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도전으로 디자이너 활동영역 넓혀 온 선구자

남녀노소 불문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남성복 디자이너를 꼽으라면 가장 먼저 떠오를 이가 바로 카루소의 장광효 대표일 것이다. 그만큼 그는 예술성과 대중성 모두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룬 흔치 않은 디자이너이다.

올해로 만 28년을 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국내 패션계에 몸담고 있는 그는 국민대학교에서 산업미술을 전공했고,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직물디자인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1983년 퐁텡블루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제일모직 캠브리지와 논노의 수석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최고의 남성복 디자이너로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안정된 틀을 과감히 깨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1987년 자신의 브랜드의 카루소(CARUSO)를 론칭한 것이다. 그는 매장 청소부터 원단과 부자재 구입과 판매까지 도맡아 가면서 일을 시작했고 마침내 국내 남성복 시대를 화려하게 열었다.
이처럼 새로운 불모지를 개척에 주저하지 않는 장 대표에게는 항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그는 국내 최초로 파리 컬렉션에 진출한 인물이며, 최초로 스타마케팅을 통해 대중과 접점을 마련했고, 직접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가 파리에 진출할 당시는 국내 패션 디자이너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파리입성 3년 동안 비공식적인 쇼 한 번을 포함해 총 일곱 번의 쇼를 진행했다. 그가 고군분투하며 길을 닦아내고 선례를 잘 남긴 탓에 지금 후배들의 진출이 쉬워진 것이다. 1980년대에는 최고의 인기그룹 소방차의 스타일을 만들고, 1990년대 최고의 뮤지션, 문화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에게 옷을 입히며 시대의 트렌드를 이끌었다. 2005년에는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 배우로 출연해 큰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펼쳐진 길이 항상 탄탄대로만은 아니었다.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하던 사업이 파리 컬렉션 준비로 소홀한 사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IMF까지 터져 큰 손해를 입기도 했다. 백화점 매장을 포함해 30여개 매장의 문을 닫을 만큼 사업은 크게 위축됐다.

위기를 타개한 것은 그의 역발상과 도전정신이었다. 디자이너 브랜드로는 이례적으로 TV홈쇼핑에 진출한 것이다. 백화점에 있는 디자이너 의류에 비하면 월등히 저렴한 가격대였고 장 대표가 방송에 출연해 직접 디자인 콘셉트도 설명했다. 신세대 기호와 맞아 떨어진 카루소는 방송 마다 수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대박 아이템으로 부상했다.

그는 최근 ‘절충’과 ‘소통’이라는 두 단어를 마음에 품고 한국패션디자인너연합회 창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한 분야를 개척하고 중심에서 활동하며 ‘장광효’ 이름 석자를 업계에 명확히 아로새긴 그는 디자이너를 포함한 한국 패션산업 발전을 위해 더욱 매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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