나 못 만든다.
집단행동 가능성이 있다하여 철저히 봉쇄하고, 앞장서면 그야말로 퇴출로 보복 당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유통구조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이들 공룡백화점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무순불위 독선과 횡포로부터 시정돼야 한다. 경제검찰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자량의 헌칼 쓰듯 백화점 불공정 행위를 자주 단속한다 하지만 그 칼은 너무 무디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공정위가 진정으로 백화점의 불공정 행위를 시정할 의지가 있다면 “심증은 있는데 확증이 없다”는 애매모호한 태도에서 벗어나 좀 더 깊숙이 내시경으로 들여다 봐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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